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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허니 Aug 01. 2024

외할머니집은 산당 2

矜恤



"불살라야 해."

"몽땅 태워야 한대. 하나도 남김없이."

"모두 다."


장미래씨는 여동생 장막래씨와 통화를 마쳤다. (글에 등장하는 인물은 가명을 사용합니다.)

연이어, 맏언니인 장순애씨와 통화했다. 세 자매는 의견을 맞췄다. 소멸하기로 했다.


활활 타오르는 불구덩이 안으로 뭐든 던져보면 안다.

그나마 얕은 시간 동안 해소하는 방법이다. 불사르는 것. 흔적도 없이 사라지게 하고 싶은 것이 있는가? 불태우면 된다. 타오르는 불기둥 밖에서 그것을 지켜보면 깨닫는다. 불과 연합된 것이 무엇이든, 그것이 사체일지라도 결국 불길이 되고 만다. 거칠게 타 올라가는 불길이면 더 빠르게 결합한다. 전부, 불이 된다. 타버려야 할 것이 불꽃을 따라 거침없이 허공으로 흩어진다. 원래 공기였던 것마냥.


남겨진 사람들은 어떻게 해서든 막아야 했다.

그래서 불을 이용하기로 했다. 우리는 긴 세월 동안 두텁게 쌓인 외할머니의 사연이 우리 앞에서 사라지길 원했다. 한 줌의 재만 남길 바랐다. 가족들은 그분의 희생을 안다. 외할머니의 고단한 희생으로 남은 가족이 살 수 있었다. 가족 모두 알지만, 누구도 외할머니 인생을 반복하기는 싫었다. 희생제물이 될 마음이 없었다. 대를 잇게 되면 안 될 일이었다. 혹여, 운명의 적임자가 자신이 될까 두려워했다. 이젠 어떻게 해서든 끊어야 했다. 결국, '그 신분'을 불기둥에 던져 넣기로 했다.


개기월식을 지나는 붉은 달처럼 타오르는 불은 아침 이슬 정도로는 사그라 트릴 수 없다.

외할머니의 짐은 '보통사람'이 짊어지기에는 무겁다. 원하는 사람도 몇 없을 것이다. 외할머니의 남겨진 것들이 흔적도 없이 사라진다면 끝날 것이다. 아니 끝나야 한다.  


타오르는 불을 찬찬히 들여다본 적이 있다.

화장터에서 한 번 봤다. 그다음은 내가 불질렀다. 화장터의 불은 타인의 병실을 지나가는 것처럼 지나쳤다. 몇 걸음을 채우는 시간 동안 바라본 것이었다. 선명한 불길과 붉은 색깔이 아직도 기억난다. '아~ 아...'라며 마음에 외마디를 뱉었다. 불빛이 죽음과 연관되어 있어서 알 수 없는 두려운 마음도 들었다. 그렇지만 이상하게도 아름답다고 느꼈다.




내가 지핀 불의 이유은 스스로 알고 있다.

그것을 불로 태우면 금방 사라질 거라 생각했다. 무슨 행동이던지 처음 하는 것은 무척 서툴다.

투박한 불장난, 나에게는 일종의 화제(火祭) 같은 의식이었다.  


썩어 없어지는 것보다 사라지는 속도가 덧없을 거라 여겼다.

태워야 할 나의 제물이 완전히 소멸되는 과정을 바라봤다. 나는 거친 '불쟁이'였다.

'불'을 다뤄본 적이 전혀 없는 사람이었다. 불 지피는 것에도 기술이 필요하다는 지혜가 없었다.

'태워버릴 것을 전부 모아놓고 성냥을 이용하면 되겠지? 불씨가 붙기만 하면 금방 탈 거야.'  


미숙한 불쟁이가 불로 태워 드리는 제사는 9살 어린이의 장난 수준으로 바뀌었다.

