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흐린 날을 다정히 맞는 편이다. 침침한 빛, 자욱한 사물들, 묵직하게 흩어지는 향. 흐린 날에는 모든 존재가 자신을 잠잠히 드러낸다. 내 안의 언어와 비언어들조차 소란스럽지 않다. 그 세계가 몹시 안온하고 충만해서 빠져나오고 싶지 않을 정도이다.
“자신을 중시하는 쪽으로 가라앉지”말고, “자기를 잊어버리는 쾌활함 쪽으로 올라와야 한다”고 강조했다. “엄숙함은 인간에게서 자연스럽게 흘어나오는 것이지만, 웃음은 일종의 도약이기 때문이다. 무거워지는 것은 쉽고 가벼워지는 것은 어렵다.” 결국 발목에 추를 달 줄도, 손목에 풍선을 달 줄도 알아야 한다는 뜻이다. 양극을 번갈아 오가는 게 아니라, 한 번에 두 겹의 감정을 포용하라는 것이다.
한정원 <시와산책>중에서
“엄마, 심심해.”
사실은 나도 그렇다. 하루는 쉴틈도 없이 돌아가는데, 이상하게 삶은 무료하다. 매일 특별한 이벤트를 원한 건 아니지만, 오늘도 역시나 별일 없는 하루에, 기분이 가라앉는다. 창문 밖을 보니 날씨가 흐리다. 수증기를 한껏 머금은 풍경. 곧 비를 떨어뜨릴 모양이다.
차라리 잘 됐다. ‘가라앉다’는 말보다 ‘기분이 떨어진다’라는 말이 어쩐지 더 특별하게 느껴진다. 떨어진다. 비가 떨어진다. 내 기분도 떨어진다. 이때 다 싶어 매번 똑같이 돌아가는 일상도 떨어뜨린다. 무언가를 해야 하는 마음도, 무언가를 하고 싶은 마음도 같이 후드득 떨어뜨린다. 그렇게 가라앉으려는 마음을 억지로 바닥까지 떨어뜨려버린다. 묵직한 추를 매달아.
“엄마, 심심해. 비가 와서 밖에 나갈 수도 없고. 우리 뭐 재밌는 거 할까?”
바닥까지 소란들이 따라왔다. 어떻게든 나를 건져 올릴 풍선들. 줄을 묶을 손목을 내어주고 기꺼이 떠오른다. 지루하고 뻔한 일상은 저기 바닥의 추에 여전히 묶어두고.
조금씩 떠오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