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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심이 묶은 농담풍선

by 노미화

오늘의 주제를 받자마자 입이 가벼워진다.


“오늘 ‘가벼움’이라는 주제 너무나 좋네요. 가벼울수록 무거울 수 있다는 역설. 저 이런 거 좋아합니다. 저에게는 역설이 아닌 명제 같기도 하고요. 입은 가벼우나 몸은 무거우니. 저는 물에 빠지면 입만 동동 뜰 것 같네요.”

참 묘하다. 가벼울수록 무겁다니. 이 말이 역설이라면, 나는 그 역설 안에 오래 살았던 것 같다. 아니, 어쩌면 역설이 아니라 진실에 더 가까운 명제. 입은 가벼우나 마음은 무거워서, 물에 빠지면 입만 동동 뜰 것 같다는 말이 웃자고 꺼낸 농담처럼 들릴지는 몰라도, 나를 가장 정확하게 묘사하는 문장일지도 모르겠다.


웃기려고 한 말은 아니다. 다만, 가볍게 보이고 싶었다. 나는 자주 스스로를 가볍게 만드는 쪽을 택했다. 진심을 말장난에 실어 흘리고, 진지함을 농담의 가죽으로 감쌌다. 단톡방에 흘려보낸 말들도 마찬가지다. 늘 반 농담, 반 진담. 웃음 뒤에 남는 낯선 침묵, 그 미묘한 경계를 자주 넘나 든다. 진지하면 어쩐지 불편해질까 봐, 실없는 말을 먼저 꺼내고, 가끔 농담이 지나쳐 ‘아차’ 싶을 땐, 다시 슬쩍 진심을 붙인다. 그래서인지 1년 동안 단톡방에 흘려보낸 말들만 모아도, ‘입만 동동 뜨는’ 시리즈 몇 편쯤은 나올 것 같다.

‘안녕하세요. 주접을 맡고 있는 글풍뎅이라고 합니다. 진지함과 경솔함을 오가며, 가벼움과 무거움의 시소를 즐깁니다. 이상한 사람은 아닙니다.’


묘하게 자조적인 자기 해학과 방어가 함께 들어간다. 진심은 조심성의 언어를 빌려 말끝에 매달리고, 나는 늘 속삭이듯 말한다.

나를 너무 무겁게 여기지 마세요.’

‘불편해하고 싶지 않아요. 당신도 그렇게 해주세요.’




‘난 별거 아니에요.’라는 말속에는 기이한 페이소스가 숨어 있다. 별거 아닌 사람이 되어야 마음이 안전하고 편하다는, 오래된 학습 같은 거. 그렇다면 나는 반대로 그러한 사람을 불편해하고 멀리했던 건가. 뭐, 아니라고는 할 수 없겠다. 가볍게 보이기 위해 조금씩 덜어낸 말들, 생략한 감정들, 농담의 행간에 묻어둔 진심, 그것들이 사실은 나를 지탱하고 있는 것들이기에. 내 안의 고요한 조심성. 진심이 들고 있는 농담 풍선과 같은.

그렇다. 내 농담은 풍선 같다. 말랑하고 웃긴 모양을 하고 있지만, 안에는 뜨거운 기류가 맴돈다. 실수로 놓치기라도 한다면 가닿지도 못한 채 허공으로 대책 없이 날아가는 그 가벼움을 나는 멍하니 지켜본다. 혹은 타인의 마음에 가닿을까, 상처를 낼까, 혹은 그저 무시될까. 실없는 농담만큼 민망한 것도 없고, 진심이 섞인 농담만큼 외로운 것도 없다. 그래서 무거움 마음 하나를 풍선 끝에 묶는다. 그 마음이 추처럼 내려앉아 내가 날린 말들이 누군가의 하늘에 오래 머물 수 있도록.


웃기는 사람이 되고 싶은 게 아니다. 다만, 다가가기 쉬운 사람이 되고 싶었다. 웃음은 그 중간지대였을 뿐. 말의 밀도를 낮추고, 감정의 결을 숨기며, 경계선을 허물기 위한 작고 둥근 도구. 사람들과의 거리에서, 웃음은 벽이 아니라 문이었으니, 그 문을 열고 들어오는 누군가가 내 말의 속살을 발견해 주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나는 가볍게 웃는 사람처럼 군다.


가벼워 보이는 것과 가벼운 것 사이에는 미묘한 차이가 있다. 겉으로는 떠 있는 말, 속으로는 가라앉는 마음. 나는 전자일까 후자일까. 노골적인 진심은 부담스럽기에 적당한 농담을 섞는다. 웃기지 않아도 된다. 다만, 날린 말이 너무 멀리 날아가지 않기를 바랄 뿐.

그게, 내가 사람 곁에 머무는 방식인 듯.


참, 피곤하게 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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