따끔거리는 느낌이 들었다. 가시라도 박힌 걸까. 손마디 어딘가, 살갗에 닿은 무언가가 나를 찔렀다. 짧은 숨과 함께 움찔하며 오른손을 펴 들여다보았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 방금 전의 그 감각은 마치 착각이었던 것처럼 사라져 있었다. 손을 펴는 순간, 무언가가 떨어져 나간 모양이었다. 나는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다시 손을 움직였다.
설거지를 하려고 물을 틀고 수세미를 쥐었다. 순간, 아까보다 더 날카로운 통증이 느껴졌다. 어딘가 살짝 갈라진 곳이 자극을 받자, 감춰져 있던 따끔함이 튀어나왔다. 다시 손을 보니, 중지와 손바닥이 맞닿는 부분이 살짝 벌어져 있었다. 종잇장이 스쳐간 자국 같았다. 아주 사소한 상처. 너무 얕아서 상처라고 부르기도 민망할 만큼. 사소한 틈. 살갗이 얇게 갈라진 부분에 물이 닿자 예리한 통증이 퍼진다. 이전까지는 베였는지도 모를 그 통증은 뒤늦게 머리카락을 쭈뼛 서게 만든다. 그러고 보니 요즘 종이에 자주 베이는 것 같다. 하필이면 밴드를 붙이기 참 애매한 자리를 베일게 뭐람. 밴드를 붙이면 금세 밴드 가장자리가 들뜨고, 가만히 놔두자니 수시로 따끔거리는 것이 여간 신경 쓰이는 게 아니었다. 작은 상처일지라도, 불편한 건 분명히 불편하다.
암, 불편한 건 불편한 법이지. 아무리 사소해도.
어느 날 누군가의 말 한마디, 아무렇지 않게 던진 표정, 행동 하나가 마음 어딘가를 베어 간다. 상대는 기억도 못할 만큼 작고 미미한 장면인데, 나는 그 순간을 머릿속에 반복 재생하며 마음속 어딘가가 자꾸만 따끔거리기 시작한다. 그러다 어느 순간, '아, 내가 지금 상처받았구나'하고 자각하게 된다. 처음엔 몰랐던 감정이, 어느 날 문득 날카로운 통증처럼 올라온다. 별 말 아닌데도 마음에 콕 박히고, 별일 아닌데도 기분이 상한다. 그저 종잇장처럼 지나간 감정이, 자꾸만 신경을 긁는다.
'저 사람은 나와 맞지 않는구나' '이해받지 못하는 느낌은 정말 싫은데.''너무 이기적인 거 아닌가' '나만 예민한 건가'
마음속에서 관계의 온도가 서서히 식어간다. 멀어지기 시작한다. 하지만 어쩌면, 상대방도 같은 생각을 하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각자 자신의 감정과 시전으로만 상황을 해석하고, 그 해석이 갈라진 틈에서 오해가 자란다. 그 오해는 시간이 지날수록 굳어지고, 서로가 서로를 점점 '불편한 사람'으로 규정해 간다.
그럴 땐, 그냥 그 사람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는 것이 덜 불편한 방법일지도 모르겠다. 억지로 이해하려고 하지 않고, 바꾸려 하지 않고, 그 사람은 나와 다르다는 사실을 받아들이는 것. 때로는 그 인정이 더 이상 가까이 가지 않겠다는 선택으로 이어지기도 한다. 나는 너를 이해할 수 없고, 너도 나를 이해하지 못한다면, 그 관계는 자연스럽게 멀어질 수밖에 없겠지. 억지로 다가가지도, 붙잡지도 않는다. 이제는, 그 거리마저도 받아들인다.
하지만 문제는, 마음의 거리를 둬도 현실에서는 자주 마주쳐야 하는 사람들도 있다는 거다. 회사동료일 수도, 가족일 수도(아, 이건 좀 불행할 것 같기도), 오래된 친구일 수도 있다. 그런 관계에서는 물리적인 거리만큼이나 감정적인 조율이 필요할지도 모르겠다. 싫은 내색을 하지 않으면서도, 억지로 웃지 않아야 하는 균형 같은. 아무 일도 아닌 척하면서도 내 마음은 지켜내야 하는 긴장 같은. 사실은 그게 참 어렵다.
그래서 스스로에게 말한다. '괜찮아, 신경 안 쓸 거야' '그 사람은 나에게 별로 의미가 없어''별로 신경 쓰고 싶지 않아.'라고 말이다. 그 말이 진심인지 아닌지는 더는 중요하지 않다. 중요한 건, 그렇게 말함으로써 나는 나를 지킨다는 사실이다. 감정을 닫고, 거리를 두고, 애써 무덤덤해진다. 나는 무심한 얼굴을 한다. 상처를 의식하면 더 아프니까. 감정을 들여다보면 더 피곤하니까. 그렇게 손마디에 난 상처를 보지 않기로 한다. 따끔거리는 통증도, 무시한 채.
나는 무관심한 사람이 아니라 어쩌면 무감각을 조용히 연기하고 있는 걸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