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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허니 Dec 05. 2024

친구야 잘 지내니?

지구상 유일한, 그대들에게 띄워요




눈높이를 맞추어 봐요.


"할머니 엄마 언제 와?"

"에고 내 새끼~ 엄마는 세 밤 자고 나면."

"할머니 나는 어떻게 태어났어?"

"엄마랑 아빠랑 사랑해서."

"사랑하면 애기가 태어나요? 그러면 할머니랑 나랑 사랑해도 아이가 생기나요?"

"아니~ 호호호~ 아빠와 엄마처럼 서로 사랑하고 결혼도 하고 그럴 때만 아이가 생기는 거야."

"...?"


누구나 한 번쯤 대화 상대의 이해 정도에 맞춰, 소통하기 위해 노력해 봤을 것이다. 서로의 이해의 깊이가 차이날 때, 이해의 깊이가 낮은 상대를 갑자기 끌어올릴 수는 없다. 상대적으로 이해의 깊이가 높은 사람이 자신을 최대한 상대에게 맞추는 것만이 가능한 대안이다. 키가 훨씬 큰 어른이 3-4살 아이와 시선을 맞추기 위해 자신의 키를 아이의 시선까지 낮추는 것처럼 말이다. 그렇게 맞춰 가며 대화를 시도한다 해도, 서로가 전달하려는 모든 의미와 뜻을 완벽히 전할 수 없지만 말이다.


위의 할머니와 3-4살 손자와의 대화처럼 마음이 통하는 것은 가능하다. 사실 아이의 질문의 진실한 동기를 할머니는 정확히 알 수는 없다. 손자도 무엇 때문에 질문하는지 설명하지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둘 사이에 짧은 대화를 통해 '신뢰', '애정', 결국 '사랑'이 전달되고 있을 것이다. 지식적인 온전함은 언젠가 할머니와 손자 각자 찾아가게 될 것이다. 눈높이를 맞춰 이뤄지는 대화의 중요한 점은 서로의 관계를 굳건히 하는 것이리라.   



겸손한 분의 응답


신과의 대화를 통해서 나에게 맞는 눈높이 사랑을 느꼈다. 신의 존재를 믿지 않아, 인식하지 않는 사람에게는 나의 대화는 단순히 내 안에서 벌어진 <내적 대화>로만 여겨질 것이다. 나의 기도는 내 편에서는 신께 올리는 대화 시도일지라도, 나와 생각이 다른 분들께는 그저 명상이나 혼자만의 확언과 유사한 심리적 위안제처럼 생각될 수 있다. 나 또한 신의 존재를 인지하지 않던 시간을 충분히 살아봤다. 그렇기에 그런 생각들에 대해서도 존중한다. 각 자가 느끼는 방식이 다를 수 있으니까, 나의 다음 이야기는 하나의 케이스로 여겨주면 좋겠다.


일단 나에게 기도는 위의 할머니와 손자의 관계의 경우처럼 신께 대화를 시도하는 것이다. 이 대화의 중요한 점은 어떤 방식으로든 '응답'이라는 게 반드시 다가온다는 점이다. 신기하지 않은가?


응답이 나의 성품, 나의 지능 수준 등을 포함해 나를 닮은 것이라면, 나 또한 나 혼자만의 <내적 소통>으로 생각하고 말았을 것이다. 하지만 응답으로 다가온 것은 대개 내 생각을 뛰어넘는 것들이었다. 신선하고 창의적이었다. 나와 다른 성향을 가진 존재가 내 주변 어딘가에서 또르르 던져주었다는 확신이 들었다.


이를 테면, 요즘 자주 읽게 되는 책들의 저자 세 분을 모셔와서 설명해 보겠다. 이민진 작가님, 한강 작가님과 한승원 작가님 세 분인데, 모두 엄청난 역사에 대해 각 자의 관점, 가치관과 주제를 가지고 서술해 주셨다. 세 분은 각자 개인만의 서술 형식, 감성 코드 즉 문체를 가지고 계셨다. 세 분의 문체는 누가 봐도 극명하게 달랐다.


세 분의 미출판 된 소설 3권을 동시에 가져와 실험을 한다고 가정해 보자. 세 분의 문체를 이미 경험한 한 독자의 눈을 가리고, 작가에 대한 정보는 주지 않은 채 말이다. 세 권의 새로운 소설을 한 챕터씩 한 독자에게 들려주는 실험이다. <흑백요리사> 프로그램에서 심사위원의 눈을 가린 채, 음식에 대한 심사를 맡겼을 때처럼 말이다.


세 작가의 문체에 익숙한 독자가, 새로운 책들의 각 각의 작가를 구분할 수 있을까? 없을까?