시작은 진지했는데 그 과정을 기다리는 내 마음이 변했다. 모든 행위에는 '정신'을 담을 수 있다. 하지만 전제 조건이 있다. 행위의 수준이 '작품' 즉 ‘예술'로 승화되어야 한다. 예술과 작품만이 '양질의 의식'도 표현할 수 있다. 행위가 서투른 무용수나 손이 투박한 요리사는 진행과정 다른 말로 시퀀스를 걱정하게 마련이다. 현장에서 닥쳐올 다음 순서 걱정을 할 텐데, 무슨 고고한 '정신'을 그들의 행위로 표현할 수 있겠는가?


이를 테면, 슬픔과 환희를 표현해야 하는 무용수인데 오른손을 올려야 하나, 왼 손을 올려야 하나 그다음은 왼발 스텝을 뻗어야 하나, 아니 오른발이었나, 고민한다 가정해 보자. 이 춤을 지켜보는 관객은 무용수의 기쁨이나 슬픔에 대해 공감하기 어려울 것이다. 감동을 의지로 짜낼 수는 없는 노릇이다. 요리사도 마찬가지다. 요리 솜씨가 부족했던 어머니는 '갓절이'라도 만들려면 그때마다 막내 이모가 필요하셨다. 과정 과정을 물으셨다.


"응, 고춧가루? 다음은... 아~ , 그래 ~ 또 전화할게."

나를 부르셔서 3번 이상 간을 봐달라고 요청하셨다. 가족을 위한 음식이었지만, 그 음식으로 ’장인 정신'까지 표현하는 것은 무리였다.


불을 지피고 그 과정을 통해 고고한 의식을 재현하려 했던 나의 모습도 비슷했다.

타긴 타는데 불이 연약하다 보니 시간이 많이 걸렸다. 중간에 다 타기도 전에 불을 끄고 싶었다. 집에 그냥 들어가 물이나 마시고 싶었다. 붙은 불을 갑자기 끄는 것도 문제였다. 나 혼자 진행중이었다. 갑자기 물은 또 어디서 구하며 물을 끼얹어서 불이 꺼지면? 타다 남은 제물은 내 손으로 직접 처리해야 했다. 이건 뭐, 그림이 안 좋았다. 차라리 긴 시간이 걸릴지언정 폼나게 불을 지켜보기로 했다.


그 시간은 나의 '자기 연민'을 태워 없애 버리기에 충분할 정도로 느리게 흘렀다.

이후로 나는 다시는 불을 지피지 않는다. 내가 태웠던 것은 '자기 연민'에 관련된 물건과 추억 꺼리였다. 당시에 나는 내 모습에 만족하지 않았다. 타인과 비교하면서 자신을 못나게 생각하고 세상에서 제일 불쌍한 사람으로 여겼다. 아직 이십 대인데 노인처럼 생각했다. 희망을 꿈꾸기보다 이전의 영광만 바라봤다.

그것은 열등감이고 교만이다. '화양연화'라는 마음의 방에 들어가 살았다. 현실과 미래로 통하는 문을 닫아 버렸다. 우리에게 '화양연화'는 항상 다가올 내일인데 그때는 이미 지나가버렸다고 생각했다.


그 의식은 망했다. 하지만 노력은 배신하지 않는다.

나의 자기 연민의 병이 점차 회복되었다.  


나의 조촐한 의식처럼 가족들도 의식을 집행했다.

그렇다고 외할머니의 사랑을 잊겠는가? 외할머니의 헌신은 우리의 마음에 영원히 남아있을 것이다.

사랑과 기억은 어떤 불로도 태울 수 없다. 태우고 싶었던 것은 기구한 외할머니의 숙명이었다. 불을 이용한 가족들의 예식 때문이었는지, 나의 기도 때문이었는지 정확한 이유는 아직 모른다. 하지만 가족들의 바람처럼 가족 누구도 외할머니의 운명을 물려받지 않았다.




불꽃이 되어 사라진 외할머니의 유품 중에는 외할머니의 집 다시 말해 산당, 신과의 연합을 위해 사용된 집구, 할머니의 비녀, 옷, 버선, 요강 그리고 외할머니의 삶을 지탱해 준 모든 것이 있었다. 지금은 세상 어딜 가도 찾을 수 없다. 가족들의 두려움도 함께 사그라들었다.


