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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미화 Sep 09. 2024

킬러문항

글쓰기 고난도 문제에는 '치트키'가 없다


 문득 시선이 느껴진 것은 들으라고 내는 헛기침 소리 때문이었다. 거북이 목을 하고 얇실하게 눈을 뜬 채로 모니터만 보고 있던 나는 턱만 살짝 틀어 기침이 나는 쪽을 바라보았다.

“목 꺾이겠다. 뭘 그리도 심각하게 쓰고 있냐? 뭐 잘 안돼?”

사실 글이 엄청나게 잘 써지는 중이었다. 타자기 위에 손가락이 춤추는 날은 흔하지 않았다. 한 주를 통틀어 이런 날은 별로 없는데, 귀신같이 또 맥을 끊어주는 옆지기에게 ‘맥 끊는 학원이라도 다니냐’고 물어보고 싶은 마음이었다. 걱정돼서 물어보는 마음을 할퀴면 안 될 것 같아 도발하지 않고 꾹꾹 누르며 실없이 대답했다.

“어어, 재밌네. 허허허.”

알아들었으려나. ‘말 걸지 마.’   

  

 글 쓰는 걸 재밌다고 해도 별 관심이 없는 내 옆지기는 맥 끊는 일에 소임을 다한 사람처럼 자신의 흥밋거리로 돌아선다. ‘아놔, 어디까지 썼더라…….’ 다시 집중해서 쓰려고 키보드에 손을 올리며 눈을 얇실하게 떴다. 요즘 노안이 왔는지 가까이에 있는 건 근시 안경을 벗어야 선명히 잘 보인다. 모니터 앞으로 쭉 뺀 것이 딱 거북이가 목을 빼고 있는 자태다. 자각하는 순간마다 고개를 뒤로 댕기지만 이미 목은 뻐근할 대로 뻐근하다. ‘전업 작가도 아니면서 몸은 전업 작가보다 더 혹사시키네.’ 표현은 안 하지만 내 옆지기도 혹시나 그렇게 생각하고 있지 않으려나 싶은 자기 비하의 생각이 온몸을 훑고 지나간다. 그래서인가, 부러 더 즐겁고 유쾌한 분위기를 풍겨내려 용을 쓴다.

“크, 너무 재밌다. 허허허.”

들었으려나. 나의 가식을.     


 듣길 바랐다. ‘무슨 말도 안 되는 글이라는 걸 쓴다고 아침저녁으로 저리 노트북 앞에 앉아 있을까’라는 의문을 품지 않기를 바라려면 미치게 재미있어 죽겠다는 분위기를 한껏 풍겨야 했다. 그런 위선이라면 충분히 긍정적으로 생각할 수도 있겠다. 결국은 나에게도 이득이 되었으니 말이다. 때때로, 아니 매 순간 글을 써 내려간다는 것이 얼마나 힘들고 고된 일이지만, 지면의 공백을 하나씩 메워 나갈 때의 성취감은 재미 이상의 쾌감을 느낀다.

“흐흐흐, 힘든데, 재밌어 죽겠네.”

변태스러웠으려나. 나의 진심.     


 은유 작가의 <쓰기의 말들> 프롤로그에 이런 문장이 나온다. ‘나는 글쓰기를 독학으로 배웠다.’ ‘나도 할 수 있을까’라는 마음을 가지게 만든 말은 어쩌면 저 문장일지도 모르겠다. ‘독학 獨學’이라는 말은 극적인 냄새를 풍겼다. 미숙한 사람이 장인이 되어가는 열정을 함축시킨 말 같아서 독毒하게 느껴졌다. 나태하게 살 수 없게 했고, 권태의 실체를 알려줬으며 배워가는 과정 내내 지루함을 느낄 시간을 주지 않았다. 감각이 예민해져야 했고 안 보이던 것들을 보려고 애를 써야 했다. 하루가 참 짧다고 느껴졌다. 글을 써내야 하는 시간보다 보고 듣고 생각하고 글감을 수집해야 하는 시간이 곱절은 더 들었다. 그러다 글이 더는 써지질 않았다. 한자도 못 썼다는 말이 더 정확하겠다.    

