향냄새를 머금은 하얀 꽃 사이로 당신의 얼굴이 보인다. 아니, 당신을 닮은 나의 얼굴인가. 살아생전 ‘넌 날 똑 닮았다’라는 말이, 어쩐지 영정사진 속 무표정한 당신의 입술 사이로 새어 나올 것만 같다. 나는 ‘당신을 닮았다’라는 그 말이 싫었다. ‘너는 눈, 코, 입 하나하나 나를 빼다 박았다’라는 그 말이 너무나 싫었다. 당신은 나와 달라도 한참 달랐으니까. 당신은 화를 품고 사는 사람이었고, 나는 그것이 번질까 늘 도망치기 바쁜 아이였으니까. 그 말은 마치 내 안의 당신의 그림자를 박아두는 주문 같았고, 나는 그 어둠에 나를 잠식할까 두려웠다.
국화꽃이 가지런히 놓인 그 엄숙한 풍경 속에서 당신의 마지막 얼굴은 너무나 단정했다. 층층이 꽃꽂이된 하얀 꽃들이 당신을 위한 것인지, 남아있는 자들을 위한 것인지 난 정말 알 수가 없었다. 꽃들은 언뜻 보면 위로와 애도였지만, 나에겐 침묵의 방패였다. 말로 꺼내기엔 너무 무거운 마음을, 꽃들이 가만히 가려주고 있었기에.
활짝 피어버린 그 흰 국화 꽃잎 속속들이 내 감정들을 조심스레 끼워 놓았다. 아무도 모르게. 누구에게도 들키지 않도록. 아마 당신도 몰랐을 그 감정들은 그렇게 꽃향기인지, 향냄새인지도 모르게 당신 앞의 허공을 맴돌았다. 나는 그 자리에서 오래도록 움직이지 못했다. 나는 어쩌면 당신과 함께 꽃과 향 사이 어딘가에서 유령처럼 떠돌았으리라. 당신을 닮은 나와 나를 닮은 당신이.
당신이 모르는 게 있다.
당신의 시간이 멈춘 뒤, 그렇게 거의 20년의 세월이 흘렀다. 당신의 눈과 코와 입을 닮은 내 아이가, 지금은 당신이 닿지 못한 시간을 살아가고 있다. 나 역시 당신과 전혀 닮지 않은 삶을 조심스럽게 살아내고 있다. 당신을 닮았다는 그 말속에 숨은 그림자를 아직도 완전히 껴안을 수 없다. 다만, 그저 살아간다. 당신을 닮은 나로서, 그리고 당신과는 다른 사람으로서. 그렇게 오늘도 조용히 피고 지는 국화꽃 사이를 지나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