웰컴투 나의 영혼의 집
서울의 한강위로 강북과 강남을 이어주는 다리가 33개다. 이처럼 사람들의 마음과 마음사이를 오고 가게 도와 주는 좋은 방법이 있다. 서로의 글을 소통하는 것이다. 말로써 오가기 힘들었던 마음까지 유유히 흐르게 된다.
글로 짜여진 편지를 읽다가 서슴없이 미소를 짓거나 서글픔에 눈물을 흘리는 이유다.
한 사람의 마음이 또 다른 사람의 마음을 진동시켰기 때문이다.
요즘은 희귀해져 가지만 다시 번성할 거라 믿는 '편지'가 유통되었던 이유다. 행위가 전달된 것도 물질이 배달된 것도 아니었다. 하지만 서신을 받아 읽다 보면 서로의 피부를 맞대는 것보다 더욱 끈끈한 유대감이 생겼다.
전해지는 책에 의하면 빈센트 반고흐는 820통 이상의 편지를 쓰면서 자신의 삶과 예술을 지탱했다. 당대의 빈센트의 외관적 삶은 가난하고 비참했다. 하지만 역사가 나에게 질문하는 것 같다.
"그의 삶의 흔적을 두려워할 수 있지만, 그의 예술까지 두려운가? 자신의 길을 걸어갔던 예술가의 영혼이 아름답지 않은가? 확신이 서지 않는 너의 길을 갈 때 빈센트의 예술은 너에게 어떤 말을 건네는가?"
그런데 빈센트의 서신을 읽다 보면 편지를 쓰지 못했다면 과연 그의 작품이 남아 있었을까? 남았더라도 어떤 그림들로 남았을까? 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820통이 넘는 서신으로 자신의 마음을 전달하거나 알리지 않았다면 말이다.
배제된 삶을 살아낸 정약용의 편지도 있다. 정약용이 유배지에서 살았기 때문인지, 편지를 쓰면서 학문을 계속 탐구했기 때문인지, 그도 아니라면, 그분은 본디부터 아름다운 사람이었는지 알 수는 없다. 그 분의 연구나 삶을 모두 이해하기는 어려웠지만 정약용선생님의 편지를 접할 수 있었던 계기가 나에게 얼마나 큰 축복이었는지 감사가 넘친다.
감히 용기가 나지않지만 이 분처럼 살고 싶다는 진정한 야망을 일 순간만이라도 갖게 되었다. 그 시대나 지금이나 사리사욕의 검은 욕정을 감춘 채 인기와 명성을 누리는 대중의 리더들은 많다. 그들을 향해 한탄하면서도 나는 변하지 않으려는 속성이 내게도 있다. 나처럼 보이지도 않는 영향력이라면, 고로 나하나쯤은 괜찮다는 핑계를 대며, 안일한 유혹에 빠져들 때가 많다. 이런 때 생각나는 분이다.
정약용 선생님의 편지를 읽는 사람이라면,
'곧곧하지만 아름다운 삶을 살다 가신 분. 그의 마음에 이런 빛이 있으셨구나'
라는 감동이 모르핀보다 더 빠르게 번져가는 체험을 할 것이다.
안중근의 어머님의 편지는 선명하고 굵다.
한국은 예로부터 '영재와 인재 교육'에 혈안이었다. 한 편으로 생각컨대, 식을 줄 모르는 그 열정이 한국의 가난하고 볼품없었던 역사를 일으켰다 해도 과언은 아닐 것이다. 역사속에서 열강들의 몽둥이로 여기 저기 맞느라 성한 데라고는 찾아 보기 힘들었던 나라가 한국이었다.
이 미약한 나라를 강하게 만든 힘, 그것은 명주옷을 입기도 전에 덧입은 모성애때문일 것이다. 한국의 모성과 부성은 자녀를 향한 불타는 교육열을 빼놓고 설명하기 어렵다.
피맺힌 모성과 부성의 열망이 없었다면 반쪽짜리 한반도가 오늘처럼 강하고 부유하며 그리고, 화려해졌을까?
부모님들의 잔인하리만치 강하게 타오르는 자녀 사랑덕분일 것이다.
