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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은, 너는 몰라도 된다

by 노미화
'기차에서 만난 이방인 효과'
낯선 사람에게 오히려 속얘기를 털어놓기 쉽다.



처음 만난 그녀는 서슴없이 자신의 속얘기를 털어놓았다. 그녀는 나를 오래 알던 친구처럼 대했고, 나는 우리가 처음 본 사이라는 사실을 몇 번이나 되새겨야 했다. 대부분이 시댁에 대한 이야기였는데, 단순한 불평의 수준을 넘어선 꽤 체계적인 험담의 서사였다. 그 불편한 감정을 설명하기 위해, 그녀는 연애 시절부터 결혼, 출산, 육아에 이르기까지 시가와의 갈등으로 이어지는 복잡한 연대기를 차근차근 꺼내 들었다. 나도 모르게 그 삶의 서사에 끌려들어 가고 있었다.


신기했다. 낯선 이에게 저리도 모든 걸 털어놓는 일이 가능한가. 마치 자신의 삶을 처음부터 정리해 보는 사람처럼 과거를 들추어냈다. 고개를 끄덕이며 듣는 나를, 그녀는 아마도 '판단하지 않을 청자' 혹은 '판단해도 상관 없을 청자' 쯤으로 여겼을지도 모르겠다. 그것은 어떤 의미에서는 신뢰의 표현처럼 보였고, 또 어떤 의미에서는 단순히 '감정의 배출구'처럼 느껴졌다. 어쨌거나 신기했다.


그녀만을 위한 대서사의 한 꼭지가 끝나갈 무렵, 나는 조심스럽게 화제를 돌렸다. 계속된 감정적이고 부정적인 이야기를 들으려니 마음이 조금 지쳤다는 표현이 더 정확하겠다. 그 순간, 이상하게 익숙한 기시감이 들었다. 그녀의 모습은 낯설었지만, 그 심리는 낯설지 않았다. 가만히 생각해 보면, 나 역시 그런 경험이 있다. 다름 아닌, 온라인 글쓰기 모임. 글을 쓰고 싶다는 목적 아래 모인 사람들이었지만 우리는 서로의 얼굴도 직업도, 심지어 진짜 이름조차 알지 못하는 경우도 있었다. 누군가는 친한 친구, 회사 동료, 가족과도 하지 못할 말들을 털어놓았고, 나 역시 그랬다.


그곳에서 나의 과거를 꺼냈다. 내가 어떤 실수를 했는지, 무엇을 감추며 살았는지, 무엇을 아직도 후회하는지, 무엇을 싫어하고 미워하고 원망하는지를. 글이라는 형식을 빌려, 나의 삶을 서사화했다. 그건 마치 고해성사처럼 은밀하고 조용한 행위였지만, 동시에 많은 사람들 앞에 놓이는 일종의 발표이기도 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전혀 불안하지 않았다. 오히려 그 반대였다고나할까. 그들이 나를 온전히 모른다 는 생각했다. 나에 대해 아는 것이 없으니, 그 이야기는 어쩐지 그들에게는 '아무 관련 없을지도 모를 이야기'처럼 들릴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다.


이상한 일이었다. 가까운 사람에게는 결코 말하지 못할 이야기들이었다. 너무 솔직한, 혹은 너무 치사하고 유치한, 혹은 너무나 내밀한 이야기들이었다. 가까운 사람에게 털어놓았을 때 돌아올 '판단'이 두려웠다. 관계가 어긋날까 봐, 질책을 받을까 봐, 혹은 나 아닌 누군가가 힘들어할까 봐. 그에 비해 낯선 이에게는 아무것도 증명할 필요가 없었다. 듣고 잊어버릴 관계라고 생각했다면, 그들에게 미안한 일이지만, 그들의 삶이 내 삶에 온전히 들어올 일은 없을 거라는 경계를 스스로 그어놓고 있었던 것 같다. 그래서 말할 수 있었다. 현재의 내 삶을 지키면서, 과거의 나를 끄집어내 위로받는다고 생각했으니.


멈추기가 어려웠다. 어느 순간부터 나는 글 안에서 내 속마음을 거르지 않고 뱉어내기 시작했다. 처음엔 조심스러웠던 감정들이 점점 과감해졌고, 그 안에서 나는 이상한 해방감을 느꼈다. 글을 읽고 공감해 주는 댓글이 달리면 안도했고, 나를 이해해 주는 듯한 반응에 위로를 받았다. 그러나 그 감정은 곧 익숙함이 되었고, 익숙함은 다른 무언가를 갈망하게 만들었다.


나는 '공감'을 기다렸나 보다. 나의 고백은 점점 더 진해졌고, 나는 그 공감에 길들어가고 있다고 생각하는 순간, 나는 내가 그것을 먹고 자라는 괴물처럼 느껴졌다. 내 이야기를 소비하면서도 소모되는 나. 그리고 그 소비를 원하면서도 부담을 지우고 싶지 않았던 나. 사람들과의 그 거리감은 무책임한 안도감이었고, 그 안도감은 가까운 사람들과의 대화에서 찾을 수 없는 편안함과 연대감을 제공했다. 그렇게 길들여져 가던 어느 순간, 나는 내 이야기를 하는 것이 부끄러워졌다. 그리고 나는 더이상 과거를 말할 수가 없었다.


생각해 보면, 나를 처음 만났던 날, 그날의 그녀도 그랬을 것이다. 겨우 통성명만 했던 그날. 안전한 거리의 내가 앞에 놓였을 뿐. 자신의 감정을 발설할 곳이 필요했고, 나는 마침 그 자리에 있었을 뿐이다. 그녀는 나를 믿었던 것이 아니라, 내가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이기 때문에 말을 할 수 있었다. 그녀에게 나는 기차 안의 낯선 승객 같은 존재였을 것이다. 내릴 때가 되면 다시 보지 않아도 되는 사람. 그래서 마음을 털어놓기 좋은 사람.


진짜 가까운 사람일수록 말하지 못하는 이야기들이 있다. 그건 어쩌면, 그 관계를 유지하고 싶은 마음 때문인지도 모른다. 그러니까 오히려, 가장 솔직한 말은 관계의 경계 밖에서 나오는 것이 아닐까. 가까운 듯 낯선 사람에게, 책임지지 않아도 되는 관계 안에서. 이상한 일이면서 참 비겁해 보이기도 하다.


하지만 그녀도, 나도, 언젠가 또 다른 낯선 이 앞에서 비슷한 고백을 하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앞에 있는 그 사람에게 복잡한 나의 삶의 연대기를 낱낱이 고하며. 그리고 그 앞의 누군가는 또, 고개를 끄덕이며 속으로 이렇게 생각하겠지.


'신기하다, 이 사람. 낯선 사람에게 이렇게까지 모든 걸 털어놓다니.'


사실은, 당신은 몰라도 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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