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나를 쓰다

다시 제자리에

달라진 것은 없었다

by 글 쓰는 여자



사람의 마음은 참 간사하다. 처음 담임선생님과의 통화를 끝냈을 때만 해도 가슴 한쪽에서 무거운 덩어리가 쿵, 하고 떨어졌다, ‘아, 다른 사람들의 눈에 우리 딸이 장애인으로 보이는구나.’ 오랜 시간 쌓여온 익숙함에 기대어 사실을 외면해 온 건 아닐까, 이미 그런 모습일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이 거세게 밀려왔다.



이제는 모든 것을 받아들였다고 생각했지만, 어쩌면 내 기억 속에는 한없이 빛나는 딸아이의 모습만 남아 있을지도 모른다. 시시때때로 나의 목구멍을 막는 덩어리를 삼키려 애쓰는 행위는 익숙해졌지만, 달라진 딸아이의 모습만큼은 외면하고 있었나 보다.



어느 날, 학교에서 돌아온 딸이 말했다.
“엄마, 우리 학교에 통합반이 있어.”

점심식사 후, 딸아이가 친구들을 따라간 곳이었다. 통합반 선생님과 친분이 있는 친구들은 가끔 그 반을 찾아 시간을 보내곤 했지만, 전학 온 딸은 처음이었다. 이야기를 들어보니, 그 반에는 발달장애 친구들이 있는 것 같았다. 딸에게 어땠느냐고 묻자, 친구들과 이야기도 잘하고 서로 친해 보인다고 했다.

“약간 다른 부분이 눈에 띄긴 했지만, 아주 불편해 보이진 않더라.”.

그러나 덧붙이는 딸아이의 표정은 복잡해 보였다.
“그 친구들이 나와 전혀 무관하다고는 생각할 수 없잖아. 마음이 좀 그랬어.”

두 살 정도 어린 한 남학생이 딸에게 깍듯하게 존댓말을 쓰자, 딸이 말했다.
“편하게 말 놔도 돼.”

그 학생은 똑 부러지게 대답했다.
“저는 친하지 않은 사람에게는 반말을 하지 않습니다.”

딸아이와 나는 “그 아이 소신 있네”라며 함께 웃었다. 그 후로도 딸아이는 점심시간이면 종종 친구들과 그 반에 갔고, 선생님과 반 친구들과 함께 시간을 보내곤 했다.



담임선생님은 통합반 선생님으로부터 딸아이에 대해 들은 이야기를 전하고자 통화를 요청하셨던 것이다. 통합반 선생님은 딸의 장애인 등록 가능성에 대해 담임선생님께 말씀하셨고, 담임선생님은 내게 조심스럽게 물으셨다.
“어머님 혹시, 장애인 등록을 생각해 본 적이 있으세요?”

사고가 났을 때, ‘우리 딸이 남은 생을 장애인으로 살아야 하는구나’ 하고 생각한 적도 있었다. 하지만 그런 생각에 절망하며 허우적대기에는 하루하루가 너무 힘들었다. 그래서 치료와 회복에만 전념하자고 마음먹었고, 그런 생각은 곧 잊혔다.

담임선생님은 조심스럽게 덧붙이셨다.
“현재 딸아이가 불편한 것은 사실이니, 대학 입시나 훗날 취업 등에서 도움이 된다면 고려해 보는 것이 좋지 않을까요?”
전화기 너머 선생님의 목소리에는 내가 언짢아하는 것은 아닐까 하는 걱정스러움과 딸을 향한 안쓰러움이 함께 묻어 있었다.



우선, 내가 이 상황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천천히 생각해 보았다. ‘낙인처럼 찍히는 것은 아닐까’ 하는 걱정이 스쳐 지나갔다. 심란해하는 나와는 달리, 남편은 명쾌하고 단호했다.

“그렇게 된다면, 앞으로의 생활에서도 적절한 지원을 받을 수 있으니, 오히려 우리 아이에게 큰 도움이 될 거야.”

현실을 직시하자고 마음먹었다. 우리 딸에게 힘이 된다면 감사하게 생각하자. 이제는 딸에게 이 내용을 어떻게 전달할지가 문제였다. 내가 받아들인다고 해도, 민감한 나이인 딸의 반응은 예측할 수 없었다. 혹시 딸이 불같이 화를 낼지도 모른다는 걱정이 들었다. 통합반 선생님이나 담임선생님이 제안하셨다는 것을 알게 되면, 선생님에 대한 반감으로 학교에 가지 않겠다고 할지도 모른다는 생각까지 스쳤다.