당시대의 문제를 해결하는 대체불가능한 '단 한 사람'의 인재를 탄생시킨 어머님의 마음은 다음의 편지를 통해 찾아볼 수 있다. 현 시대야말로 대체 불가능한 '한 사람의 문제 해결자'를 원하는 시대는 아닌가? 다음의 편지가 혜안과 돌파를 가져올 수 있길 바란다.
아들아
네가 만약 늙은 어미보다 먼저 죽는 것을
불효라 생각한다면 이 어미가 웃음 거리가 될 것이다.
너의 죽음은 너 한 사람 것이 아니라 조선인 전체의 공분을 짊어지고 있는 것이다.
네가 항소를 한다면 그것은 일제에 목숨을 구걸하는 짓이다.
네가 나라를 위해 이에 이른즉 딴 맘 먹지 말고 죽으라.
옳은 일을 하고 받은 형이니 비겁하게 삶을 구하지 말고 떳떳하게 죽는 것이
이 어미에 대한 효도이다.
아마도 이 편지가 이 어미가 너에게 쓰는 마지막 편지가 될 것이다.
여기에 너의 수의(壽衣)를 지어 보내니 이 옷을 입고 가거라
어미는 현세에서 너와 재회하기를 기망치 아니하노니
내세에는 반드시 선량한 천부의 아들이 되어 이 세상에 나오너라
2013년 더운날
'시대가 사람을 만든다'는 말은 맞다. 안중근의사와 안중근의 어머니와 같은 위대하고 아름다운 마음은 안타깝지만 칠흑같은 고통의 시대가 만들어 낸 것이다.
근본적으로 사람의 육체를 타고난 누구이던지, 위대해지는 것또한 '운'과 '운명'의 배경이 존재한다. 현세적으로 성공하는 사람 배후에도 비슷한 영향력들이 존재하고 말이다. 무엇보다 대의를 위한 삶이 무엇이며, 진정으로 살아가는 삶이 무엇인지 알아, 담대하게 실천하는 어머니를 자녀가 직접 선택하여 태어나는 것은 아니니까.
요즘같이 멘탈이 약하고, 소통력은 짧아지고, 공동체나 나라에 대한 '사회의식'이 빈약해진 상태로 자라는 세대를 보면 거울을 보는 것이기에 걱정스러울 때가 있다. 그렇다고 자녀들을 굳건하게 세우겠다며, 우리의 배경을 다시 일제 강점기로 되돌릴 수는 없다. 6.25 전쟁판으로 상황을 되돌리는 것또한 마찬가지다.
나의 딱딱히 굳어지는 마음의 비석위에 달걀이라도 던지는 심정으로 '글'속의 한 문장이라도 접하는 도리밖에. 마음의 길을 만들려면 편지의 한 소절이라도 접해야 했다.
마음을 보고 마음을 생각하기 위해.
나는 위대함을 동경만 하는지도 모른다. 평범하다 못해 한심함이 무제한으로 넘치는 사람이라는 걸 누구보다 스스로 알고 있다. 그렇다고 편지를 통해 전달되는 고귀하고 아름다운 마음을 멀리 할 이유는 없다.
내 삶의 길이를 모두 댓가로 지불한다 해도, 영겁의 길이에 비할 수 없을 것이다. 100년마다 한 번 지상에 내려오는 선녀의 치맛자락을 간신히 붙잡는 접촉과도 같은 길이일 것이다. 찰나의 접촉과 같을 지라도 아름다운 마음을 엿보는 것은 나의 영혼의 치료제였다.
우울증과 스스로에 대한 자살방조죄를 오고가는 마음을 치유하는 방법에는 공동체에 속해서 공동체가 함께 지향하는 선한 목적가운데 협력하는 것이었다. 공동체도 나처럼 완벽하지 않았고 때로는 서로의 관계를 통해 상처를 주고 받았지만, 나의 존재 이유를 찾기 시작했고 뿌리내리는 터전이었다.
다음으로 중요한 결정은 이전과는 다른 '마음'을 찾아 읽는 것이었다.
66권의 책과 함께 이전에 즐기는 읽을 거리와는 다른 글들을 읽었다.
써내린 사람들의 존재조차 몰랐는데 아름다운 사람들이었다. 그분들의 글을 보면 그들의 마음이 보였다.
