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Honeyberry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허니베리 Sep 16. 2023

선생님, 하고 싶은 거 다 하세요.

 

 퇴근 후 광화문역 2번 출구 앞에서 A 대표와 만나기로 약속했다. 갓 서른이 된 A 대표는 몸담은 업계에서 떠오르는 샛별을 넘어서 매우 중요한 입지를 다지며 사업 영역을 확장하고 있는 사업가이자 예술가이다. 젊은, 여성, 사업가, 예술가. 이 말들을 조합하면 내 머릿속에는 짧은 헤어스타일, 아이라이너를 굵고 길게 그린 카리스마 넘치는 눈매, 몸에 착 달라붙는 슈트, 굽이 뾰족한 높은 힐, 번쩍이는 명품 가방을 든 여성이 떠오른다. 아마도 사업하는 사촌 언니의 영향을 받아 생성된 이미지인 듯하다. 하지만 A 대표의 모습은 ‘순한 아이유’ 같다. 긴 생머리, 화장했는지 안 했는지 알 수 없는 투명하고 하얀 피부, 커다랗고 호기심 가득한 눈망울, 조심스럽고 조용하게 내뱉는 한 마디 한 마디, 편안한 카디건에 운동화 차림. 알프스에서 막 내려온 소녀가 연상된다.




 신호등이 초록색 불로 바뀌었다. 길을 건너오는 인파 속에 긴 생머리를 단정하게 묶은 A 대표의 맑은 얼굴이 보였다. 서로 반갑게 인사를 나눈 뒤, 저녁 식사를 했다. 음식을 부지런히 입에 넣는 A 대표의 모습이 사랑스러웠다. 본인이 밥값을 계산해도 되겠냐고 예의를 갖추어 묻는 A 대표의 제안을 물리치고 밥값을 계산하자, 그녀커피를 사고는 텀블러를 구입하더니 선물이라며 수줍게 내밀었다.



  A 대표와는 영화로 인해 알게 된 사이이다. 내가 이전에 영화 수어 홍보 영상을 찍은 적이 있는데, A 대표가 내 수형(手形, 수어를 하는 손 모양)을 참고하며 수어 포스터를 제작했다. 한동안 그녀와 일과 관련 메일 주고받다가, 영화 시사회 자리에서 처음으로 만났다. 다른 도시에 거주하는 A 대표가 시사회 기간에 맞춰 서울에 올라온 것이다. 타지에 온 그녀에게 따뜻한 밥먹이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밥 한 끼 대접하고 싶다는 내 말에 낯을 가릴 거라는 예상과 달리 그녀는 흔쾌히 응다.  


  첫 번째 식사 자리에서 A 대표는 내게 인스타그램 사용알려주. 그 뒤로 그녀는 내가 게시물을 올릴 때마다 '좋아요' 버튼을 눌러주고, 댓글을 남기며 응원해 줬다. 초기에 A 대표와 관련해서 태그를 잘못하거나 크고 작은 실수를 몇 차례 했는데, 그때마다 그녀는 내가 스스로 깨달을 수 있도록 간접적 방법으로 인스타그램 에티켓을 려주었다. 내가 민망하지 않도록 말이다. 나는 A 대표와 소소한 사생활도 공유하며 서서히 인스타그램 꿈나무로 성장했다.


 오늘 A 대표와 두 번째 식사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받은 선물을 인스타그램에 올려도 될지 주책맞은 질문을 했다. 즉시 A 대표로부터 답이 왔다.

선생님 하고 싶은 거 다 하세요.♡


 메시지를 눈으로 확인하는데 A 대표의 고운 목소리가 귀에 들리는 듯했다. 이 짧은 메시지가 며칠이고 머릿속에 울렸다.


 처음에는 몰랐다. 이 메시지가 왜 이렇게 크게, 오래도록 울렸는지. 시간이 흐르며 천천히 그 이유가 보이기 시작했다.


 강산이 두 번 변하고도 남을 기간 교사로 살아온 나는  직업적 의무감과 사회적 시선을 의식하는 강박적 사고 속에서 다양한 욕구를 포기하고 억누르며 지내왔다. 이것을 깨달으니 그동안 나에게 야박하게 굴며 스스로를 옥죄며 산 게 미안했다.


  이젠 용기 내어 내가 하고 싶은 거 다 하자. ‘내가 하고 싶은 것’의 범주가 도에 지나치지 않을 것임을 스스로 믿자. 설령 조금 넘치면 어떠한가. 좀 참아주고 봐주며 성장을 기다려 주자. A 대표도 내게 그렇게 해주는데, 내가 스스로에게 그렇게 못 할 이유는 없지 않은가.


 나의 인친(인스타그램 친구) 순한 아이유 A 대표에게 갑자기 감사의 편지를 쓰고 싶어 다. 나보다 훨씬 사고의 폭도 넓고, 인품이 뛰어난 A 대표는 묶여있는 나의 쇠사슬을 발견하게 해 주고, 그것을 도록 돕고 있었다.


 어떠한 일에 대해, 나 자신이 움츠러들려고 할 때마다 그녀가 내게 해준 이 말을 떠올리 한다.

 선생님 하고 싶은 거 다 하세요.♡






                    

이미지 출처: Freepik

매거진의 이전글 흔한 주말 도서관 (육아) 풍경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