불을 끄는 방법은 두 가지다.

삼킬듯한 불길보다 강하게 애끊는(矜恤) 물줄기를 쏟아부어야 한다. 번잡한 인생들에게 폭우는 신의 긍휼(矜恤) 인지도 모른다. 이건 마치 물줄기와 불길 사이의 싸움 같다. 다른 하나는 태우기로 마음먹은 것들이 소멸될 때까지 기다리는 것이다. 불꽃 곁에서 잠잠히.



소멸하는 불





어머니와 외할머니는 내가 태어나기 전부터 서로 가족이었다.

두 분은 남겨진 가족의 일원이었다. 남겨졌다는 말을 뒤집으면 어떤 가족은 떠났다는 의미다. 외할머니에게는 신랑님이 계셨다. 두 분은 사이가 좋으셨다. 어머니를 보면 알 수 있다. 말 수가 적고 수줍음을 잘 타시는 분이다. 타인과의 대화에서 경청을 잘하는 분이 나의 어머니다. 엄마의 성품이 외할아버지를 닮았다는 확신이 든다. 외할아버지는 어머니가 초등학교 들어가기 전에 돌아가셨다.


외할아버지는 외할머니를 만났고 슬하의 2남 4녀의 자녀를 두셨다. 첫째와 둘째는 둘 다 아들이었고, 셋째 넷째 다섯째 그리고 막내는 줄줄이 딸이었다. 이 가정은 시골에서 제법 여유가 있었다. 나는 외할아버지 얼굴을 본 적이 없다. 전혀 모른다. 하지만 큰 외삼촌과 막내 이모의 외모를 보면서 짐작했다. 외할아버지는 훤칠한 미남이셨다. 코도 오똑하고 훈남이셨다. 큰 외삼촌과 막내 이모는 외할아버지를 닮아서 혼혈아처럼 이목구비가 뚜렷하다.


이런 멋진 외할아버지는 돌아가시기 전까지 긴 병을 앓으셨다. 가세는 점점 기울었다. 엄마가 무척 어렸을 때였다. 외할머니에게 할아버지의 죽음은 두 번째 고통이었다. 둘째 아들은 낳고 몇 해를 넘기지 못했다. 어머니도 둘째 오라버니에 대한 기억이 있다. 외할머니는 밥을 먹이고 입히고 재우던 예쁜 아들 얼굴을 더 이상 볼 수 없었다. 여기서 할머니의 고통이 끝났다면 다른 인생을 사셨을 것이다. 어머니 나이 18살이 되자 집안에 슬픔을 몰고 올 또 다른 액운(厄運)의 먹구름이 덮쳤다. 네 번째 딸이 또 외할머니와 가족 곁을 떠났다.


외할머니가 어떻게 이 한과 애끊는 슬픔을 이겼는지에 대해서는 모른다.

알 것 같은 외할머니의 심정은 하나 있다. 외할머니는 살 길이 막막해도 이단 종교에서나 벌어지는 끔찍한 선택을 하지 않았다. 단 하나의 마음으로 간구했을 것이다.

 

"더 이상은 안돼. 어떻게 해서든 죽음을 막고 싶어. 남은 내 새끼들은 모두 살릴 거야. 내가 살릴 거야. 신이 있다면 불쌍한 나와 내 자녀들을 부디 살려 주쇼. 내 팔자가 기구하기는 하지만 내 자녀들까지 기구하게 살게 할 수는 없소. 누군가 구원할 힘이 있다면 나 좀 도와주쇼. 내 새끼들을 좀 돌아보아 주쇼.‘



그 뒤였을 것이라 예측한다. 외할머니는 신을 만났다. 내가 믿는 신과는 다른 신이었다. 일본에는 30만 개가 넘는 신사가 있고, 신의 수는 그보다 훨씬 많은 것으로 알려졌다. 신의 수로 치자면 뒤지지 않는 나라가 인도다. 세상에는 신이 많다. 외할머니도 그 수많은 신 중에 어떤 신을 만났다. 어머님의 말씀에 따르면 애기귀신이라고 했다. 신을 만나는 것과 신을 자신의 신으로 받아들이는 것은 다른 차원이다. 외할머니는 의지할 신이 필요하셨다고 짐작한다.


