그 밤의 기록
전화를 끊고 서둘러 현관문을 연 남편에게 딸이 다가오고 있었다. 그는 절규하듯 외쳤다.
“정말… 너무한다.”
백 원짜리 동전 만한 선명한 방울들이 딸아이를 따라 집 안으로 들어왔다.
남편은 눈을 감고 깊게 숨을 들이마신 뒤 천천히 눈을 떴다. 곧 약품 서랍을 열고 의료용 테이프와 거즈를 꺼냈다. 이미 팔 안쪽에 남아 있는 상흔 위로 새로운 상처들이 자리했다. 가장 큰 상처는 양쪽 끝에서 서서히 벌어져, 가운데에 이르러 활짝 열려 있었다. 잠시, 나뭇잎을 닮았다는 생각이 스쳤다.
남편은 벌어진 살을 왼손으로 꾹 모아 쥐고, 오른손으로 테이프를 여러 장 뜯어 붙였지만 테이프는 이내 툭, 툭 떨어져 나갔다. 새빨간 액체가 거칠게 흘러내렸다. 나는 욕실로 달려가 걸려 있던 수건을 가져왔다. 테이프 위를 감싸 쥐게 했더니, 수건이 순식간에 붉은색으로 물들었다. 가슴 깊은 곳에서 치밀어 오른 남편의 한숨은, 거의 비명 같았다.
선홍색 방울들이 현관을 지나 엘리베이터 안에 잠시 머물렀다가, 다시 지하 주차장까지 촘촘히 이어져 있었다. 나는 그 방울들이 멈춘 자리, 아니—처음 시작된 지점까지 따라가 보고 싶다는 충동을 느꼈다. 그때 남편이 물었다.
“운전할 수 있겠어?”
차도 사람도 보이지 않는 어두운 밤길이었다. U턴을 하려는데, 좌회전 신호는 좀처럼 바뀌지 않았다. 신호를 기다리면서 ‘지금 이렇게 느긋할 상황인가…’ 속으로 되뇌면서도, 평소보다 조심스럽게 차를 몰았다.
대학병원 응급실에 도착했지만, 담당 직원은 봉합 수술을 하지 않는다고 했다.
“J병원이나 C병원으로 가보세요.”
다시 차를 몰아 십여 분 떨어진 J병원으로 향했다. 접수를 마치고 잠시 기다린 후 간호사를 먼저 만났지만 그곳도 마찬가지였다.
“이론상 24시간 안에만 봉합하면 괜찮아요. 아침 일찍 성형외과에 가는 것도 방법입니다.”
간단한 소독과 지혈을 받고, 붕대로 두른 팔을 안은 채 병원을 나섰다.
마지막 기대를 걸고 평소 다니던, 차로 30분이 넘게 걸리는 종합병원에 전화해 봤지만, 상황은 똑같았다. 결국 아침 일찍 성형외과에 가기로 마음을 굳혔다.
집에 도착하니 새벽 5시가 훌쩍 넘었다. 에어컨을 끄지 않고 나간 집은 여전히 시원했다. 남편은 두루마리 휴지와 물티슈를 들고 밖으로 나갔고, 나는 현관 바닥과 거실에 말라붙은 핏자국을 닦았다.
남편과 나는 늦은 시간까지 들어오지 않는 아이를 기다리고 있었다. 결국 상처 입은 딸과 마주했고, 병원을 전전한 끝에 지친 몸으로 집에 돌아왔다. 속상했고, 화가 났으며, 딸이 가엾기도 했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이 상황이 너무 절망스러웠다. 집에 와서야 비로소 목이 메기 시작했다. 반면 딸은 시종일관 평온한 얼굴이었다. 마치 ‘이게 뭐 그리 큰일인가’ 하는 듯, 담담한 표정이었다. 나는 말문이 막혔다.
남편이 인터넷으로 집 근처에 있는 봉합 전문 성형외과를 찾아냈다. 진료는 오전 열 시부터 시작한다고 했다. 더는 할 수 있는 일이 없었다. 우리는 일단 눈을 붙이기로 했다. 회색 커튼 너머로 푸르스름한 새벽빛이 번져와 방 안을 은은히 적셨다. 다가오는 아침을 외면하며 안대를 끌어내렸다.