읽고, 씹어 먹어 나의 살과 피로 만드는 길만이 양약이 된다는 확신이 있었던 것도 아니었다.
확신했던 것은 하나였다. 그대로 살다가는 진심 죽는다는 것이었다. 이전에 빠져지내던 것들에서는 등을 돌려야 살 수 있다는 것쯤은 확실히 알았다. 머물러 있다가는 결과는 뻔해서였다.
만성병을 앓는 사람이 약이란 약은 다 찾아 다니는 심정으로 읽었을 것이다.
행복과 정체성에 영향을 주는 핵심적 요소는 다름 아닌 관계다. 좋은 가정에서 인격적으로 성숙한 사랑을 충분히 받은 사람은 마음과 정신이 건강하고 밝을 것이다. 의심의 여지가 없다.
현실은 우리의 숨겨진 기대에 미치지 않을 때가 많다. 인격적으로 성숙하여, 가족 구성원끼리 예의 바르게 대하고, 서로의 가능성을 충분히 믿기 때문에, 서로의 독립성을 존중하고, 언제나 서로를 사랑하는 마음이 충만하여 말로 사랑을 확신시켜 주는 것이 편한 가정이 얼마나 될까? 이상적인 가정의 관계를 나열하는 것조차 어색하게 느껴지는 게 우리의 현실은 아닐까 짐작한다. 나를 포함해 많은 현대인들이 정신과 마음이 허기진 가정안에서 살기 쉽다.
사람이 육체가 허기지고 배가 고파도 양식과 유사해 보이는 먹을 꺼리를 찾아 허겁지게 먹기 마련이다. 한국에는 육체의 배고픔에 대한 인간의 반응을 잘 드러내 주는 속담이 있다.
"사람이 3일만 굶어도 남의 집 담을 넘는다"라는 속담이다.
육체의 상태나 정신과 마음의 상태는 유사하다.
정신이 빈곤해진다는 말은 '사랑이 결핍'되었다라는 말과도 상동한다. 여기서 '사랑'은 절대 모성애나 로맨스적인 사랑에 국한된 단어는 아니다. 전인격적인 성장과 자유를 돕는 성숙한 모든 마음과 정신을 의미한다.
3일간 사랑을 받거나 주지 못하면 결국 사랑이라 착각되는 유사품에 마음과 생각을 빼앗기게 되는 게 인간의 본성이라고 말해 주는 것같다. 남의 집 담을 넘어 육체의 배고픔을 달래면 불법을 행하여 처벌을 받는 게 결과일테지만, 사랑 유사품에 손을 뻗치는 결과는 자신을 중독으로 이끈다. 중독의 결과또한 당사자인 스스로를 고통과 파멸시키는 것이다.
나의 중증, 우을증과 자살에 대한 묵상 등의 증상도 알고 보면 이런 경로를 통해 심각해졌다는 걸 알게 되었다. 회복해야 했던 나에게 행운과도 같은 기회가 열렸다. 그건 저자들의 마음과 삶을 읽을 수 있는 양서를 많이 만나는 것이었다.
동시에 나의 환상, 야망과 즐거움을 위해 이전에 탐독했던 다른 종류의 글과 매체들은 일정 기간 끊었다.
도파민과 도파미네이션이 이슈되는 요즘인데 이 이슈가 유행하기 전부터 중독과 중독 치유에 관한 작업은 오래전부터 관심이 되었다.
흡연 중독자가 해방되는 방법은 무엇일까? 단순하다. 담배를 끊는 것이다.
정신의 병약함과 오류를 만들었던 가치 체계를 형성한 근원을 끊기 시작했다. 먼저 뉴스 다음은 드라마와 영화, 엔터테인먼트 콘텐츠를 전달받는 수단이었던 TV 매개체를 끊었다. 바보상자라는 판단때문이 아니었다. 그간 나의 정신적 환경과 근원을 형성하는데 지대한 공헌을 했다는 판단 때문이었다.
외로움을 잘 탔던 나는 혼자 있는 시간과 공간에 TV 매체 소리가 반드시 흐르도록 했다. 시청하지 않은 순간에 소리라도 퍼지게 해두었다. 이 습관은 잠자는 시간으로까지 확장되었다. 라디오라도 켜둬야 오히려 잠을 잘 수 있었다.
