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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허니 Oct 17. 2024

낯선 초대가 계속되는데...

반복되는 느낌



PD 수첩


아침 7시 뉴스에 내 얼굴이 나왔다. 대학교 3학년 때였고, 학교 근처에서 보렴 언니랑 걸어가고 있었다. 뉴스 제작진이 길거리에서 인터뷰를 따기 위해 우리를 멈춰 세웠다. 버스 노선에 대한 시민의 불편함을 보도하려는 의도였다.


카메라 앞에 서는 게 나는 언제나 편했다. 엄마가 아주 어린 시절부터 어딜 데려가시든 나의 사진을 계속 찍어 주셨으니까. 카메라 앞에서 나의 표정과 몸짓을 만드는 일이 친숙하다 보니, 그앞에 서기만 하면 자동적으로 미소를 지었다. 웃을 때 가장 예쁘다는 소리를 들었으니까.


자연스럽게 웃었을 뿐인데 담당자는 자꾸 NG를 냈다. "다시 가죠."라는 말을 서너 번 하더니, 결국 엄격한 어투로 다그쳤다.


"저기요. 저희는 이게 밥벌이예요. 웃으면 안 돼요. 진지하게 해 주세요."


다시 웃음이 나올 것 같았지만 꾹 참아야 했다. 길거리에서 만드는 짧은 인터뷰 영상조차 제작의도에 맞는 표정과 대사가 필요하다는 사실을 경험했다.


뉴스 길거리 인터뷰 장면 :)


또 다른 TV 프로그램 <PD 수첩>과도 에피소드가 생겼다.

이번에 나는 진지하게 반응했고 울먹였는데 이때문이었다.


나는 통기타 연주와 대중음악을 노래하는 동아리에서 활동했다. 통기타 동아리에서 희수를 만났는데 희수는 가정학과의 청일점, 유일한 남학생이었다. 어느 날은 희수가 내게 다가와 '과외 알바' 얘기를 꺼냈다.


"허니야 너 과외 알바 할래?"

"왜? 소개해 주게?"

"응. 내일 여기서 만나면 소개해 줄게. 정말 좋은 자리가 있거든."


오전 일찍 삼성역으로 나갔다. 희수는 가정학과 선배인 희선언니와 함께였다. 희수와 희선언니가 나를 막상 데려간 곳은 역 근처에 위치한 어떤 회사였다. 과외를 중개해 주는 일과는 상관없는 분위기였다. 공간이 넓은 사무실도 있었고 크기가 작은 룸공간이 몇 개 더 있었다.


나처럼 처음 참여한다고 보이는 멤버들이 상당수라고 추정되었다. 희수나 희선언니처럼 기존 멤버였는데 새로운 멤버를 인솔해 온 대학생들도 수십 명이었다. 마지막 부류는 회사 직원들처럼 보였다. 거기 모인 인원 전체가 큰 강의실에서 북적거리는 가운데 차차 의자에 앉았고 수업을 들어야 했다.


그쯤 되자 말로만 듣던 '피라미드 비즈니스'라는 직감이 들었다. 그들은 전체 규모의 수업이 마쳐지자, 신입 멤버만 다시 소그룹으로 재편성했다. 각 각의 소그룹은 작은 사무실로 옮겨졌다. 다른 종류의 수업이자 홍보가 계속되었다.


곤충의 더듬이처럼 나의 인지 감각이 그 장소와 상황을 열심히 감지했다. 빠르게 목표를 설정했다.


'살아서 돌아가자!'


그 시간, 믿을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피라미드 사업 단체에서 생명의 위협을 겪었다는 이야기는 들어보지 못했다. 이단 종교 (범죄) 조직에서는 있었지만. 피라미드는 나를 멤버로 만들기 위해 단계별로 빌드업하는 조직이었다. 그들의 미끼에 마음이 홀려서 끌려다니고 싶지 않았다. 시작부터 완전 봉쇄하려는 나만의 캐치프레이즈를 붙잡았다.


'살아서 돌아가자!'


'스스로의 삶의 의미가 희미해졌다더니... 때문에, 우울하다 못해 죽고 싶다더니...'

이런 상황이 닥치자 매우 역설적인 본능이 샘솟았다.


