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동 전쟁
주말 오후, 식탁 위에 앉아 노트북을 펼쳤다. 오늘도 뭔가 써야 한다. 탁탁 키보드소리에 맞춰 뇌파를 가동한다. 단어가 떠오르지 않는다. 그때, 주방 한쪽에서 ‘윙-’하고 마이크로파가 작동한다. 냉동피자를 데우는 전자레인지. 뇌파가 전자파에 밀리는 순간, 거실 쪽에서 두 아이가 서로 고질라가 되겠다며 에너지파를 발사 중이다. “그아아아악~! 나는 고질라다 아~!”“내 발톱 맛을 봐라! 쿠오오오오~!”
집안은 순식간에 세 가지 파동으로 뒤섞인다. 나는 글을 살리려 뇌파를, 전자레인지는 피자를 살리려(?) 마이크로파를, 아이들은 성장을 위한 에너지파를 발사 중이다. 이 혼란스러운 공명 속에서 뇌파가 꺼져감을 느끼는 순간, 마이크로파가 백기를 먼저 들었다. ‘땡-’ 장렬히 전사한 마이크로파는 김이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피자를 내어놓았다. 적군의 소식을 들은 고질라들이 주방을 진동시키는 피자의 냄새를 맡고 식탁으로 쳐들어온다.
뇌파가 상쇄되기 일보직전, 패배를 인정한 나는 노트북을 덮는다. 이 전장의 승리자인 에너지파들에게 전리품으로 피자 한 조각을 예쁜 접시에 담아 주기로 한다. 노트북이 치워진 식탁에서 고질라들은 너무나도 맛있게 먹어치운다.
조용하고 섬세한 나의 뇌파는 자꾸만 끊어진다. 마이크로파는 뇌파보다 더 묵묵하다. 단 한 번도 항의하지 않고, 딱 정해진 시간만큼만 진동하다 ‘정확한’ 끝을 알린다. 어떤 점에서는 이 녀석이 제일 현명하다. 반면, 에너지파는 생명 그 자체다. 거칠고, 시끄럽고, 파괴적이고, 예측불가하다. 하지만 그 안에 살아있는 감각이 존재한다. 살아있는 것들은 힘이 있다.
고질라들이 피자에 정신이 팔린 틈을 타, 나는 거실 테이블로 이동하여 노트북을 펼친다. 혼란이 있었기에 집중을 해야만 하는 아이러니. 우리 집의 가장 깊은 질서는 '소란 속에서 피어나는 균형'이라고 뇌파를 속여본다. ‘단 한 줄이라도 적어보자!’ 전자레인지의 3분 요리 마냥 글도 그렇게 뚝딱 나오면 얼마나 좋으련만, 현실은 냉동보다 더 단단한 단어들 사이를 해동하느라 시간만 녹아내리고 있다.
그런데 문득, 지금 내 앞에 놓인 이 장면이 바로 내가 써야 할 이야기라는 생각이 든다. 고요한 집중, 뜨거운 동력, 그리고 시끄러운 생명. 이 세 가지 파동이 겹쳐진 주말 오후의 풍경말이다. 이건 그냥 평범한 주말 오후의 소란이 아니라, 글감이 퐁퐁 튀어 다니는 특별한 현장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마이크로파는 다시 한번 작동을 준비한다. 아이들은 피자 한 조각을 다 먹고 “또 없어요?” 하며 에너지파를 충전한다. 그사이 나 역시 다시 뇌파를 불러낸다. 뇌파를 도와줄 커피 향과 함께. 지금 우리의 파동전쟁은 다시 시작될 일상의 예고편이랄까.
삶이란 어쩌면, 이런 끊임없는 파동전쟁 속에서 평화를 찾아가는 과정일지도 모르겠다. 누군가는 글을 쓰고, 누군가는 음식을 데우고, 누군가는 괴성으로 우주정복을 꿈꾼다. 이토록 평화로운 주말이라는 이름아래, 한 공간을 꽉 채우는 요란한 파동전쟁. 그 소란 속에서 내가 찾은 단 하나의 진실은 이거다. 세상은 언제나 조용한 곳에서만 돌아가는 것도 아니고, 때로는 마이크로파와 고질라의 에너지파 사이에서, 단 하나의 글이 살아난다는 것.
어쩌면 최종 승자는 나의 뇌파일지도 모르겠다. 결국 이렇게 하나의 글로 남겼으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