  

 초고라고 할만한 글들이 노트북 바탕화면에 ‘잡동사니’라는 이름의 폴더에 쌓아 놓았다. 파일을 불러와 가만히 들여다보고 있으면 이런 생각이 들었다. ‘나는 무엇을 말하고 싶은 걸까. 무엇이 내 안에서 넘쳐흘러 쏟아져 나와 글로 고스란히 담을 수 있을까.’ 정체성이 불분명한, 뒤죽박죽 섞어놓은 듯한 목록들을 보고 있자니, 일관된 신념 뭐 그런 거 하나 없이 살아온 건가 싶기도 하고, 삶의 다양성을 지향한다는 나의 그 얄팍하고 쉬운 신념은 정신 산만함을 커버하기 위한 말인가 싶은 생각에 살짝 위축되기도 했다. 마음이 답답했다. 아무것도 말할 게 없다 하기에는 내 안이 너무나 시끄러웠다. 이건 성과의 문제와는 조금 달랐다. 철저히 과정에 대한 문제이고 고민이었다.  

    

 단 한 방울만 탁 떨어뜨리면 흘러 넘 칠 텐데. 이상하게도 나의 글쓰기의 표면장력은 가히 우주급으로 팽창했다. 봉긋해지기라도 하는 걸까. 넘쳐 오를 순간을 위해 마지막이 될 한 방울을 끊임없이 붓고 있는 느낌마저 들었다. 어제도 한 방울, 오늘도 한 방울, 내일도 한 방울. 아니 어쩌면 아직은 흘러 넘 칠 것이 없는 걸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했다. 약간의 오기가 생겼다. 흘러넘치는 순간을 기어이 보고 싶은 나에게 질문을 한 방울 떨어뜨렸다.

     

‘너는 도대체 무엇을 말하고 싶은 거냐?’    

 

 어느 날 하루는 둘째 아이를 등원시켜 놓고 자주 가던 커피숍엘 갔다. 다이어리와 볼펜만 가지고 앉아 어릴 적 기억들을 하나씩 복기시키며 휘갈겨 적어 내려갔다. 어릴 적 살던 집의 풍경, 동생과 소꿉놀이 했던 골목길, 무겁게 내려앉은 집안 분위기, 꽤 선명한 엄마의 눈빛과 목소리까지. 기억나는 모든 것들을 적어 내려갔다. 한 시간 동안 쉬지 않고 써 내려간 글의 분량이 제법 되었다. 내 안에 새로운 것만 채우는 것이 아니라, 내 안에 있던 것들을 먼저 뱉어내야 한다는 걸 그때 처음으로 알았다. 글은 만들어내는 게 아니라 나를 스쳐 갔던 모든 것들을 진실성 있게 꺼내 보이면 된다는 걸.

     

 산을 넘었더니 또 다른 산이 나왔다. 꺼내놓은 것들의 진실이 무서운 게 아니었다. 그것을 내가 어떤 식으로 어떻게 다룰지가 무서웠다. 진실의 왜곡. 미화시켜도 안 되고 그 자체를 추악하게 만들어도 안 된다. 한없이 긍정적으로 또는 부정적으로 다루기도 싫었다. 왜냐하면, 나에게 그런 글을 쓸 자격이 있느냐고 내 마음의 목소리가 자꾸만 속삭이기 때문이다. 귀도 없는 마음에 자꾸만 속삭인다. 네가 글로 쓰는 그 감정들은 진실하냐고. 그런데도 자꾸만 쓰라고 재촉했다. 이야기하는 게 맞다고. 꺼내고 쓰다 보면 다루는 방법을 알 거라고.