새로운 치료제를 찾을 때 알게 된 사실인데, 외부의 많은 소리들을 흐르게 하는 진실한 내적 동기에 관한 것이었다.
나의 영혼이 너무 공허하고 외롭고 적막하기 때문이었다. 이러한 영혼의 상태를 직면하지 않은 채 도피하자니 외부의 소리들이 필요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나의 마음의 집에는 보기 좋은 아름다운 공간도 있었다. 하지만 텅 비거나 횡량한 시베리아 벌판과 같은 공간도 있었다. 그 곳으로부터 울리는 괴기하거나 충격적이거나 서글픈 '내면의 소리'를 회피하는 아주 쉬운 방법이었다.
미디어 금식을 시작했는데 가장 힘든 시간은 첫 7일간이었다. 마치 지하7층 정도 내려가야 찾을 수 있는 지하실에 들어간 것 같았다. 그 깊은 곳에 홀로 떨어져 있는 기분을 느꼈다.
반수면 상태에서 꿈도 꿨다. 야생동물처럼 느껴지는 한 형체가 내가 누워있는 자세와 비슷하게 내곁에 드러나워 있었다. 숨소리가 거칠었지만 간신히 호흡하는 것 같았다. 두려움과 끔찍한 마음에 깨어보니 꿈이었다. 반수면 상태라고 느낀 건, 그 형체나 느낌이 너무 실제적이서였다.
그 뒤로 대략 7년 정도는 별의별 형체들이 밤마다 내게 나타났다. 내 목을 조르는 것은 일상다반사였다. 밤마다 나를 덮치며 괴롭혔다. 들짐승같은 형체로 나타난 것은 다만 시작에 불과했다는 걸 당시에는 몰랐다. 가끔 그 무리는 군대처럼 우르르 왔다가 우르르 떠났다. 생생한 꿈들은 기회가 닿으면 '독립영화'정도로 의미있게 제작해도 좋을거 같다.
나중에는 별 희귀한 꿈을 꿔도 두렵기는 커녕 쉽게여겼다.
'또 왔냐? 징한 것들.'
영화 <기생충>에 보면 우리의 영혼의 현실을 표현해주는 장면이 있다. 외부로 볼 때 너무 근사하고 잘 지어진 박대표의 집의 지하실이 존재했다. 외관과는 달리 그 곳에서는 박대표 가정에서 일하는 가정부의 남편 오근세가 기생하며 살고 있었다. 뿐만 아니라 영화의 결말로 갈 수록 그곳에서 비인간적이고 잔인한 일들이 벌어지는 장소가 된다.
이것은 계층간의 문제를 시사할 수 있지만 사람의 마음의 지도도 보여준다고 생각했다. 사람이라면 누구나 아무리 위대해 보이는 사람일지라도 존재하는 죄의 결과로 갖게 된 나쁜 마음이 있다. 미움, 시기, 질투, 악덕, 음란, 욕심, 이기심 같은 마음 말이다.
매우 정돈되어 아름답고 근사해서 누구나 찾아가고 싶은 마음 공간도 존재하지만 누구에게도 보여주기 두렵고 보여줄 수 없는 지하 공간같은 마음도 있다. 아무리 도를 닦고 선행을 하고 기부를 수백억을 하거나 온 세상을 위해 봉사한다 해도, 확신하건데 이런 지하공간과 같은 마음의 영역을 완전히 척결할 수 있는 사람은 이 세상 어디에도 없다. 이것이 죄의 힘이고 우리가 사는 세상이 천국이 아니라는 증거다.
그 공간을 수시로 청소하고 다른 것들로 채워넣는 작업이 필요했다. 때로는 자원하여 드러내 보이며 구원과 도움을 구하기도 해야 했다.
미디어와 화려해 보이는 많은 소리를 줄이고 나서야 인식하게 된 마음 공간이었다.
지금도 홀로 있는 시간이면 그 공간에서 들려오는 소리를 발견한다. 울어도 소용이 없고 달아나 봐야 달아날 외부의 장소는 어디에도 없다. 그 공간과 그 소리는 나의 내부에 존재하기 때문이다. 보이지 않는 공간인데 너무 생생하게 존재한다는 걸 직감하는 시간이었다.
