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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허니 Nov 07. 2024

자유의지로 자유하라?

끝이 오기 전엔 끝이 아닌 삶



어차피 혼자


다시 혼자여야 했다. 차라리 솔직해지라는 신호였다.

하리언니의 결정은 나에게 자유를 부여한 것일 텐데, 훈련되지 않은 사람에게 자유의지는 난해했다. 짐볼 위에서 스쿼트 운동을 하는 사람처럼 어정쩡한 상태를 유지했다. 정확하지 않던 감정을 점검하는 계기였다. 진정한 끌림인지 아닌지를.


"허니야 나는 이번 주부터 가족 다니는 커뮤니티*로 나가려고. 그렇게 하는 게 맞는 거 같아."

나는 고개만 끄덕였다.


예초에 도움을 구한 입장은 내가 아니라 언니였다. 언니는 나를 의존한다는 생각이 들었을 것이다. 다른 하나는 가족이 함께 다니는 '공동체*'를 피한 채 이촌동의 커뮤니티까지 찾아가는 자신의 모습은 현실도피로 생각되었을 수 있다. 그쪽 커뮤니티에서 기도하며 기다리고 있었던 언니의 친동생 역할도 컸으리라 짐작했다.


하나, '신'의 생각은 달랐으리라.   


나의 내면의 건강 상태가 하리언니에 비해 나빴을지도 모른다. 새로운 영적 여행을 홀로 시작하기에 우린 둘 다 부서질 듯 연약했으니까.


그때까지 버텨 왔던 지난날의 나로서도 외로웠고, 후로도 일관되게 외로울 테니까. 당시 나는 신의 존재조차 불신했고, 신은 오히려 나 자신이라 생각했다. 믿을만한 존재는 이 세상에서 유일하게 나뿐이라고.


스스로에 대한 신뢰가 완전히 꺾이자, 비로소 나보다 큰 세상과 역사 그리고 그 우주 속에 먼지보다 작은 나의 존재감을 확인할 만큼 교만했었다.  


그럼에도 나는 하리언니에게 솔직하게 도움을 구하지 못했다. 언니만의 길을 가도록 침묵했다. 하리언니를 돕는다는 핑계 삼아 3주 더 출석해 볼 참이었는데, 끌리지 않으면 관두면 그만이었다.


해오던 대로 내 수준의 노력을 하고, 살아오던 방식을 반복하는 게 쉬우니까.

주변 누구에게도 나의 마음의 깊은 문제만큼은 입 꼭 다물고, 소통하지 않을 테고. 대신 <사후 세계의 영적 원리와 법칙>에 대한 궁금증은 품고 있었을 것이다. 그거라도 붙들고 있어야 살아갈 근간이 될 테니 말이다.


멀리 여행을 다녀오는 방법도 추가할 대안이었다. 여행은 일상의 좋은 전환의 계기였고, 감수성도 회복되었고, 꿈과 목표도 심어 주었다.


미국 서부 기행 때 생겨난 꿈이었다. UC Berkeley 대학에서 공부하고 싶다는 마음이 들었다. 우아하고 고전적인 Stanford 대학 문화보다 답답한 권위주의아래서 성장기를 보낸 탓인지, UC Berkeley 에서 느껴지는 히피적 문화, 자유분방한 캠퍼스 정서가 끌렸다.


대학 순위는 중요하지 않았다. 꿈이라는 건 불가능성이라는 기반 위에 피어나는 법이다. 가능성과는 상관없이 자석에 들러붙는 철가루처럼 꿈꾸는 사람에게 들러붙는 것이다. 그것은 현실이 아닐 때만 비로소 꿈이 될 자격을 갖추게 된다. 



꿈을 이루기 위해 노력하고 실천하기 시작한다면 이제 그것은 목표가 된다. 곧 우리의 현실이 될 이야기나 마찬가지다. 일단 누군가의 꿈이 되기 위해서는 서로 끌려야 한다.   


20대 중반까지 나의 목표 설정은 감각적이었다. 여러 데이터와 자료조사를 기반으로 한 논리적이고 설득적인 목표나 기획은 아니었다. 일반적으로 떠도는 얕은 정보의 기초 위에, 감각이 끌리면 직관적으로 빠르게 선택했다.


목표 설정의 동기가 단순했다. 여행 때 만난 미국의 일부(실리콘 밸리 등)와 미국 대학들이 좋았다. 특히 도서관에 들어서자 거기에 머물고 싶었다. 그곳에서 먼저 공부하고 있었던 학교 선배가 멋있어 보였다. 그 시기에는 어찌 되었든 우울한 현실에서 탈출할 좋은 목표가 생겨야 했다.  