알람을 몇 번이나 끄고 간신히 일어났다. 딸아이는 이미 깨어 있었다. 아예 잠을 자지 않은 건가 싶었지만 묻지 않았다. 남편이 운전해 10시 10분쯤 병원에 도착했다. 대여섯 명의 환자들이 이미 대기실에 앉아 있었다. 잠시 후, 딸아이의 이름이 불렸고, 우리는 진료실로 들어갔다. 의사라고 하기에 꽤 어려 보이는 남자는 상처를 꼼꼼히 살펴보았다. 마취 주사를 여러 차례, 여러 부위에 놓았다. 딸아이는 아무렇지 않은 얼굴로 그 과정을 지켜보았다.
세 사람은 나란히 앉아 마취액이 몸에 퍼지기를 조용히 기다렸다. 11시쯤, 딸은 의사를 따라 수술실로 들어갔다. 간호사가 두세 번 방밖으로 나왔다가 다시 들어갔다.
점심시간이 되었지만, 수술은 끝날 기미가 없었다. 병원 내부가 너무 추워, 남편과 나는 병원 밖 복도를 걸었다 오기도 했다. 로비에는 두 명의 환자가 더 대기하고 있었다. 그중 대여섯 살쯤 되어 보이는 어린 여자아이를 데리고 온 엄마가 접수대 직원에게 물었다.
“1시가 넘었는데, 도대체 언제까지 기다려야 하나요?”
직원의 목소리에는 미안함이 가득했다.
“죄송합니다. 수술이 길어지고 있어요. 상처가 꽤 크거든요.”
그녀는 아이 엄마에게 이해를 바라는 듯 오른손 다섯 손가락을 쭉 펴서, 다른 팔 안쪽에 대며 상처의 위치와 크기를 세심하게 설명하고 있었다.
1시 30분이 조금 지난 시각, 의사가 수술실밖으로 나왔다.
“혈관 하나가 끊어져 출혈이 상당했습니다. 피하지방층까지 손상이 있어, 녹는 실로 1차 봉합을 한 뒤, 그 위에 다시 일반 봉합 실로 피부를 꿰맸습니다.”
그는 시간이 오래 걸릴 수밖에 없었다며, 흉터가 남지 않도록 최대한 신경 썼다고 말했다. 남편과 나에게 이 일은, 적당히 놀랄만한 것이라는 것을 이 어린 의사는 몰랐다.
평범한 외출을 한 사람들처럼 밀면을 먹으러 갔다. 열여덟 시간 넘는 공복이었지만, 그리 배고프지도 않았고, 그래서 많이 먹지 않았다. 집에 돌아와 따뜻한 물로 오랫동안 샤워를 했다. 머리를 말린 후 한숨 자려고 소파에 기대어 앉았지만 잠이 오지 않았다. 남편은 어느새 소파 한쪽에서 얕고 고른 숨소리를 내쉬며 깊은 잠에 빠져 있었고, 딸은 쉬겠다며 조용히 제 방으로 들어갔다. 나는 노트북을 열고, 전날 대여해 읽던 책을 펼쳤다. 어제는 미친 듯이 몰입했던 문장들이 오늘은 도무지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엄마인 내가 더 이상 딸아이를 위해 할 일이, 할 말이 있을까 싶었다. 그것들을 한들 무슨 소용이 있을까 생각했다. 이제까지도 소용이 없었는데 말이다. 아픈 딸을 위해, 나 자신을 위해, 그리고 다른 가족을 위해 지치지 않고 애써왔는데, 그럼에도 모든 것이 제자리일 뿐이라면…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과 무엇이 다르단 말인가.
다시 책 속으로 눈을 돌렸다. 더 읽자, 잠시라도 잊자. 열두 살 남자아이가 건넨 반자동 필름 카메라가 지독한 어둠 속에서 죽음만을 바라던 동급생 여자아이를 빛 속으로 이끌었다. 소설 속의 여자 주인공처럼 하얀 밤, 소복소복 내리는 눈을 맞으며 홀로 서 있는 딸아이의 모습을 떠올렸다. 희망은, 기적은 어디에나, 누구에게나 있는데 왜, 왜…. 아이 곁을 지키는 빛이 되어 주고 싶었고, 언젠가는 딸이 스스로 빛을 발하리라 믿었다. 그 믿음엔 유효기간이 있을까.
노트북을 덮고 고개를 들었다. 창밖으로 나뭇잎이 바람에 가만히 흔들리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