나의 공간은 매우 깊고 어둡고 고독하고 외로웠다. 부정적이고 희망이라고는 전혀 없는 회의적인 공간을 직면한 나는 정지된 지루함속에서 보내야 했다. 그저 두 눈에 흐르는 눈물을 그대로 두었다.
하지만 괜찮았다. 나에게 이러한 여정을 안내해 준 현자들의 마음이 있었다. 그들도 이미 거쳐왔던 시간이었고 그분들은 더욱 멋지고 훌륭하게 그 시간을 열매맺기까지 멈추지 않고 지나갔다. 그냥 계속 진행했다.
3개월이 지나고 6개월이 지나는 동안 그 시절 가장 친했던 친구들은 나와 함께할 때마다 조금 멍하고 기운도 없는 나를 만났을 것이다. 그 시간을 통과하는 방법이었다. 그 깊은 심연의 공간이 잘 정리되고 좋은 마음과 따스한 위로나 믿음으로 채워야 했다. 청소가 끝나고 다시 과거의 익숙한 것들이 찾아와 주인 행세할 수 있지만 대안이 있었다. 대안이 되는 경험을 계속 해나갔다.
마음의 공간은 육체와 공간과는 달리 굉장히 유동적이었다. 감정의 변화처럼 속도감있게 바뀔 수 있었다. 그런데 20년 넘게 영혼의 어둠에게 주도권을 뺏겨온 공간이었기 때문에, 그 공간을 청소한다 해도, 이전의 공간처럼 변하기 쉬웠다. 오히려 이전보다 더욱 나빠질 수 있었다. 물질로 이뤄진 집도 청소 끝나면 그 상태가 언제까지 지속되지 않는 것처럼 말이다. 하지만 포기하지 않고 훈련을 계속했다. 차츰 나만의 '승리'의 습관을 발견하게 되었다.
육체의 심장과 두뇌가 멈추는 순간까지 영원히 그 연약함과 악함의 공간이 나로부터 분리될 수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이 사실을 인정하고 아는 것조차 지혜이며 특권이었다.
이 신나는 훈련을 계속 해야 한다는 전제는 나에게만 해당되는 것도 아니었다.
나의 시작은 새로운 책이나 지혜를 채우기 위해 이전의 매체들의 공급을 일정 기간 멈추는 것이었다. 다른 말로 미디어나 만화책이나 매료되었던 잡지들로 부터 얻어지는 지식을 차단했다. 청소의 개념일 것이다.
청소만 제대로 한다면 보이지 않고 빠르게 유동적으로 변하는 공간의 안전성은 보장되지 않았다. 대신 채워넣어야 했다. 나의 정신과 마음을 새롭게 세워가고 키워줄 좋은 마음의 글들을 차곡차곡 하나 하나 채워가야 했다.
1년이 넘어가자 마음의 입맛도 바뀌었다는 걸 간만에 찾아간 영화관에서 확인했다. 이전에 나는 영화보는 게 스트레스 해소일 뿐만 아니라 삶의 소망을 새롭게 하는 방법이었다. 하루 종일 골방에 갇혀 영화라면 몇 편이고 연속해서 보았다. 요즘은 넷플릭스 정주행과 비슷할거다. 뿐만 아니라 상영관에서 진행중인 영화를 볼 때도 하루에 영화관 세 곳을 돌아 다녔다. 정신 말짱한 시간 동안 계속 보고 또 봤다. 드라마를 볼 때면 너무 몰입해서 보다 보니, 어느 정도의 대사는 외울 정도였다.
만화책은 클럽을 만들어서 빠져 읽기를 게을리 하지 않았다. 관심 분야가 있으면 그에 관한 잡지는 빠짐없이 보느라 매 달 사거나 정기구독했다. 예로 음악도 하드락을 좋아했는데, <Hot Music>을 매 달 기다렸고 사서 모았다. 만화 잡지도 마찬가지였다. 단행본도 좋고 말이다.
영화는 보다 보다, 나중에는 "유럽 영화네, 예술 영화네"하면서 공감이 힘들어도 학습하면서 찾아 봤다. 예술품에 대해 견해를 갖기 위해서 노력하는 사람처럼 말이다. 긴 시간이 지난 지금도 여전히 그 영화의 주장은 이해가 안되지만 씬의 구성과 표현하는 장면이 너무나 괴기해서 기억에 남아 있는 영화도 몇 편 있다.
