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째 아이에게 <장자> [소요유] 편에 나오는 대붕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북쪽 바다에 '곤'이라는 이름의 아주 커다란 물고기가 살고 있었대. 그 물고기는 자신이 사는 바다세상이 너무나 좁아서 답답하고 갑갑하다 느꼈어. 왜냐하면 곤은 평범한 물고기가 아니라, 그 바다가 비좁을 만큼 몸집이 거대했기 때문이지. 어느 날 곤은 물 밖으로 머리를 내밀었고, 그 순간 하늘에서 불어오는 낯선 바람을 느꼈어. 그리고 깨달았지. 자신이 살고 있는 세상보다 더 큰 세상이 있다는 걸 알게 된 거야. 곤은 새로운 세계를 향한 갈망을 품게 되었지."
"그래서 어떻게 됐어?"
"그 갈망이 너무나 컸을까. 어느 날 곤은 새로 변했어. 아주 커다란 새, '대붕'이 된 거야. 그런데 문제는 이제 하늘을 날 수 있는 날개가 생겼지만, 사방이 산으로 둘러싸여 있어 그와 같은 거대한 새가 날아오르기에는 힘든 환경이었지. 자신이 있는 세상은 너무나 좁고, 하늘은 닿을 수 없을 만큼 멀고 높다고 느꼈지. 날지 못하는 그 큰 새는 물속 세상도, 드넓은 창공도 아닌 어정쩡한 경계에 머물 수밖에 없었어. 불행에서 벗어나려 했는데 더 답답하고 갑갑한 세상에 갇힌 거지. 더 불행해진 거야."
"불쌍하다, 엄마... 그래서 죽었어?"
"아니, 그 큰 새는 어떻게 하면 자신이 날 수 있을지를 끊임없이 생각하고 고민하며 주위를 살폈대. 그리고는 결국 해답을 찾았지."
"날았어? 어떻게?"
"응. 바람! 대붕은 하늘과 바람의 움직임을 유심히 살폈지. 어느 날, 아주 강한 바람이 몰아치는 때가 있었는데 대붕은 그걸 놓치지 않았어. 그냥 바람이 아니라, 회오리처럼 일어나 세상을 뒤흔들 정도의 큰 바람이었지. 그 바람이 그 큰 새를 높은 하늘로 올려준 거야. 대붕은 회오리가 생기는 그 순간만을 기다린 거였지. 그렇게 해서 새(대붕)는 바람을 타고 하늘로 단숨에 치솟았고, 아주 큰 날개를 펼 수 있었어. 마침내 높은 창공에서 시원한 바람을 느끼며 멀리까지 날아갈 수 있었대. 아주 자유롭고 행복하게 말이야."
"와. 멋있다. 엄마!"
아이의 눈이 반짝인다. 이 이야기는 단순히 변신이나 모험의 이야기를 넘어선다 생각했다. '결핍'의 자각에서 출발해 꿈은 꾸고, 마침에 '자유'에 이르는 여정이었다. 아이에게 들려주면서도 나 또한 가슴속에 반짝이는 무언가가 콕 박히는 느낌이었다.
'불행에 대한 자각은 행복에의 의지를 기르게 된다.'
-강신주의 <장자수업>중에서
불행까지는 아니더라도, 내가 사는 세상은 '결핍'이 결핍된 시대처럼 느껴질 때가 있다. 날고 싶은 갈망이 없다면, 땅에 박힌 돌처럼 고요한 삶이지 않을까. 그 또한 만족스러운 인생이라면 상관없지만, 하늘을 보며 한탄하지만 않는다면 말이다. 결핍이 결핍된 세상에서 우리가 대붕처럼 날아갈 수 있을까.
이미 그리고 벌써 대붕은 우리 곁을 떠나갔는지도 모릅니다. 그의 날갯짓이 만든 바람 소리만이 우리 귀에 속삭입니다. 당신은 당신의 세계가 불행하다는 것을 직면할 만큼 용기가 있느냐고.
-강신주의 <장자수업>중에서
"엄마, 근데 그 물고기는 얼마만큼 컸길래, 바다가 좁았던 걸까? 바다는 원래 엄청 넓잖아."
아이는 묻고, 나는 되묻는다. 그 크기는 불행이었을까 행운이었을까. 아니면 축복이었을까. 자신이 있는 곳을 갑갑하게 느끼는 감수성이라면, 더 넓은 세계를 감지해 내는 상상력이라면, 그리고 나아가고자 하는 욕망이라면. 어쩌면 그것은 축복이자 고통이 씨앗이 아니었을까.
그리고 나는 부모로서 생각했다. 바람과 같은 역할을 해줄 수 있을까. 아니면 내가 대붕이 되어 하늘을 나는 아이의 바람이 되어줄 수 있을까. 혹은 회오리바람이 일기 전, 불확실하고 애매한 세계에 머물고 있는 아이 곁에서 함께 기다려줄 수는 있을까. 이미 창공을 날고 있는 대붕의 자유로운 날갯짓이 만든 바람소리가 내 귀에 무언가를 자꾸만 속삭인다.
'너는 너의 좁은 세계가 불행하다는 것을 직면할 용기가 있는가?'
언젠가 다시 아이와 이 이야기를 나누게 된다면, 더 많은 질문을 해봐야겠다.
바람을 따를 것인지.
바람을 피할 것인지.
혹은 지금 나의 위치는 어디인지 스스로 물어보길.
바람은 언젠가 분다고.
그때를 놓치지 말라고.
그때는 바로 너 자신이 바람이 되는 순간일지도 모른다고.
그 질문을 품고 살아가는 삶이라면, 날아오르지 못하더라도 이미 하늘을 향해 있는 삶일지도 모르니.
너무 늦게 품어버린 그 질문들을 아이에게는 꼭 해주리라 다짐하지만, 애매한 어딘가에서 하늘을 보며 고개만 들고 있는 건 아닌지 자꾸만 스스로를 돌아보게 된다.
사실, 오늘 연재글을 쓰기가 참 힘들었다. '아무거나 써도 괜찮아'라는 타이틀을 바꿔야 되나 싶을 정도로 '아무거나'를 써내지 못했다는 생각이 며칠 동안 나를 괴롭혔다. 오늘 연재를 넘길까 생각하다가 이전에 쓴 글을 조금 다듬어 올렸다. 무풍지대에 놓인 기분. '이미 하늘을 향해 있는 삶'이라도 여간 힘든 게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꾸역꾸역 연재를 하고 보니, 축복인지 고통인지 모를 씨앗하나를 또 마음에 심어 버린 듯하다. 다음 연재를 쓰기 위해 또 나는 얼마나 하늘을 쳐다보고 있을까. 이것도 이미 하늘을 향한 삶인가. 가소로운 바람이 마음을 간지럽힌다.
있잖아 아들아, 엄마가 어느 날 문득 물밖으로 머리를 내밀었는데, 그 순간 낯선 바람을 만난 거야. 엄마는 그날 엄마가 알고 있는 세상보다 더 큰 세상이 있다는 걸 알게 된 거야. 그리고 꿈을 꾸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