심장 좌심실의 팔닥거리는 박동은 대동맥을 거쳐 온몸으로 혈액을 내보내는데 그 덕분이었을 것이다.

나의 뇌는 우울증 질환으로 마치 물기가 닿은 솜사탕처럼 위태로웠으니까.  

심장 박동 덕분에 생명 본능에 강하게 사로잡혔다.


사람이 간사하다더니 나도 사람이었다. 이런 상황에 처하게 되면 더없이 냉정해지는 사람! 자신들의 비즈니스나 상품에 대해 유혹 중이던 스텝 한 분은 갑자기 나에게 포커스를 맞췄다.


혈액형을 통해 나를 파악해 보자는 의도였다. MBTI 테스트가 유행하기 전에는 혈액형 분석이 일반적이었다. 통상적인 그 질문이었다.


"혈액형이 어떻게 되세요?"

"네, 저요? O형이요. 그건 왜요?"

"네? O형이라고요? O형은 대부분 다혈질이던데. 지금 이 시간까지 참으면서 과묵한 사람은? 흠... 여태 본 적이 없어요. 대부분의 O형들은 자기를 데리고 온 친구에게 진작에 화를 냈겠죠. 그러면서 뛰쳐나가 버려요. 아니면 관심을 완전히 확~ 보였을 거예요. 양단으로 나뉘는데... 학생처럼 조용하고 냉철하게 있는 사람 처음 봐요. 이렇게 긴 시간 동안."


'당신이 나 같은 O형을 처음 보던 100번째 보던 그딴 건 중요하지 않고요. 속 답답한 모임 빨리 끝나서 집으로 가고 싶어요.'


"아 그래요? 제가 그렇군요."

'여기서 살아서만 나가자.'


다짐대로 건물밖으로 나올 수 있었다. 하늘빛은 이미 어두웠다. 본가가 서울이었던 희수와 희선언니가 자신들의 집으로 곧 장 퇴근하면 좋으련만 나를 따라왔다. 학교 정문 커피숍에서 그들은 마지막 진술을 시도했다. 과묵한 나의 태도는 부드러워질 기미가 전혀 없었다. 그들은 그러자 떠났다.  


하숙집에 들어 서자 마자 참아 왔던 울음을 터뜨렸다. 까닭이 궁금해진 룸메이트는 이유를 물었지만 대답보다 시급해 보이는 일을 먼저 진행했다.


전화기 앞에 앉았다. <PD 수첩> 제보팀 번호를 눌렀다. 담당자가 응답하자 그날 있었던 일에 대해 차근차근 보고했다. 담당자의 반응이 이전 인터뷰의 진행자처럼 엄격했다. 눈물이 나오려다 말고 쏙 들어가 버렸다.


"아니 그래서 피해본 부분이 뭐예요?"

당시 나는 대답을 찾지 못했다.

"음.. 딱히... 없어요."

"아 그럼 보도할 어떤 정보나 자료가 없는 상황이네요. 그럼, 재고할 여지가 없어요."

"아~ 네."

"하루에도 수십 통 이런 전화가 와요. 피해 사례가 분명해야 해요."


지금의 나라면,

"친구를 믿고 따라갔으니까 불신을 경험했어요. 정신노동을 온종일 했고요. 시간과 신뢰의 마음에 피해를 입었어요"라고 했을지도 모르겠다.


통화가 끝나자 효과가 발현되긴 했다. 담당자의 따끔한 훈계조의 반응 때문인지 나는 안정적인 마음 상태를 금방 회복했다. 그제야 룸메이트에게도 남은 설명을 전달했다.


몇 주 지나 알게 된 사실이었다. 비슷한 일을 겪은 학생들이 학교에 부지기수였다. 복학생으로 착한 상수 오빠가 당한 일화다. 동아리 여자 후배에게 유사한 꼬드김으로 끌려갔다며 피해 사례를 하소연했다. 상수오빠는 한 달치 용돈을 몽땅 써버렸다. 회사 물품을 구입했던 것이다.


오빠는 '자신이 거지가 되었다'며 쓰라린 심정을 표현하려 애를 썼다.

배고플 때마다 '뻥튀기'로 배를 채웠다는 오빠는 억울함을 감추지 못했다.

