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샛말로 독박육아 중인 나는 주말이 되면 더욱 막막해진다. 주중 근무로 에너지를 소진해 꼼짝달싹할 힘도 없었으나, 집에서 심심하다고 보챌 아이와 씨름할 것도 막막하여 어제에 이어 오늘도 도서관으로 향했다.
집 근처 주민센터에도 도서관이 있지만 아이와 시간을 오래 보내기 위해 차를 타고 큰 규모의 구립 도서관을 찾았다. 주차장은 이미 만차였다. 아이를 태운 부모들이 주차 자리를 찾아 주차장을 돌고 있었다. 집으로 돌아가려고 하자, 아이의 실망감이 역력했다. 나 역시이대로 집으로 돌아가기가싫었다. 아이를 태운 채 다른 차들처럼 주차장을 한없이 뱅글뱅글 돌다가 간신히 주차했다.
"다음부터는 좀 힘들더라도 버스, 지하철 타고 오자."
아이와 약속하며 도서관에 들어갔다. 한 층 전체를 차지하고 있는 어린이열람실은사람들로 가득 차 앉을자리가 없었다. 아이들은 책장 사이를 오가며 재잘댔고, 푹신한 쿠션을 깔아놓은 계단에 엎드려서 숙제하는 아이들도 보였다. 넓은 책상에는 독서하는 아이보다 아이를 지키느라 자리에 앉아있는 부모가 더 많았다. 아이는 한 명인데 엄마 아빠가 함께따라나선 집이 많으니 그럴 수밖에. 부모들은 하나같이 손에 핸드폰을 들고 부지런히 검지손가락을 움직이고 있다. 주차 때와 마찬가지로 자리 잡기 위해 도서관 안을 뱅글뱅글 돌던 중, 자리를 정리하고 일어서는 이들을 발견했다. 버스에서 자리 잡듯 얼른 달려가 책상 위에 가방을 던지고는 의자에 털썩 앉았다. 아이를 옆에 앉히고 핸드폰 보는 부모들에게 보란 듯 으스대며 책을 꺼내 들었지만, 몇 분 지나지 않아 나 또한 핸드폰을 들여다보고 있었다.
한참 책을 보던 아이가 불현듯 자리에서 일어나 자료 검색을 하더니 나를 잡아 일으켜 세웠다. 게임 관련 서적이 종합자료실에 있다고 그쪽으로 가자고 졸랐다. 아이를 앞세워 종합자료실로 향했다. 종합자료실은 어린이 자료실과 달리 고요하고 빈 소파도 많았다. 책을 찾기 위해 안쪽 서가로 들어가니, 벽을 보고 쭉 늘어선 책상에 사람들이 일렬로 빽빽하게 자리 잡고 있었다.호기심에 발걸음이 자연스레 그쪽으로 향했다.그들은 하나같이 귀에 이어폰을 꽂은 채 책과 공책을 필기로 빽빽하게 채우고 있었다.무언가를 이루기 위한 절박함과 노력이빽빽이 쌓여서인지벽 근처의 공기는 밀도가 높고 무거웠다.
자료를 찾은 뒤, 소파가 놓인 한산한 쪽으로 돌아왔다. 이쪽에 말도 안 되게 낮은 테이블을 놓은 이유를 눈치챘다. 공부하는 이들이 아닌 독서하는 사람들을 위한 자리를 확보하기 위해서였을 것이다.눈에 가장 잘 띄는 자리에는 마침 아주머니 한 분이 거북이처럼 고개를 쭉 빼고 앉아 두꺼운 책을 들여다보고 있었다. 500쪽은 족히 되어 보이는 책을 절반 정도 읽은 듯한데, 첫 장부터 지금 펼친 페이지까지 읽는 동안 한 번도 자리를 뜨지 않았는지 몸이 화석처럼 굳은 것 같아 보였다.
내가 앉은 긴 소파 왼쪽 끝에는 20대 초반으로 보이는 반바지 차림의 남자가 몸을 비슷하게 기울여 핸드폰으로 영상을 보고 있었다. 남자 몸은 산사태 나듯 천천히 무너지고 있었는데, 30여 분쯤 지나자 결국 소파에 벌러덩 누운 꼴이 되고 말았다. 그의 발가락이 내게 닿을 듯해서 아이를 오른쪽으로 밀어 자리를 조금 옮겼다.
맞은편 팔걸이의자에는 30대로 보이는 남자가 앉아서 고개를 왼쪽 뒤로 꺾고 깊이 잠들어 있었다. 고개가 등받이에 걸쳐져 있긴 했지만 워낙 부자연스럽고 불편해 보여 살아있는 사람의 자세가 맞은 건지 걱정스러웠으나, 어디선가 음악 소리가 크게 울리자 어깨를 움찔하는 것으로 보아 죽은 것은 아닌 듯했다. 음악 소리가 울릴 때마다 그는 움찔대었을 뿐, 이내 다시 깊은 잠에 빠져들었다.
음악 소리를 낸 것은 잠든 남자와 일직선으로 놓인 팔걸이의자에 앉은 할머니였다. 정적 흐르는 도서관에서는 결코 짧지 않은 30초간 흐른 음악은 어찌나 우렁차고 웅장하던지, 처음에는 도서관 운영시간이 끝났다는 방송 음악인 줄 알았다. 두 번째 음악 소리가 울려 퍼질 때에서야 할머니 핸드폰에서 나오는 소리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한 아주머니가 어디선가느릿느릿나타나 얼굴에 미소를 지은 채할머니께뭔가를 숙덕이니 할머니는 영상 재생을 멈췄다.
책을 한 권 펼쳐놓고 주변 사람들을 흘깃거리다가 까무룩 잠이 들었다. 집에서도 잠들기 위해서는 노력이 필요하고, 낮잠도 자지 않는 편인데, 소파에 수면 가루가 뿌려진 것만 같았다.
엄마, 이제 집에 갈까?
아이가 소곤대는 소리에 화들짝 놀라 잠에서 깼다.
"엄마 오래 잤니?"
"아니, 10분쯤?"
아이의 얼굴에도, 내 얼굴에도 민망한 웃음이 깃들었다.
책을 한 아름 대출해 안고서 나의 안전한 쉼터이자 육아 공간, 보물 창고를 나서 집으로 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