     

 마음을 진공상태로 만들어 버리자고 생각했다. 파동이 일어나지 않으며 불필요한 공명도 없겠지. 그러고는 다시 자판기에 손을 올렸다. 무음 상태가 되자, 내 안에 부유하던 무게를 가진 감정들이 동시에 바닥에 떨어지기 시작했다. 가벼웠던 즐거움과 무거운 슬픔까지 똑같은 속도로 바닥까지 가라앉았다. 시끄러웠던 마음이 비어 버린 것처럼 고요했다. 아무것도 공명하지 않은 빈 마음. 자판기에서 손을 내리고 깜박이는 커서만 멍하게 쳐다보고 있었다. 아, 이게 아니었나 보다. 다시 마음속에 풍선처럼 공기를 불어넣었다. 속삭이는 목소리가 공기를 따라 들어온다.      

‘너 도대체 몇 시간을 생각만 하는 거냐.’

‘어차피 쓸 거 잘 좀 써봐.’

‘어깨에 힘 다 뺀다며? 웃기고 있네.’

‘너는 좀 딱 지킬 수 있는 말만 하고 살아.’

‘어려운 게 아니고 네 실력이 부족한 거야.’

‘아직은 멀었어. 더 내공 쌓아.’

‘네 감정만 중요한 게 아니야!’

‘진실을 왜곡하지 마’     


 나쁜 것은 빨리 오고 좋은 것은 늦게 온다. 나를 괴롭히던 목소리의 파동이 마음에 또 다른 공명을 일으켰다. 가라앉았던 지원군들이 하나씩 떠오르기 시작했다.     

‘괜찮아, 어떻게든 가면 되는 거야.’

‘어차피 계속 써야 하는 거 잘 써지겠지.’

‘사람이 어깨에 힘을 좀 줘야 또 발전이 있지.’

‘완벽? 그거 인류의 적 이래.’

‘당연히 아직은 멀었지. 이제 막 탯줄 잘랐으면서.’

‘일단 내 감정이 중요해.’

‘진실하게 말할 수 있는 방법을 꼭 찾을 거야’     


 긍정의 감정들이 다시 마음속에 가득 차서 둥실둥실 떠다녔다. 비로소 나는 깨닫는다. 나를 괴롭히는 불쾌한 그 방해자들이 때때로 필요하다는 것을. 예민하게 관찰하고 받아들이되 민감하게 반응하지 않는 연습을 하고 있지만, 생각만큼 쉬운 일이 아니다. 마치 수능 수리영역의 킬러문항을 푸는 것처럼 머리가 지끈거린다. 수학은 고난도 문제에 적용 가능한 치트키 전략이라도 존재하지, 글쓰기의 고난도 문제는 오답노트만 잔뜩 쌓여간다. 그나마 다행인 건 그 오답들 조차 유용함이 있다는 게 글쓰기의 큰 장점이자 매력이라는 것이다.  인생과 글쓰기는 비슷하다고 하지만 어쩐지 글쓰기가 훨씬 더 정갈하고 아름답게 느껴진다. 인생이 따라가고 싶을 만큼.


‘반응하지 않는다’라는 말은 고요하다는 말이 아니다. 지금 내 안에 억지로라도 심지를 깊게 새겨놓아야 하는 것은 바로 ‘무반응’이 아니라 나를 나아가지 못하게 하는 마음속의 그 얄미운 훼방꾼들과 치열하게 싸워야 하는 것이다. 힘을 뺀 어깨를 이때다 싶어서 더 짓누르는 목소리. 받아들이되 밖으로는 민감하게 반응하지 않아야 할 때다. 자연스럽고 편안하고 태연하게 받아들인다. 다만, 내 안에서는 누구보다 치열하게 마음의 깊숙한 바닥으로 그 훼방꾼들을 패대기쳐 버리자고 마음을 단단히 먹는다. 그리고 나는 계속 글을 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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