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고, 내 안의 소음
독서모임에 가면 책 보다 사람이 먼저 보인다. 테이블에 놓인 책들 위로 사람들의 얼굴, 목소리, 어조, 숨소리가 이야기를 이끈다. 각자의 앞에 놓인 같은 표지의 책은 그저 서랍을 여는 열쇠 같달까. 정작 열리는 건 각자의 내면이고, 모두는 제법 멋지고 지적인 말들로 자신의 서랍을 열어젖힌다. 어떤 이는 깊이 파고들어 철학적 문장을 나누고, 어떤 이는 조심스럽게 단어를 고르며 마음의 조각들을 늘어놓는다. 나 역시 부족한 교양과 조잡한 지식을 제법 그럴싸한 말들로 포장한다. 책은 수단이 된다. 나의 말을 하기 위한, 혹은 내가 원래 하고 싶었던 말을 정당화하기 위한 표면적 동기에 불과해진다. 혹은 무엇을 가리고 감추거나.
여러 모습이 눈에 들어온다. 조근조근 차분한 음성, 열정적인 손짓, 부끄러운 미소. 사람들은 책 보다 먼저 자신을 꺼낸다. 나 역시 나를 꺼내놓았다. "사실 저는 잘 모르겠어요."라는 프레임을 씌우니 긴장이 스르륵 풀린다. 사실 정말 모르는 게 맞다. 애매하게 알고 있는 온갖 지식을 동원할 필요도 없다. 그래서 질문만 냅다 던진다. 눈치 없게 말도 안 되는 질문도 던진다. '저 사람은 도대체 뭐지?'라는 시선도 느껴지지만, 주제가 넘어가 맥락을 놓치기 전에, 질문이 휘발되기 전에 눈치 없이 그냥 던져 버린다. 귀를 열어놓고 손으로 끄적이며 대화를 잡아가려고 노력하지만, 지식과 상식이 절대적으로 달리는 바람에 그냥 고개만 무한정 끄덕인다. 마치 '내 말이 그 말이에요'라는 듯이.
진실을 물어보면서 나의 생각만 내어놓는다.
내가 믿고 싶은 건 이것이오. 그러니 그대의 말은 하나도 들리지가 아니하오.
아!라는 탄식이 흘러나온다. 깨달음의 탄식일까. 안타까움의 탄식일까. 열띤 대화의 한가운데에서 나는 잠시 카페 벽에 걸린 그림을 멍하니 본다. 의식적으로 고개를 끄덕이며. 그 말은 내 말이 아니고, 나는 그 말을 잘 모르겠고, 나는 그냥 조용히 들을 뿐이고.
그러고는 타인의 말을 채집한다. 대화 속의 생각들을 채집해 마음의 병에 잡아 가둔다. 병 안의 생각들이 저마다의 진동수를 가진다. 어떤 건 나와 비슷한 떨림이고 어떤 것은 너무 낯설어서 병을 쥐고 있는 손이 덜덜 떨릴 지경이다. 쉴 새 없이 오가는 생각들에 수집병은 금세 차버리고, 나는 기진맥진해진다. 그러다 보면 독서모임은 어느새 끝나있다.
글쓰기 모임은 조금 다르다. 독서모임이 하나의 책을 중심으로 사람의 해석을 드러내는 곳이라면, 글쓰기 모임은 하나의 주제를 두고 사람들이 저마다의 언어를 직접 만들어내는 곳이다. 속도도 다르다. 대화의 주제를 실시간으로 따라가며 생각을 채집해야 하는 게 독서 모임이라면, 글쓰기는 조금 느긋하다. 마치 물속에 넣어놓은 통발이랄까.
주제가 주어지면 사람들은 자신의 경험과 감상을 더한다. 신기할 정도로 다채롭고 생생한 문장들이 나온다. 누군가는 낯선 도시의 풍경을 가져오고, 누군가는 과거의 한 장면을 소환하고, 누군가는 미래를 꿈꾼다. 단어 하나 문장 하나에 놀란 마음이 공중에서 그대로 박제되기도 하고, 어떤 문장의 끝은 내 감정을 쿡쿡 찌르기도 한다. 고심해서 고르고 고른 활자를 보면서 감탄한다. '어떻게 저런 생각을 글로 만들 수 있지?''나도 저런 표현을 해보고 싶다' 감탄은 어느새 부러움으로 변하고, 부러움은 때때로 나를 침묵하게 만든다. 다들 자신의 소리를 쓴다. 나는 듣는다. 듣고 또 듣는다. 소리는 단순한 물리적 진동이 아니라 내가 세상과 연결되는 방식, 혹은 내 목소리가 외부로 발화될 수도 있다는 가능성을 품으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글이 잘 써지지 않은 어느 날은 쓰려다가 멈추고, 한 문장을 고치다 아무것도 아닌 것 같아 지우고, 결국은 아무 말이나 써버린다. 그러고는 결국 삐걱거리는 잡음을 꺼버린다.
의도적인 무음모드.
그러고 나면 내 안에서는 무수한 소리들이 부딪힌다. 감정이 부딪히고, 생각이 충돌하고 의문과 열등감이 뒤엉킨다. 언어로 만들어지지 못한 채 부유한다. 그리고 이내 공명한다. 마치 깊은 동굴 속에서 내던진 소리가 반향을 남기듯. 안쪽에서는 격렬한 떨림만 있을 뿐.
하지만 언젠가는 그 소리들이 형체를 얻을 것이라 믿는다. 말이 되든. 글이 되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