나는 외할머니에게 이런 부분에 대해 아무 질문도 하지 않았다. 외할머니께서도 마찬가지였다. 자신의 숙명, 고통, 그럴 수밖에 없었던 두려움이나 이유에 대해 설명하지 않으셨다. 이해를 구하거나 설득하지 않으셨다. 가족 관계의 장점이자 단점일 것이다. 한 편으로는 배려이거나 사랑이고 말이다. 모르는 척, 못 본 척하는 것이다. 바꿀 수 없을 때 이해시킬 수 없을 때 그냥 기다릴 필요가 있다. 서로 기다려 주는 거다. 그러면 의문의 불씨가 사그라들 때가 온다.




외할머니에게


할머니

할머니

사랑해요.


할머니

어떻게 다 꺼내 보여야 할지 망설였어요.

할머니 집에서 보낸 시간들


하얀 눈이 펑펑 쏟아지던 날 '사료 비닐 포대' 하나면

웃음꽃도 하얗게 피었어요. 너무 신났어요.

하얀 눈 위를 날으는 썰매 탔는데 잊을 수 없어요.

하얀 눈을 보면 그 시간이 떠올라서

혼자 웃어요.

눈이 오는 시간은

할머니를 꺼내보는 시간이에요.


"나는 외할머니가 제일 좋아."라는 말 한마디를

설 날에도 추석에도 또 다음 설 날에도

가족들만 모이면 자랑하셨죠.

제 말이 할머니의 자랑스러운 메달이었다면

더 자주 할머니에게 걸어드렸을 텐데 아쉬워요.


요강에서 소변을 눌 때마다

신기하기도 했지만 불편했어요.

‘빨간 손이 나올지, 파란 손이 나올지' 모르는

재래식 화장실을

한 밤에 가는 건 너무 무서웠죠.

할머니가 문밖에서 기다려 주실텐데도 무서웠어요.


할머니집에서 보내고 나면

할머니께서 저를 너무 잘 먹여주신 탓에

제 배가 불뚝 튀어나왔죠.

산으로 들로 곤충 잡으러 다니고

개천에서 수영하느라 피부는 새까매졌고요.

엄마는 그런 나를 촌닭이라 부르시더라고요.

할머니가 촌닭으로 만들어 주신 삼계탕처럼

저도 맛있어졌다는 말이겠죠?


대학 때 친구들과도 나눈 말이었는데요.

할머니께도 이제야 마음으로 드려요.

시골 아이로서 보낸 시간은 제게 재산이에요.

눈과 마음으로 만났던 자연 속의 기억,

나의 뿌리, 할머니의 잊을 수 없는 품과 사랑 덕분에

메마른 도시에서 살 힘을 얻어요.


저도 살기 팍팍하면 따스한 마음을 잃어버려요.

그런 때 고향을 떠올려요.

할머니와 어머니 그리고 나의 마음의 쉴 곳.

크던 작던 감수성과 따스함을 회복할 기억이

그 집에 있어요.


할머니 힘드셨을 텐데

자주 웃어 주셔서 감사했어요.

마음으로 할머니를 안아봅니다.


‘딸들이 다 예쁘지만 네 엄마가 가장 착했어.

어릴 때부터, 할미랑 엄마랑 너랑은 달라.

허니야 너무 걱정하지 말고

용기를 내렴.

우리 똑순이 이제 할미 네 엄마 꿈에

찾아가지 않아도 될 거 같아.

나 대신 엄마 많이 안아주렴.

예쁜 내 손녀.‘


할머니의 마음이 들리는 거 같아 기록합니다.


눈 내린 풍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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