'뻥튀기'라는 말을 듣자 우리 모두는 빵 터졌다.

상수오빠만 웃지 못했다.


완성된 욕설은 하지 못했고 그 중간쯤 어딘가의 외마디만 연발했다.

"아 씨~ 아 씨~ 아 씨~"

곁에 있던 수근오빠와 서진오빠가 덧붙였다.

"동아리 후배가 예뻤지?"


PD 수첩의 이단교회 콘텐츠와 피라미드의 경험, 둘의 경험은 비슷한 색깔로 저장되었다.

불신의 기운이 가득한 단체 활동.


약속 당일이었다. '종교적 훈련 단체'와 함께 서울로 올라온다던 한주와 만나기 위해 인사동으로 향했다. '그녀를 만나는 곳 100m 전' 노래 가사처럼 설레기만 했으면 좋겠는데, 발걸음마다 다양한 감정과 추측이 오르락내리락거렸다.


한주와 마주 앉았다. 나를 향한 한주의 마음이 내 요동치던 마음과 닮아서였을까? 한주의 눈빛을 나도 응시했는데, 측은함이 느껴졌다. 우리는 서로의 시선을 통해 상대를 걱정하는 마음을 한가득 전달했다.


그날 남긴 한주의 말은 낯설었다. 마치 레어 스테이크를 먹을 때 기분이랄까?


덜 익고 두툼한 스테이크 한 조각이 입안 가득 들어온 상태여서 계속 씹지 않으면 넘길 수 없을 때나 느끼게 되는 기분말이다. 나는 (Beef)쇠고기를 찾아 먹지는 않는다. 핏기가 생생한데 요리가 끝났다며 접시에 올려진 후 장식까지 깃든 스테이크는 잘 먹지 않는다. 그게 내안으로 들어올 때 썩 반갑지 않은 탓에 도로 뱉어 내지도 못하지만 그렇다고 기분이 좋지도 않다. 씹는 내내 딴청을 피우거나 그 느낌을 초연할 만한 다른 풍경에 집중한다.


넷플릭스 드라마 Beef 주인공들 :)


"신(하나님)이 너를 기다리셔. 신(하나님)이 너를 사랑하시거든. 기도할게."


고등학교 시절 짝꿍으로 친하던 시절에도 한주는 크게 다르지 않았다. 신비함과 이질감을 동시에 발산했다. 나를 향한 한주의 생각도 동일했다. 각 자가 지녔던 독특한 자신만의 세계를 바로 곁에서 느꼈지만, 굳이 서로를 뒤섞거나 융화하려는 노력은 없었다.


마치 빨간 머리 앤이 '벚꽃이 가득한 숲 속'에서 상상의 세계 안으로 들어가 꿈을 꾸듯 우리는 각 자의 꿈을 꾸었다.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가 긴 잠에 빠져든 뒤 모험하는 것처럼 자신의 세계를 탐험했다. 


서로의 세계가 중화되기 어렵다고 받아들였다. 그녀의 세계와 나의 세계는 각 각의 궤도를 도는 행성과도 같았다. 그 나름의 매력이 있었기에 공존하고 싶었을 뿐이었다. 


그럼에도 우리는 서로의 세계를 바라봤다. 

부러워하지도 않았고 서로의 다름에 대해 불편함을 느끼지도 않았다.


내가 해변에 앉아 지는 해를 바라보는 것이라면 한주가 지평선이 되어 주었고

한주가 해변에 있기를 원하는 시간에는 내가 지평선으로써 한주의 바라보는 곳을 지켜주었다.  


그날의 나와 한주는 잠시동안이었지만 그때처럼 서로를 주고받았다.


한주가 딸을 낳아 기르고 있다면 그 자녀가 보고 싶다. 눈이 참 예쁠 텐데.

'행복하렴 한주야~ 너의 기도가 실상이 되었단다.'




두 번째 초대


희수의 거짓부렁은 허사였지만 다른 경로로 과외수업을 시작했다. 학생 집을 방문했고 그 집 주소는 성남시였다. 아파트 단지에 있는 학생집에 처음 들어가는데 그립던 고향 집에 들어가는 것처럼 마음이 녹았다. 학생의 어머님은 문 앞에서 미소로 나를 반겨 주셨다. 맛있는 간식이면 충분할텐데 식사까지 점차 챙겨주셨다.