이런 것이다. 분명히 내게서 출발한 음성이나 응답은 아닌데, 신비한 전달이 내게 다시 다가왔다. 신의 음성이자 신으로부터 전달된 응답이라는 짐작이 확신으로 발전했다. 나로서는 할 수 없는 생각이나 내적음성이 들려오는 것이다. 66권의 책에서 일관되게 드러난 신의 성품과도 다를 바가 없고 말이다.


하지만 결국 고기도 먹어봐야 그 맛을 알고, 연애도 결혼도 해 봐야 알 듯이, 신과의 대화나 신과의 관계도 본인이 경험해 봐야 알게 될거라는 사실에 대해 반박할 여지가 없다. 딱 한 가지 강조하고 싶은 것은, 세상에 이만큼 신비하고 질리지 않는 관계는 없었다. 힘들기는 하지만 권태로울 수는 없다. 우물이라면 팔 때마다 새 물이 샘솟는 그런 신선한 체험들이었다.


다만 벤처 사업처럼 때로는 나의 모든 중요한 가치를 한 번에 내 던져야 하는 순간도 있었다. 그런 순간의 갈등이 쉽다고 말할 수는 없지만 말 그대로 어드벤쳐였다. 나의 이야기는 한 사람의 어떤 케이스로 생각해 주면 좋겠다. 서로의 경험은 모두 각양각색이니까.


그분이야 말로 '눈높이 교육'의 명수셨다. 나라는 사람을 360도 입체적으로 돌려 전부 파악하여 속속들이 알고 계시는 분이었다. 그래서 나에게 맞는 맞춤식 지혜가 다가오는 모양이었다.


신의 존재를 믿고 찾기 시작한 이후, 첫 3년 동안 내가 일정하게 드린 기도(19화 죽기 아니면 까무러치기에 상세히 연재됨)가 있었다. 그건 바로, '천국에 급행으로 도착'하는 것이었다. 3년 정도 지나자, 눈높이 맞추어진 응답이 선명하게 나에게 다가왔다.


"너는 천국 열차 티켓 이미 따낸 사람이잖아. 그러면 이 좋은 곳에 혼자 올 거니? 네가 오래도록 이기적인 건 알고 있었다만, 기도도 참 이기적이라고 생각하지 않니? 네 뜻대로 안 되는 세상에서는 1시간도 인내할 수 없다는 좌절감을 담은 하소연으로 들려오는데, 너의 생각은 어때? 그렇게 간절히 매일 기도하지 않아도 언젠가 정해진 시간에 도착할 천국이잖아. 이왕 도달할 좋은 곳인데 말이야. 너 혼자 가지 말고, 친구들과 무더기로 같이 가면 안 되겠니? 친구들과 함께 가자."


일리가 있었다. 어차피 돌아갈 집인데, 혼자 오지 말고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처럼 모험 중에 아주 다양한 친구들을 만나면서 모두 데리고 집으로 오라는 음성이 과연 내가 만든 아이디어이며 나의 소리였을까?


평가는 각 독자님의 몫으로 남긴다. 나의 얘기는 계속 진행해 보겠다.

다음으로 그 친구 한 사람 한 사람을 꺼내서 기억해 봤다. 기억에 깊이 남은 친구들을 떠올려서, 편지를 썼다. 독자님들에게는 친구 소개도 하고 친구들에게 전하지 못한 나의 마음도 함께 전한다.



섬 소녀, 아현에게


아현야

안녕? 해남 땅끝 마을에서도 배를 타고 들어가야 아현이와 너희 친구들을 만날 수 있었어. 너희를 만나러 가기 전부터 너희를 만나는 일에 대해 설레는 시간을 보냈어. 준비하는 시간 동안 너희가 너무 궁금했거든.


아현이는 지금쯤은 성인이 되었겠다. 여전히 섬에서 살고 있을까? 쌤처럼 도시 어딘가에 살고 있을까?


아현아 너희를 만나러 가기 전에 이런저런 준비를 하는 기간에 갖은 생각은 이것이었어. 너에게 무언가를 선물해 주며 뜻깊은 시간을 기억시켜 주고 싶다는 생각을 가졌어. 작지만 사랑의 기억을 남기고 싶다는 마음으로 계속 기도하고 준비했어.


막상 만나고 나서는 생각이 바뀌지만 말이야. 정해진 며칠 간의 단꿈 같은 시간을 함께 보내면서 매 번 느끼던 걸 또 새롭게 느꼈어.


너와 그곳에서 만난 친구들을 통해 배운 게 많고 깨닫는 게 훨씬 많았어. 준비해 간 것들이 무엇이든지 그것이 너무 초라하게 느껴질 정도로 아현이와 너희들이 전해준 사랑은 너무 컸어. 준비해 간 사랑보다 너희에게 받은 사랑이 훨씬 많았어. 지금도 그때처럼 감사해.