우연히 알게 된 정보라고 하며 딸에게 이야기했다. 예상대로 딸아이는 몹시 불쾌해했고, 장애인 등록을 하고 싶지 않다고 했다. 도움을 받아 대학에 가고 무언가를 얻는 것이 떳떳하지 못하다고 느끼는 듯했다.

남편은 차분히 설명했다.

“신청을 한다고 다 되는 것도 아니야. 만약 된다면 네가 힘들어하는 부분에 대해 도움을 받는 거지. 그건 부끄러운 일이 아니야.”

남편은 가볍게 주차 혜택의 예를 들었다. 그러자 딸아이는 단호하게 말했다.
“나는 내가 장애인이 된다고 해도 절대 장애인 주차구역에는 주차하지 않을 거야.”

남편은 딸에게 며칠 더 생각해 보고 다시 이야기해 보자고 권했다.



며칠 뒤, 딸아이는 깊은 한숨을 내쉰 뒤 장애인 신청을 해보겠다고 말했다. 얼굴에는 전보다 한결 가벼워진 기색이 비쳤다. 담임 선생님과 정신건강의학과 선생님과의 상담을 거치며 마음을 돌린 것이다. 문제는 시간이 많지 않다는 점이었다. 수시 접수 전에 결과를 받아야 했기에 서둘러야 했다.



주민센터에 문의해 필요한 서류를 확인했다. 의사 진단서가 필요했고, 경우에 따라 추가 검사가 요구될 수도 있었다. 현재 다니는 병원의 재활의학과와 안과 진료 일정을 앞당기려 했지만, 종합병원이라 역시 2~4주를 더 기다려야 했다.



재활의학과와 안과 진료를 받고 여러 검사를 거친 끝에 진단서를 받아 주민센터에 접수했다. 며칠 후, 서류를 넘겨받은 건강보험공단 담당자에게 전화가 걸려왔다. 안과 관련 자료를 추가로 제출해 달라는 요청이었다. CD로 준비해 담당자를 직접 만나며, 최대한 빨리 결과를 받을 수 있도록 협조를 부탁했다.




아이러니하게도, 처음엔 착잡하기만 했던 내 마음은 곧 신청이 꼭 통과되기를 바라게 되었다. 만약 고른 기회전형으로 대학에 갈 수 있다면—이미 대학 진학에 대해서는 마음을 비운 상태였는데, 심란하고 암담하기만 했던 그 마음에 작게나마 희망이 싹트는 것 같았다. 딸아이는 인생을 포기할 기회만을 노리는 사람같았고, 사고 이후, 안 그래도 힘들던 딸의 자존감은 더욱 무너지고, 삶의 의욕은 날마다 줄어드는 듯했다. 그림을 다시 그릴 수 없다는 현실은, 이미 좌절한 아이를 더욱 일어서기 어렵게 만들었다. 그냥 죽으란 법은 없구나, 참으로 간사한 마음이었다.






4주 후, 이틀 차이로 두 개의 등기가 도착했다. ‘뇌병변/장애 미해당’, ‘시각/결정보류’. 결론은 장애인으로 등록되기에는 부족하다는 것이었다. 팔다리에서 스르르 힘이 빠져나가는 게 느껴졌다. 힘들게 신청을 결심한 만큼, 딸아이가 받을 좌절감이 더 걱정스러워 며칠이 지나서야 결과를 말해줄 수밖에 없었다. 입시 결과를 기다리는 것만큼 떨린다며, 어느새 분노의 감정에서 실낱같은 기대를 품고 있는 아이를 보았기 때문이다.



딸아이는 풀이 죽은 목소리로 말했다.
“나는 어디에든 애매한 사람인가 봐.”



다시 제자리였다. 담임 선생님도 심심한 위로를 전해주셨다. 나는 남편에게 그냥 좋게 생각하고 싶다고, 앞으로 살아가는데 도움은 필요하지 않은 아이, 혼자 잘 해낼 수 있는 사람이라는 증명 아니겠냐고, 지금의 현실에서는 기대할 수 없는 것을 알면서도, 아무 말이나 주절거렸다.



결국 아무것도 달라진 것은 없었다. 변함없는 하루를, 우리는 또 묵묵히 건너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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