우리의 대화 시간은 점점 늘어났다. 주제는 나연이었다.


나연이를 생각만 해도 애가 타셨던 어머니여서 내 앞에서 눈물을 자주 보이셨다. 나연 어머님과 시간을 보낸 후 서울 집으로 돌아가야 할 시간이 되면 나는 엄마가 그리웠다. 전화기를 그냥 지나칠 수 없었다.


기남이와 어울리던 시절의 내 모습이 떠올랐다. 그 시절, 나를 위해 우셨을 분은 엄마였다. 엄마에 대한 연민과 애정으로 애가 타는 사람은 이제 나였다.


전화를 걸긴 걸었지만 별다른 말을 건넬 줄도 몰랐다. 그냥 마음 때문에 목소리를 주고받을 뿐. 고금의 간격사이에도 엄마들의 눈물은 연결되어 있다.


기도하는 손 (알브레히트 뒤러)


"공부하잖아요? 내가 해야 할 공부를 안 해요? 강남에 물 좋은 클럽 좀 다닌다고 세상이 끝나요? 성적 이만큼 챙기면 됐지. 뭔 걱정이 그리 많죠. 이해가 안 돼. 세상에 나만한 딸이 어디 있다고. 똑똑하지, 키 크지, 공부도 할 만큼 하지? 진짜 지겨워. 그놈의 잔소리."

"그래도 아버지께는 비밀로 해 주시잖아."

"그건... 집안이 시끄러워질 게 뻔하니까요. (형사) 아빠가 알게 되면 집안뿐 아니라 강남역 근처, 클럽이란 클럽은 죄다 시끄러워질 거니까. 안 봐도 비디오지."


'아뿔싸~ 너는 그걸 알면서 JR이냐?'

"그래 쌤인 내가 할 말은 없지. 내가 너랑 똑같았으니까. 이 녀석아. 문제나 풀어. 니 말대로 관리해. 성적도 관리하고 클럽도 관리하고. 문제 풀자. 풀어."


나연이는 입시 준비로 다급하게 노력해야 할 시기에도 클럽 다니는 것, 친구들과 노는 일정을 포기하지 않았다. 별수 없이 우리는 합의 하에 과외 형식을 바꿨다.


토요일 저녁에 수업을 한 차례 하고, 그 밤에 우리는 함께 잠들었다. 일요일 아침에 일어나서 수업을 한 차례 더 진행하기 위해서였다.


이런 방식으로 수업을 진행할 수 있었던 근원은 내가 먼저 받은 수혜 때문이었다.


급하게 성적을 올리던 고등학교 2학년 2학기와 3학년 시기였다. 나의 수학 과외 선생님은 첫 아이까지 임신한 상태였다. 임신 소식을 알게 되자 학교 수학선생님으로서 근무는 그만두셨다.


선생님은 토요일 저녁마다 뱃속 아이와 함께 나의 방으로 방문하셨다. 수업 끝나면 신혼집에 비해 많이 불편했을 내 방에서 주무셨다. 다음 날인, 일요일 새벽에 일찍 일어나기 위해서였다. 아침 5시만 되면, 매 번 졸려 죽겠다는 나를 어떻게 해서든 깨우셨다. 일요일에도 학교를 등교했는데 그전에 수학 수업을 한 번 더 하기 위해서였다.


요즘 인플루언서들이 '아이스 버킷 챌린지'를 자주 하던데. 과외 선생님이 나를 깨울 때 괴로운 느낌이 바로 이것이리라. 얼음 한 동이를 머리부터 무자비하게 퍼붓는 느낌.  


잠이 많았던 나는 주말 수업 동안 반수면 상태였다. 몽롱한 정신으로 미적분과 수능수학을 풀었다니? 두 번은 못할 짓이다. 그럼에도 정답이 딱딱 떨어지는 논리적인 수학과목이 제일 좋았다. 선생님과의 드림팀웤 덕분에 나의 수학시험지에는 오답이 거의 없었다.