마지막 밤이면 캠프파이어 켜고 함께 시간을 보냈잖아. 불꽃 근처에서 서로를 안아주고 기도도 했고 말이야.

그날 우리가 서로 얼마나 많이 울었던지, 오랜 세월이 지난 뒤에도 그 마음과 그 장면이 선명하게 남아 있어.


아현아 너는 그때도 어른 같았어. 부모님의 일의 몫을 나눠지면서 학교도 병행하는 네가 너무 대견하고 기특했는데, 그 강인한 마음으로 지금은 어떤 어른이 되었을지 정말 궁금하다. 나나 도시 아이 친구들에게는 너무 대단한 모습인데, 아현이는 그런 모습이 일상이어서인지, 자신의 모습이 얼마나 멋있는 모습인지 모르는 것 같았어.


그런 아현이의 마음을 발견할 때마다 나의 마음이 아프기도 했지만, 부모님의 사랑이 비어 있는 마음의 자리는 비슷해 보였어. 쌤의 부모님도 도시에서 바쁘게 일만 하셨거든. 아현이의 마음과 쌤의 마음의 닮은 점을 발견하고 아팠지만, 덕분에 우리가 하나 되어 같이 울고 같이 웃을 수 있었다고 생각해.


아현이 너를 기도하자마자 함께 터져 나오는 울음소리와 그 마음의 응결은 마치 어린 시절의 나를 다시 찾아간 기분이었어. 아현이를 안아주는 것이 결국 내가 나의 어린 시절을 다시 안아주는 것이나 다름없었어. 그래서 너와 함께 보낸 시간으로 쌤의 어린 시절도 치유할 수 있었다고 믿어.


아현아 당시에 너는 이렇게 생각했을 수도 있었겠어. 도시에서 좋은 회사 다니는 것 같고, 옷도 잘 차려입은 것 같은 도시 선생님이 왜 울까? 울 일이 있을까? 이런 의구심도 가질 수 있었을 것 같아.


이제는 선생님의 삶이나 아현이의 삶의 닮은 것들이 무엇인지 아현이도 확실히 알거라 생각해. 약속된 시간을 다하고, 우리가 헤어지는 시간에도, 한없이 정이 들어 버린 너의 마음을 읽는데 나도 너무 아팠어. 그것 또한 어릴 때 부모님의 빈자리 가운데 다른 사람이 맘에 들어왔다 떠나가는 순간을 다시 기억하는 것이었거든. 그 순간마다 쌤도 마음이 무척 허전하고 힘들었거든. 그때의 나의 슬픔과 아현이의 슬픔이 닮아 있었어.


헤어짐이 아플 만큼 따스한 사랑을 나눌 수 있는 관계는 매우 소중하잖아. 바람은 슬퍼진다 해도 계속해서 사랑할 수 있는 용기를 잃지 않기를. 쌤과 아현이 모두 말이야.


너의 모습이 신기했을 때도 있었어. 매 해 만나는 데 2번째 해는 서울에서 만났었나? 함께 롯데월드를 같이 갔을 때말이야. 이건 우리의 닮지 않은 모습인데. 2시간 정도 지나자 아현이가 한 말이었어.


"재미가 없어요. 피곤해요. 정신도 없고요."

라면서 눈 밑에 다크 써클이 깔려있었어. 물론 그런 감정으로 투정을 부리지도 않았지만 도시 아이들이나 즐기는 놀이 프로그램이었나 싶어서 내심 미안했어.  ‘서울숲'이나 '한강'에 갔어야 했는데, 지혜가 부족했어.

 

이렇게 생각해 보니, 아현이는 도시에 나와 있다 해도 다시 섬으로 돌아가서 산다고 할 수도 있겠다.

어디서든 아현이가 따스한 사람으로 미소 지으며 살기 지금도 바래.


지금도 그 밤처럼 마음으로 아현 너를 안고 기도한다.

고마웠어.



인도의 샤안타니 고시와 에샤 굽타에게   


샤안타니와 에샤 안녕?

샤안타니보다 에샤를 먼저 만났지. 두 친구 모두에게 한꺼번에 인사하고 너희 둘 서로에게 각 각 만났던 시간을 함께 나누고 싶어. 그래서 한꺼번에 불러 봐.


샤안타니 너를 만난 시간은 인도 마드라스에서 미션 트립 여행의 막바지였지. 나에게는 첫 인도였고, 모든 게 새롭다 못해 극단적이었어. 인도라는 환경도 함께한 공동체 훈련도, 음식도 잠자리와 씻는 것도 말이야. 정신적으로 육체적으로 많이 힘든 시간이었어.


인도 사람들을 만나는 시간만 잠시 무념무상이 되는 시간이었던 것 같아. 다른 시간은 모두 외롭고 고독하게 갈등했어.