공부를 내둥 안 하던 나였지만, 그것도 스타일이었다. 일단 목표가 결정되면, 럭비선수처럼 저돌적으로 공하나에 매달리는 스타일 말이다. 몸씨름을 하던, 버티던, 땅바닥에서 구르던, 어떻게 해서든 뛰어가서, 점수를 획득하려는 미식축구선수 같은 성향이 있었다.



목표를 이루기 위해서라면 스스로를 통제하고 전력질주하느라 다른 많은 일상적인 것에 문외한으로 변하는 습성이었다.


그때부터 공부 좀 해보겠다고 <토질역학> 전공서적부터 펼쳤다. 토질역학은 지반 또는 흙을 공사재료로 이용하는 측면에서 역학, 수리학, 화학 등의 원리를 응용하며 흙을 역학적으로 해석하는 학문이다. 선배들이 나의 시험 결과에 의아해했다. 담당 교수님은 아마 이렇게 생각하셨을 것 같다.


'이 녀석 계속 놈팽이 같더니, 학교 잔디 깔고 입학한 녀석은 아닐세. 이번엔 공부 좀 했네.'

놈팽이 대학생이 공부한답시고 몇 시간 하더니 그것치고는 점수가 나왔다.


그랬다. UC Berkely를 이유 삼아 더 멀리 가버리면 될 일이었다. 늘 그렇듯 막판 스퍼트로 전력질주하는 것은 숨차고 죽을 것 같지만 또 죽진 않으니까. 웬수같은 놈팽이 기질이었다. 토 나올 싸이클로 돌입하려 했다. 30대 이후 놈팽이 기질을 인생에서 떼어내기 위해 부단한 노력과 시간을 들였다. 때문에 나는 이런 기질을 생각하면 징글맞다.    


'그래 뭘 새롭게 알아가나? 원래 영적이고 거룩한 옷 같은 건 나랑은 안 맞아! 공부나 해서 미국에나 가자. 최신 유행 좇는 게 삶의 낙이고, 즐기는 삶 좋아하고(YOLO), 물질과 황금을 사랑했던 나잖아. 내게 맞는 솔잎이나 먹으면 제 격이지. 암~'




물 좋은 곳


삶의 중요한 결정의 순간에 '상황'이라는 운명적 힘도 함께 작용한다. 상황의 인도는 나의 주춤거리는 마음과는 달랐다. 선명하고 분명하다고 느껴졌다. 영적 여정을 혼자 시작하지 않아도 될 것 같은 가능성이 슬며시 열렸다.


고등학교 시절부터 베프였던 희진이도 나를 초대했다. 희진이와 나의 취향은 원래는 비슷한 점이 많았다. 희진이는 자취하는 집이었음에도 강남역 근처의 넓은 아파트에서 살았다. 아버지가 지방에서 성공한 사업가로서 그 정도는 충분히 감당하실 수 있으셨다.


대학 와서는 책도 멀리 하던 희진이와 어울리는 시간에 우리의 논제는 '오늘은 뭐 하고 놀까?'이거나 '연애사'관련된 것이었다. 다만, 삶이 진지하고 무거워진 내가 그런 주제에 관해 흥미가 싹 사라져 있었다. 그렇다고 희진이 앞에서 내색을 하지도 않았다.


변화가 없던 희진 앞에서 변해 버린 내가 함께 하는 시간은 마치 신기루 앞에 연기가 사라지는 것과 같았다. 내 안의 것들이 소진되는 느낌이었다.


"허니야 여기 물 좋아. 나 집 근처 교회 나가기 시작했거든. 같이 가자."

'무슨 물? 남자애들 만나는 물은 클럽에서 놀 때나 적용해야지? 토요일에는 클럽에서 놀다가 다음 날은 클럽 근처 큰 교회에 출석하는 애들인가 보네. 희진아 요즘은 그런 물은 궁금하지 않아. 우울하기만 해. 너 마셔. 사실 지친 거 같아. 내가 이상해진 것 같긴 한데...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도 모르겠어.'

"그래 희진아~ 좋은 정보 고맙고. 생각은 해볼게."


끊자마자 생각했다.

'절대 거기는 안 갈 거야. 그런 물, 이제 충분하다.'


연애할 계기를 위해 나가는 소개팅에서도, 첫 눈에 맘에 들지 않았던 상대였지만 그가 내게 호감을 보이는 상황이라면? 3번 정도 만나 보는 게 지혜로운 선택일 것이다. 이처럼 세 번만 참석해 보자는 생각이 스쳤다. 4번 채워서 1달 정도만 경험해 보고 싶었다.


지난주와 같은 시간에 그곳에 앉았다. 두 번째 참석에도 말씀이 들렸다. 커뮤니티는 나와 같은 신입들에게 친절했다. 신입들에게 제공되는 모든 과정이 파인 다이닝의 서비스처럼 완벽했다.  


