꺼져, 연기야
내 안에 굴뚝이 있다. 땅거미가 지면 거기에서 연기가 자욱이 피어오르고, 나는 꼼짝없이 연기 속에 갇혀 없는 사람처럼 된다. 나에게도 내가 잘 보이지 않아서 조금 두려워진다.
세상의 조도가 낮아지고, 지붕과 나무와 빈 그네에 침침한 그림자가 진다. 선명함을 잃을 때 모든 존재는 쓸쓸함을 얻는다. 우리가 누군가를 사랑할 때 자주 의기소침해지는 이유도 그와 비슷하다. (p121)
한정원 <시와 산책> 중에서
내 안의 굴뚝이 연기를 피운다.
말도 안 되는 글을 쓰느라 책을 읽지 못했다. 더군다나 어제는 둘째를 재우다가 같이 잠들어 버렸다. 재운 뒤에 나와서 하고 싶은 걸 하려던 참이었는데, 눈을 뜨니 새벽 5시. 깜짝 놀랐다. 못 일어난 게 신기해서가 아니라, 5시! 그 이른 새벽에 눈이 떠졌다는 사실이 놀라웠다.
아, 일찍 자면 일찍 일어나는구나. 우리 집 7살 꼬맹이도 아는 간단한 신체 리듬을, 나는 마치 처음 깨달은 사람처럼 신기해했다. 오랜 시간 올빼미 생활을 해온 나에게, 어쩌면 '미라클 모닝'에 대한 은근한 자격지심이 있었던 걸지도 모른다.
"나는 절대 아침형 인간이 못 돼."
그렇게 단정 지어 버린 채, 다크서클이 발목까지 내려오거나 말거나, 편두통이 오거나 말거나, 승모근이 솟아오르거나 말거나—미라클 모닝 따위 내 사전엔 없다고 뻗댔으니 말이다.
각설하고. 오늘 읽은 책 <시와 산책>에서, 한밤 중 올빼미의 감성을 건드린 문장이 있어서 기록해 놓으려고 한다. '내 안의 굴뚝'이라는 단어에 눈길이 멈췄다. 피어오르는 연기가 시야를 가리는 것처럼 내 안의 어떤 것도 점점 불분명해지는 느낌! 살면서 그럴 때가 자주 온다 생각했다. 잘하고 있다고 생각하다가도 어느 순간 내 안의 굴뚝이 연기를 뿜어내어 나 자신이 흐릿해진다. 아무것도 모를 때는 모든 게 자극적이고 강렬하고 선명하게 다가왔지만, 알면 알수록 점점 색이 바래는 것처럼 흐려지는 느낌. 잘하고 싶은 마음이 커서일까. 아니면 매 순간 마주하는 나의 한계 때문일까. 둘 다인가.
연기가 사라지면 알려나.
#연기야꺼져줄래
#이거슨맥락없는나의푸념
#그나저나이책은여러번읽어도너무나좋다
글풍뎅이
Untitled 나른한 상념들 매거진 <---- 정제되지 않은 날 감정들을 주로 쓸 예정입니다. 잡생각이라고도 하죠.^^
[연재 브런치북] 아무거나 써도 괜찮아 <---월화수목금토 연재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