그런 류의 영화를 찾아 보는 당시, 그들의 호소가 나의 정신 건강에 위험을 가져올 거라는 생각은 조금도 하지 않았다. 오히려 '시대를 앞서가고 트렌드를 이해하는' 포스트 모더니즘 시대를 주도하는 힙한 사람 1인이라 생각했다.
그랬던 내가 1년 정도의 미디어 금식을 하다가 큰 맘먹고 영화관에 갔다. 대중적인 흥행작이었다. 그럼에도 갑자기 구토가 나고 머리가 찌끈거렸다. 아마도 인위적으로 만들어 낸 셋트적인 현실 즉 꾸며낸 스토리를 받아들일 수용능력을 상실했던 것 같다. 영화를 끝까지 볼 수 없어서 함께 간 지인들과 헤어져 나만 집으로 돌아왔다.
이런 증상을 느끼는 분별력을 가져야만 건강해지는 것이라는 주장을 하려는 것은 결코 아니다.
지금은 영화나 드라마를 봐도 즐겁게 몰입해서 잘 본다. 다만 그 시절에는 나에게는 그런 결단이 필요했다고 생각한다. 내면의 질서를 바로 잡고 건강하게 만들기 위해 '양서'를 채우고 현실안에서의 '나 자신'에 몰입할 시기였다. 특히 뉴스를 끊었던 효과는 세상을 우울하게 보는 시각에 큰 도움을 주었다.
예로, 엄마는 뉴스를 보시다가 서울에서 일어나는 끔찍한 사건만 발생해도 곧 장 나에게 전화를 하셨다.
"허니야 강남역에서 묻지마 폭행으로 여성이 죽었대. 집에 빨리 들어가라~"
엄마의 마음과 말씀은 일부 맞다. 하지만 뉴스의 현실은 한국에서 일어나는 1%나 그 이하의 사건을 최대한 과하게 확대해서 전달하는 속성이 있다. 평안한 마음에 걱정 증후군을 촉발시키는 성향이 있다. 물론 알아야 할 중요한 정보나 시대의 흐름도 보도되는 좋은 매체지만, 마음이 아픈 사람들의 치유제로는 적당하지 않다고 생각한다. 특히 과거의 나처럼 세상에 대해 회의적인 생각을 가졌던 마음 환자들은 뉴스를 꺼두는 것도 좋을 것이다.
좋은 뉴스, 착한 소식을 알려주는 콘텐츠나 소식지도 많으니까.
나의 가장 근원적인 회의의식은 '관계'에 대한 것이었고 그 중에서도 '결혼과 성인 남녀간의 사랑'에 대한 불신이기도 했다. 이 부분을 치유하기 위해 좋았고 훌륭한 영향을 준 책들이 있다.
먼저, 우연히 발견했지만 운명적인 책은 다름 아닌 <아직도 가야할 길>이었다.
다음은 폴 투르니에의 많은 서적들이었다.
그리고 C.S. 루이스의 책들이었는데 그 중에 <네 가지 사랑>도 도움이 되었다.
글을 쓰다 보니, 위의 위대한 작가들이 나의 깊은 지하 방에 찾아온 좋은 손님들이었다는 확신이 든다.
가장 보기에 좋아 보이는 공간이 아니라 그 공간에 찾아왔던 분들에게 새삼 감사를 전한다.
추신> 항상 마음은 '이민진 작가님'이나 '한강 작가님'처럼 수려한 글로 풀고 싶지만, 마감일 앞에서는 솔직한 내 자신 그채로 띄우게 됩니다.
그래서 감사한 점은 이 세상에 이민진님도 한 사람이고 한강님도 한 사람이고 저도 한 사람이니까요.
요즘 제 글쓰는 공방에 자주 초대되는 두 분이십니다. 그 외의 유능한 작가님들과 만나기도 합니다. 이 인연이 5년 10년후에 어떤 삶을 만들어 갈 지 기대합니다.
긴 글 읽어 주시고, 항상 좋은 마음으로 함께 해주시는 브런치 동료 작가님들과의 인연 특히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