참고로 감옥이라 불려진 우리 학교는 토요일에도 봉고차를 타면서 하교해야 했다. 저녁 10시까지 야자수업을 끝내야 집으로 퇴소할 수 있었다. 집에 들어와서 교복 입은 채로 곧장 과외수업을 시작했고, 담 날 수학 과외선생님이 새벽 5시에 깨우신 이유도? 다시 아침에 봉고를 타야 했기 때문이었다. 등교 시간은 아침 7시였다.


내가 받은 사랑을 나연이에게 흘려보내는 일은 자연스러운 선택이었다. '나연이 곁에서 잠을 자다가, 다음 날 아침에도 수업을 진행해 보자'는 제안은 내 쪽에서 했다.


한 번은 나연이 어머니를 위해 감명받았던 책 한 권을 선물로 준비해서 드렸다. 그 책은 법정 스님의 수필 <무소유>였다. 그 책을 선물하는 건 3번째였다. 그만큼 그 책이 좋았다. <무소유>를 받으시더니 고맙다고 하시면서, 대화를 계속 이어가셨다.


"아 실은 요즘 제가 하는 행동이 어불성설이란 건 알아요. 저는 하나님을 믿고 어릴 때부터 교회에 다녔어요. 근데 우리 나연이가 저렇게 말도 안 듣고 속상하게 하잖아요. 해서 얼마 전에는 절에 갔어요. '나연이 이름'을 절에도 올려놨어요. 해볼 건 다 해보자는 심정인 거죠. 근데, 선생님이 <무소유>? 이런 책을 읽으시는 걸 보니, 오늘은 이런 류의 대화를 하고 싶어요. 선생님 요즘, 어떤 정신적인 것에 대해 갈망이 있으신 거죠? 하나님을 찾고 있나요? 저는 성남시에 다니는 교회가 따로 있어요. 선생님 사시는 서울에 찬양이 좋은 교회가 이촌동에 있어요. 저도 거기 청년부 예배에 가끔 참석해요. 맨 뒷 줄에 앉아 그냥 한 참 시간을 보내다 와요. 다른 사람 인식하지 않고 혼자 앉아 차분하게 울다 보면, 마음이 편해지거든요. 이촌동 거기 좋더라고요. 선생님 지금 가보시면 너무 좋을 거 같아요."


<무소유>를 드렸더니 신을 만나라니? 뜬금없었다. 나의 마음을 눈치챈 어머님의 말들은 틀리지 않았지만. 거기에 대한 나의 반응도 솔직했다. 보통은 어머님이 힘든 시기인지라 나는 어머님의 기분을 맞춰 드렸다. 이번에는 내 뜻을 명확히 표현했다.


"서울과 한국 곳곳에 십자가 너무 많아요. 그렇지만 사회가 바뀌나요? 소용없는 거 같은데요."

당황하지 않고 말씀을 이어가셨다.

"맞아요. 사람을 지켜보면 선생님 평가가 백번 맞아요. 저도 믿음과 상관없는 행동을 하잖아요. 그치만 하나님은 하나님이에요. 하나님만 집중해서 나가 봐요. 하나님을 만나면 하나님은 좋은 분이에요. 사람과 달라요."

길게 논쟁하고 싶지 않았다.

나는 "네"라고 마무리 지었다.


집중해야 할 대상을 알려준 어머님 말씀은 나의 편견의 성에 균열을 만든 건 사실이었다. 구더기가 무서워 장을 못 담그고 있었는데, 내가 염려한 건 나에 관한 것이었다. 새로운 구더기로써 ‘본질’에 이물질이나 추가할 다음 타자가 내가 될것 같아서였다. 허나, 적어도 비진리였던 PD수첩 영상 이미지는 균열의 틈사이로 흐물흐물 흩어졌다.


힘을 잃은 편견은 더이상 편견이 아니다. 반작용의 탄력이 더해진다면 진리의 아군이 될 여지나 다름없다.


목이 마른 아이가 가졌을 갈망에도 불구하고, 진리의 산을 오르려는 나의 발걸음은 뭉툭했다.

두 번에 걸친 초대가 기억나지 않는 사람처럼 그저 나의 일상을 소비했다.





< 또 다른 초대 16화에 계속됩니다. ^^

To be continued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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