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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는 것도 콘텐츠다

의식의 편집자

by 노미화

내 손을 내려다본다. 피범벅이 되어있다. 선혈을 제외한 모든 형상은 무채색에 가깝다. 이것은 내 피인가 남의 피인가. 검붉은 선혈이 흘러내리는 손을 들여다보며, 나는 직감한다. 꿈속이라는 것을. '이건 꿈일 거야'라는 인식이 스위치처럼 '딸깍'소리를 내며 장면은 순식간에 전환된다.


절벽 끝에 서 있다. 믿기 어려운 높이, 공포를 느껴야 마땅할 그 끝에 내가 서 있다. 하지만 전혀 무섭지가 않다. 오히려 풍경은 황홀하기까지 하다. 비현실적인 색감, 영화 속 판타지 세계처럼 아름다운 절경이 발아래 펼쳐진다. 꿈인 줄 알면서도 나는 그 장면을 놓치고 싶지 않다. 폰을 꺼내 들고, 구도를 바꿔가며 사진을 찍는다. 찍고 또 찍는다. 현실에서는 보기 힘든 풍경이니까. 그 생각이 어쩐지 웃겨서 웃음이 난다. 꿈이라는 허상이라도 붙잡아 두고 싶은 욕망이 무의식을 타고 흐른다.


다시 꿈은 이상한 흐름으로 변형된다. 절벽 아래를 보니 좁은 계단이 있다. 벼랑을 따라붙은 폭이 좁은 계단이다. 아찔한 느낌이 들지만, '나는 결국 그곳을 내려갈 거야'라는 무의식이 발동한다. 갈라진 절벽의 틈을 손잡이 삼아 할 걸음씩 내려가기 시작한다. 어느 순간 발걸음이 이상하리만치 가벼워진다. 달에서 걸으면 이런 느낌일까 싶은 생각이 들자마자, 몸이 중력을 거스르며 붕 떠버린다. 꿈이니까 가능하겠지. 꿈이니까. 의식의 편집이 일어난다.


계단의 끝에는 커다란 배가 정박해 있다. 현실에서 저런 큰 배를 본 적이 있던가. 한 발을 내딛자, 어느새 나는 갑판 한가운데에 서 있다. 어느덧 지브리 애니메이션 속에 나올법한 색감의 바다가 펼쳐진다. 시선을 돌리니, 갑판 끝으로 뛰어가는 첫째의 뒷모습이 보인다. 나는 그 모습을 또 사진으로 남기려 폰을 든다. 그 순간, 꿈은 끝나고 나는 눈을 떴다.


개꿈인가.


피가 낭자한 꿈, 떨어지는 꿈, 무중력 상태로 퐁퐁 날아다니는 꿈, 어떤 존재에게 꿈에서 깨기 직전까지 쫓기는 꿈, 누군가의 침입에 현관문 앞에서 대치하는 꿈, 마감에 쫓기는 꿈, 죽은 사람이 나타나는 꿈... 생생한 잔상이 하루 내도록 따라다니는 꿈까지. 나는 그 속에서 경계하거나 도망치거나, 혹은 매혹된다. 꿈속의 나는 내가 아닐 수도, 혹은 내가 너무도 명확하게 투영된 모습일지도.


의식 속에 진입해 들어온 충동들은 대개의 경우 정신생활의 현실적인 힘에 의해 걸러지고 제거되기 때문에 궁극적으로 중요한 것은 행위에 있다고 할 수 있다. 무의식 차원의 충동들 또한 어디선가 저지당할 것을 확신하고 있기 때문에 별다른 심리적 저지를 받지는 않는다.

프로이트 <꿈의 해석>중에서


그래서 꿈이라는 공간에서 비로소 날뛰는 걸지도 모르겠다. 자각몽 속에서조차 나는 도망치고, 찍고, 내려가고, 도달한다. 꿈에서만 가능한 일들. 나의 무의식이 꿈속에서 난동을 부리는 걸 보면, 나는 꽤나 충동적이고 약한 사람인가. 하지만 현실에서 못한 것들을 꿈에서나마 행하고 나면 약간의 해방감이 들기도 한다. 어쩌면 현실의 의식이 꿈을 입맛대로 해석을 잘하는 '맨탈갑'일수도. 아, 부도덕하고 부조리한 나.


그래도 어쩌겠는가. 현실이 정해둔 틀 밖에서라도 무의식은 나의 의지와 상관없이 자유를 꿈꾸는 것을. 그리고 나는 그 무대 위에서, 매번 낯선 주인공으로 다시 태어난다. 개꿈이든 말든.


그러면 나는 '의식의 편집자'라는 명찰을 달아보겠다.


요즘의 나는 대부분의 시간을 글을 위해 쓴다. 눈을 뜨면 생각하고, 운전하다가도 생각하고, 무심코 지나가는 말 한마디, 거리의 장면, 어떤 사소한 감정 하나도 글감으로 저장된다. '내일은 도대체 뭘 쓰지'라는 총에 탄약을 채우는 것처럼, 쓰기 위해 일발장전! 일상이 글을 쓰기 위해 배치된 무대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오죽하면 오늘 글도 꿈속에서의 장면들을 글감으로 썼을까. 절벽 위에서도, 배위에서도, 폰을 들고 구도를 바꿔가며 '기록'을 남긴 나의 무의식이 꼭 나의 일상과 같다.

무의식이 마음껏 날뛰는, 무질서한 혼돈의 장에서 조차 나는 의식의 프레임을 따라간다. 피범벅인 손도, 떨어질 듯 아찔한 절벽도, 판타지처럼 펼쳐진 풍경도 결국 나의 의식이 고른 장면처럼 느껴진다. 꿈조차 글처럼 '편집'되어 흘러가는 걸까. 그렇다면 정말 일상은 편집되어 글이 될 가능성을 지닌 원석이 될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여기서 또 나에게 질문한다. 나는 매 순간 나의 일상을 이야기로 환원시키며 계속 쓸 수 있을까. 일상이 멈추지 않듯 글도 계속 쓸 수 있을까. 답은 이미 오늘 글을 쓰면서 나온 걸 지도. 아무래도 무의식이 가져다주는 재료가 필요할 것 같다. 언젠가는 그 무질서한 꿈조차 정제된 문장이 되어 누군가의 현실을 흔들지도 모르니까.




(개꿈도 약에 쓰려... 아... 그건 개똥이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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