누군가에 의해 내가 받아들여지는 경험은 부드럽고 포근했다. 나 자신조차 스스로를 거절하면서 어찌할 바를 모르는 마음만 커져가는 시간이 수용되었다. 있는 모습 그대로.   



수용되는 것이 치유의 시작이었다.

후에 알게 된 사실인데 나의 정신적 질병은 '중독'과 관련이 많았다. 내 생활 습관 깊숙이 들어와 버려서 일상의 모습을 하고 있었던 중독들이었다. 대중적이고 일상적이어서 중독이라고 전혀 생각하지 못했던 습관이었다.


*공동체나 *커뮤니티라는 단어를 사용하고 싶다. 나의 글을 통해서 전달하고 싶은 부분은 내가 믿는 신앙적인 진리나 종교적 선택의 중요성이 아니다. 정신적이고 관계적인 가치를 세우는 일이 얼마나 중요하고 절실한지 말하고 싶다.

나는 신을 믿는다. 하지만 육체 안에 갇혀 있는 영혼들에게는 사후 세계는 여전히 미지수이다. 성인이 되어 내가 믿음을 갖기까지 개인적인 경험과 나의 입장에서는 타당한 이유들이 생겼다. 그러한 경험은 때로는 이성적이었고 때로는 이성적 설득을 넘어서는 것이었다.

마치 한 남성과 사랑에 빠져 결혼을 하고 그 사람과의 관계를 통해 신뢰와 믿음을 쌓아가는 것처럼, 때로는 부모와 자녀의 관계처럼 말이다. 관계 안에서 쌓이는 신뢰와 믿음은 오묘하다. 객관적이고 논리적인 속성이상의 가치다.

나의 믿음이 나에게는 타당하듯, 믿음을 갖지 않는 이유도 상대의 입장에서는 충분히 타당하다고 생각한다. 관계의 문제일 수 있고 경험이 원인일 수 있고, 각 자의 입장에서 분명한 근거라 짐작한다. 타인의 생각이나 믿음을 무조건 부인할 증거가 내게는 없다는 뜻이다. 하지만 이런 분들과도 소통하고 공통된 영역, 마음의 문제를 충분히 나누고 싶다.

이건 정신의 문제이고 관계의 영역이며, 결국 공유하는 삶의 이야기이니까.
우리가 정신세계와 영적 세계의 가치를 일상을 통해서도 찾아가야 한다고 말하고 싶다.

이를 위해 지속가능한 자기 성장과 성숙의 중요성에 대한 공감을 형성하고 싶다. 이 모든 성숙과 성장이 결국 관계적 회복, 더 나아가 행복하게 공유하며 함께 성장하고 성숙하는 사회로 연결될 거라 확신한다.

한국은 역사가운데 고통스럽고 어려운 시간을 통과했고 이겨 왔다. 하지만 과도하게 발전적으로 그래서 경쟁적인 성장에 치우친 점이 있다. 빠르게 성장하다 보니, 중요한 가치를 놓치기도 했다. <인간으로서의 정체성>, <한국인의 역사적 정체성>, <정신과 관계의 중요성>의 결핍으로 인해 우리가 사회적인 문제를 양산하고 있다는 것을 부인할 수는 없다.

이 문제들은 우리의 국가적 성장 시기의 국가적 롤모델이었던 미국에서도 이미 겪고 있는 문제들이고 우리가 함께 겪는 것 또한 자연스러운 결과다. 성장의 기적이 성공한 풍요의 시대의 현대인들은 과거와는 다른 종류의 병을 앓고 있다. 더 이상 우리는 홍역, 수두나 마마를 두려워하지 않는다.

우리가 겪는 문제는 각양 각 색의 중독, 비만, 데이트 폭력이나 학교 폭력, 다양한 우울증과 자살 등이다. 정신적인 문제와 깊은 연관이 있다.

나 또한 그런 환자 중의 한 명이었고 경도가 위급했다. 내가 찾은 치유의 방식이 모든 이들에게 옳다고 주장하고 싶은 것은 아니다. 치유가 끝나 버린 완전한 사람도 아니다. 회복은 평생에 걸친 여정이라 생각하기 때문이다.

내가 나의 가족을 만나 서로 상처를 주고받지만 그럼에도 사랑하고, 미혼으로 사는 것과 같은, 운명과 각 개인의 선택이 복합적으로 만들어 가는 삶의 여정이라 생각한다.

그래서 사람들이 함께 어우러지는 공동체적 정신 수양과 집단적 치유, 커뮤니티 안에서 정신적 가치를 함께 공감하고 세워가는 일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위의 단어를 선택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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