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에게 남기는 첫 장
아들아, 요즘 책을 잘 읽히니? 문득 너에게 하고 싶은 이야기가 생겼단다. 엄마가 책을 읽으며 조금씩 깨달은 것들이 있어. 가끔은 책을 왜 읽어야 하나, 그런 생각이 들더라. 그래서 엄마는 너에게, 그리고 엄마 스스로에게 그 이유를 한번 말해보고 싶었어. 어느 날 책을 펴고 앉았는데, 문득 네 생각이 나더라. 이 글은 엄마가 책을 통해 다시 배우는 이야기이자 너에게 전하고 싶은 마음이야.
너도 알다시피, 엄마가 요즘 독서에 조금 욕심을 부리고 있잖아? 엄마가 독서를 하다 보니까 이런 생각이 들더라. 책은 누군가가 강요해서 읽어지는 것이 아니다는 생각 말이야. 내가 필요로 해야 그때부터 진짜 독서가 시작된다는 거! 그게 정보든 재미든 공부든 자기 계발이든 자아성찰이든 말이야, 일단 목적 없는 독서는 없는 것 같아. 하물며 심심해서 책이라도 봐야겠다는 것 역시, 목적은 재미를 얻기 위함이잖. 그런데 요즘은 책 보다 재미있는 게 얼마나 많은 세상이니. 엄마도 모르지 않아. 엄마도 그 재밌는 것들에게서 헤어 나오지 못할 때도 있다는 걸 미리 고백한다.
아들아, 이왕 고백하는 거 하나 더 고백하마. 엄마는 너만 할 때 책을 읽었던 기억이 없단다. 책은 지루한 것이었지. 어릴 때 엄마도 책장에 책은 있었어. 전집으로 된 위인전 혹은 역사책이었지. 아마 이순신과 세종대왕을 그나마 읽었을 거야. 없는 살림에 할머니가 엄한 데다 돈을 쓰셨지. 그때는 철이 없어서 미안하다는 생각도 들지 않았어. 읽지도 않을 저 재미없는 책을 도대체 왜 산 건지, 그냥 이해할 수가 없었지. 오랜 시간 거의 새책처럼 책장 맨 밑에 칸을 차지하고 있었던 그 책은 어느 순간 흔적도 없이 사라져 버렸지. 아마도 할머니는 그때 이렇게 생각했을지도 몰라. ‘책을 저리 안 읽어서 나중에 공부는 어찌할까 몰라.’ 물론 나의 생각이겠지. 아마 할머니도 독서의 효용은 알았으나 독서에 흥미를 붙이는 방법은 잘 모르셨던 것 같아.
아들아. 엄마는 사회에 나온 순간부터 책을 읽기 시작했어. 늦었지만, 너무 늦지 않았다고 믿으며 말이야. 읽다 보니 어릴 적엔 몰랐던 이야기들이 얼마나 재미있었는지, 밤이 새도록 책을 읽은 적도 있었지. 할머니가 알면 아마 믿지 못하실 거야. 조금 후회도 했어. 이렇게 재밌는 세상을 뒤늦게 알아서 말이야. 책이란 게 단지 지식을 채우는 도구가 아니라 나를 들여다보게 하고, 세상을 다정하게 바라보게 해주는 창문이란 걸 조금 어린 시절에 알았다면 지금의 엄마는 또 다른 사람으로 살아가지 않을까라는 생각도 가끔은 해.
그래서 말인데, 늦게나마 엄마가 그 창문을 통해 본 세상을 너에게도 들려주고 싶어. 이 글이 엄마가 읽은 책과 함께 남기는 작은 기록이자 너와 나 사이의 조용한 대화가 되었으면 좋겠구나. 이곳에, 엄마가 마음으로 읽은 책들을 한 권씩 꽂아둘게. 언젠가 네가 필요할 때 하나씩 꺼내 읽을 수 있기를 바라면서.
그럼 이제, 엄마의 책장을 소개해볼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