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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어난 김에 사는 중

빈손인 줄도 모르고

by 노미화
살아보지 않은 인생, 다시 말해 내가 살아갈 수도 있었을 삶이란 내가 아직 태어나지 않은 세상과 비슷하다. 나는 거기 있을 수도 있었다. 하지만 없었다. 그게 전부다.
삶을 사유하다 보면 문득 이상하게 느껴진다. 이토록 소중한 것의 시작 부분이 잘 기억나지 않는다. 시작은 모르는데 어느새 내가 거기 들어가 있었고, 어느새 살아가고 있고, 어느새 끝을 향해 가고 있다. 소설이나 영화는 시작 부분에 공을 많이 들인다. 첫인상이 그만큼 중요하다는 것을 모두가 알고 있다. 그러나 내 삶이라는 이야기에는 첫인상이랄 게 없다. 숙취에 절어 깬 아침 같다. 간밤에 무슨 일이 있었던 것 같은데 뭐가 뭔지 잘 모르겠는 기분. 내 삶의 서두는 기억이 나지 않는 반면, 나와 무관한 다른 삶들은 또렷하고, 그것들은 대부분 소설이나 영화에 담겨 잇는 것들이다.
(p189)
김영하 <단 한 번의 삶>중에서




그냥 깨어있을 뿐



삶은 거창한 서사가 아니다. 누군가 시작 버튼을 누르고 나서야 알아챈, 예고 없는 롤러코스터일 뿐. 첫 장면은 기억나지 않는다. 무대도, 대사도, 서사도, 오직 타성만 흐른다. 혹여나 누군가 만들어낸 각본이라면 '당신은 흥행에는 실패했군요.'라고 말해도 전혀 이상하지 않을 스토리. (나 이 정도로 염세적이지 않았는데, 요즘 많이 피곤한가 보다.)



태어남과 동시에 던져진 삶이라도, 그래도 말할 서사는 있지 않을까.

지난한 삶이라고 늘 말하지 않았는가.

진짜 지난한 삶이 무엇인지도 모르면서.



한글 창 하나 띄워놓고 깜빡거리는 커서를 한참을 보다가 적는다. '나는 왜 글이라는 걸 쓸까'. 도무지 답이 나오지 않아. 일단 키보드를 두드려본다. 무엇이 나올지 나도 잘 모르겠지만, 나는 무엇인가 자꾸만 적고 싶다. 키보드의 또각거리는 소리가 내 생각을 자극시키길 바랄 뿐이다.


효율성만 따지는 시대에 이렇게나 비효율적인 일을 하고 있으니 어쩐지 심사가 꼬인다. 벌어먹고 사는 일에 더 치중해! - 누가 모르나. 하지만 이상하게도 자꾸만 무언가를 쓰는 행위에 과한 의미부여를 하고 있다. -아니 그러면 뭔가 창작이라도 제대로 하면서 유의미한 무언가를 남겨보든가. 아니면, 먹고사는 일과 연결 지어보든가. 허구한 날 개똥철학의 글들을 쏟아내며, ‘나는 진심으로 유의미한 무언가를 찾고 있는 중이다’라는 정신승리를 하며 체력과 시간과 에너지를 소모시킨다. 이게 정말 유의미한 것인가. 유의미한 것들을 만들어내는 타인의 삶을 쳐다보다 결국 빈손을 보며 허탈감과 무기력이라는 진창으로 한걸음 내딛는다.


그러면, 내게 보이는 타인의 삶은 정말 유의미한 것일까. 그들도 어쩌면 나처럼, 가끔은 방향도 모른 채 걸음을 옮기고 있을지도.


그러니,

다시 눈을 가리고 걷는다.

단 한 번의 삶이니,

비효율적인 몸짓이라도,

빈손일지라도,

여전히 걸어가본다.

멈추지 않고.



#그런데

#몸살이왔다

#참얄굿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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