그런데 샤안타니 너를 만난 시간이 얼마나 신비하고 행복했는지 몰라. 너의 미소가 나의 마음에 위로와 힘을 주었어. 샤안타니 너는 아무래도 좋은 귀족 집안의 아이 같아 보였지. 예쁜 교복을 입고 있었고, 공원 같은 곳에서 소풍을 즐기고 있었다는 생각을 가졌으니까. 너에게 내가 믿고 아는 진리의 얘기를 하고도 싶었고 그냥 너처럼 나 또한 미소도 짓고 휴식을 갖고 싶었어.


두근거림으로 다가갔더니, 나를 미소로 맞아주었던 샤안타니. 고마웠어. 게다가 네가 먹기 위해 펼쳐놓은 도시락통에서 한 입으로 먹기 편한 한국의 주먹밥을 닮은 그런 인도 음식을 나에게 주었잖아. 내가 무슨 말을 나누기도 전이었는데 말이야.


너를 만나기 전까지 도착 이후로 내내 떠나고만 싶었던 인도였는데, 그 순간만큼은 인도가 급격히 좋아졌어. 네가 건네준 음식이 정말 맛있었어. 그때까지 먹었던 인도 음식은 인도 맛이 아니었나 의심할 정도였어. 예쁘게 풍성하게 만들어진 음식에 반하는 수준의 나였지만 너를 만난 덕분에 인도를 떠올릴 때마다 화사한 네 미소와 그 작은 먹을 음식이 생각나.


그 첫 방문 이후, 10년이나 지나고 나서야, 다시 첸나이를 찾아갈 수 있었어. 너를 만났던 장소는 대체 어디였는지도 기억이 나지 않아서 안타까웠어. 지금은 2번째 방문 했던 시간으로부터도 시간이 엄청 흘렀어. 다시 찾아간다면, 이젠 SNS 도메인이라도 주고받고 싶어. 고마웠어. 너는 나의 위로이자 네 잎클로버였어. 나의 개인 인도대사였고 말이야.  


그리고 샤안타니 너만큼 예쁜 미소로 나를 반겨준 에샤도 소개할게.

에샤는 샤안타니 너와는 달리 무척 가난한 동네의 꼬마였어. 그곳을 찾아갔을 때, 동네 사람들이 우르르 몰려왔어.


그분들도 샤안타니처럼 나와 우리 팀을 위해 준비한 인도식 음료를 제공해 주셨고, 맛있게 먹었지. 에샤가 전달해 준 게 단순한 음료가 아니라, ‘신'에게 올리는 성물처럼 여겨졌어. 그분들의 눈빛과 우리를 존중히 여기는 마음이 그런 느낌을 주었어. 그러다 보니, 그분들도 우리에게 신처럼 여겨지더라고.


맞아. 그분들은 우리를 신처럼 여겼어. 우리 주변에 와서 신기한 미소를 지으면서 계속 웃으면서 따라다녔어. 이 친구 저 친구들을 몽땅 데려와서는 성경의 한 장면을 연출하는 것 같았어. 줄지어 기도를 받으려고 아우성이었거든.


너희 두 친구와 인도에서 만난 많은 친구분들을 생각하면 마음이 따스해져.

한 편으로 요즘은 어찌 지내는지, 궁금해져.


기도를 해주는 우리 앞에 동네 사람들 모두 우르르 모여들어서 당황스러웠냐고? 전혀 그렇지 않았어. 에샤와 에샤 가족과 이웃들을 향한 마음, 그건 나 자신을 향한 위로이기도 했어.


그때 짧지만 굵은 믿음을 갖게 되었는 걸. 내가 무엇이든지 에샤처럼 천진한 미소로 진심으로 신께 구한다면 분명히 선한 신은 응답하기 위해 애쓰실 거라는 확신이 들었어. 에샤야 그때 나는 에샤처럼 새로운 존재들에 대해 마냥 환영하고 기뻐하는 마음이 약해진 시간이었거든. 오히려 다른 세상으로 떠나고 싶었던 시간이었어. 에샤의 미소와 환영 덕분에 순수한 축복과 행운을 만들 수 있는 미소의 비결을 조금 알게 되었어.


물론 삶에서 만나는 우리의 한계와 인생의 여러 제약들에 비하면 나의 짧은 축복과 감사의 기도는 너무 미약했겠지만, 그때 내가 죽음을 동경하는 마음에서 조금씩 밝아지는 등불이 되어 준 건 너희를 향한 기도의 통로가 되었기 때문이라는 확신이 들어. 그런 의미에서 고마워. 나를 살려 준 너희야 말로 나의 친구들이야.


에샤 그리고 샤안타니,

그리고 언젠가 인도에 다시 돌아갈 때

함께 할 미래의 친구 모두를 축복해.

그때 꼭 더 많이 웃자. 건강하길





다음 주에 2편이 계속됩니다. 기대해 주세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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