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래 여자아이들이 왕자님 만나는 것을 꿈꾸던 어린 시절, 나는 친구들의 꿈이 결코 이루어질 수 없다는 것을 명확하게 인식하고 있는 조숙한 아이였다.또한, 장차 어른이 되면 말도 안 되는 왕자님이 아니라 사장님과 결혼하겠다는큰포부를 지닌꼬마였다.게다가 현실적이기까지 하여,막연히 '사장'이 아닌 '쥐포 공장 사장'을 만나겠다는 구체적인 계획도 있었다. 쥐포는 내가 어린 시절부터 가장 좋아하는 간식이었지만, 질 좋은 상품은 비싸기도 하고 구하기도 어려운 귀한 먹거리였기 때문이다. 어린 나는 밤이면 이불을 덮고 한없는 상상의 나래를 펼쳤다.
배경은 달빛이 어슴푸레 비추고 있는 여수 앞바다. 쥐포 공장 사장님이 바다를 등지고 내 앞에 한쪽 무릎을 꿇고 앉아있다. 그가 내민 두 손에는 일본 수출용으로 한국에서는 맛볼 수 없는 최고급 쥐포를 한 땀 한 땀 정성스럽게 꿰매 만든 커다란 쥐포 다발이 들려있다.
허니베리 씨, 저와 결혼해 주십시오. 제 사랑을 받아주면 평생 가장 질 좋은 쥐포를 먹게 해 줄게요. 입에서 쥐포 냄새가 사라지지 않도록, 이 사이사이에 쥐포가 끼어있지 않은 날이 없도록....
내가 수줍은 손짓으로 그가 내민 쥐포 다발을 받아 들자, 그가 함박웃음 지으며 차 트렁크 문을 연다. 트렁크의 문이 열리는 순간 고소하면서도 구린 냄새가 사방으로 퍼지며 트렁크에 한가득 쌓여있는 온갖 크기와 두께의 황금빛 쥐포들이 펼쳐진다. 이러한 상상에 빠져 입맛을 다시며 잠을 청하곤 했다.
하지만, 성인이 되자 녹록지 않은 현실을 마주했다. 어딘가에 있을지도 모를 총각 쥐포 공장 사장을 만나기 위해서는 '쥐치 아가씨 선발대회' 같은 대회에 입상 정도는 해야 신랑감 귀에 내 존재에 관한 소문이라도 들어갈 텐데 밤마다 쥐포를 너무 많이 집어 먹은 탓에 내 상태는 무슨 무슨 아가씨 대회에 출전할 만한 형편이 아니었다.
세월은 흘러 흘러 사람을 외모로 취하지 않는 하느님 같은 자비로운 남자와 만나 결혼했다. 비록 그는 쥐포와는 아무런 관련이 없었지만, 결혼이라는 것을 하게 해 준 남편을 은인으로 여기며 살아가고 있다. 하지만 비싼 돈 내고 쥐포를 사 먹을 때면, 불현듯 못 이룬 꿈이 떠올라 한숨짓곤 했다. 특히나, 배송된 쥐포가 맛도 없고 냄새가 날 때면 슬픔은 배가되었다.
쥐포와 함께한 세월은 참으로 오래되었지만, 내 쥐포 굽는 실력은 형편없다. 우리 집은 가스레인지를 사용하지 않고 하이라이트를 사용한다. 쥐포는 불에 구워야 제맛인데 말이다. 어쩔 수 없이 쥐포를 프라이팬에 구워봤으나 고무처럼 맛이 없고, 전자레인지에 돌리면 타버리기 일쑤였다. 그러던 어느 날, 남편이 나의 형편없는 쥐포 구이를 보더니 나를 끌고 베란다로 나갔다. 베란다에는 남편이 총각 시절 사용하던 골동품에 가까운 물건들이 쌓여있다. 남편은 거기에서 20년은 넘어 보이는 낡고 더러운 토스터를 꺼냈다. 작긴 해도 아래위로 두 칸이 있어서 식빵 두 조각을 구울 수 있는 미니 오븐 형태였다. 총각 시절 가끔 이걸로 쥐포를 구웠는데 맛있게 구워졌다고 했다. 먼지가 뿌옇게 쌓인 외관을 보고 더럽다고 펄쩍 뛰자, 쿠킹 포일을 잘라 그 위에 쥐포를 얹어서 구우면 된다고 안심시켰다.
“자, 봐. 포일을 쥐포보다 크게 잘라야 해. 쥐포 꺼낼 때 손잡이로 이용할 수 있고, 접시로도 쓸 수 있거든. 그리고 시간은 2분 30초야. 기억해! 태워 먹지 말고.”
실험 정신이 투철한 나는 2분 20초를 돌리기도, 2분 40초를 돌려도 봤는데 그러면 어김없이 쥐포는 덜 익거나, 타버렸다. 과연 그는 정확한 사람이었다. 그가 알려준 2분 30초를 돌리면 쥐포의 잡내가 싹 날아가고 바삭하면서도 생선의 결이 느껴지는 데다가 심지어 살짝 불에 구운 듯한 향까지 났다.
40대 초반, 남들보다 이른 퇴직을 앞둔 남편 때문에 요새 속이 말이 아니다. 가장 힘든 이는 물론 남편이겠지만, 나 역시 속상한 맘을 간신히 진정시켰다가도 그의 말 한마디에 속이 부글부글 끓어오른다. 뱃속 깊은 곳에서 올라오는 열을 식히기 위해 식구들이 잠든 뒤 혼자 맥주 캔을 땄다. 늘어나는 뱃살 걱정에 맥주만 벌컥벌컥 마시려다가, 결국 쥐포도 구웠다. 2분 30초. 남편이 알려준 대로 쥐포를 구운 뒤 쿠킹포일로 만든 손잡이를 잡고 쥐포를 꺼냈다.
작은 상 위에 내가 가장 좋아하는 쥐포와 맥주가 놓여있으니 SNS 피드에 뜨는 화려한 안주상이 부럽지 않았다. 취기가 얼큰하게 올라오자, 긴장이 풀리며 마음도 풀어졌다. 내가 좋으면 됐지, 뭐. 남편도, 내 삶도 말이다. 다소 빡빡하더라도 내가 벌어 가정을 꾸려나갈 수 있음에도, 마음에 김이 빠지고 어깨가 처지는 건 결국 남들과의 비교 때문이잖아.
비록 쥐포 공장 사장과 결혼하는 것은 실패했지만, 쥐포 구이 장비와 레시피를 가진 남자를 만났으니 이 정도면 성공한 결혼 아니겠나. 내 곁에 있는 이 사람 힘낼 수 있게 엉덩이라도 토닥여 줘야겠다고 다짐하며 남은 쥐포 조각을 집어들었다.
(남편의 퇴직을 앞두고 갈등이 최고조일때 쓴 글입니다. 지금 남편은 삶의 새로운 장을 준비하며 열심히 지내고 있고, 저는 그러한 남편을 기쁜 마음으로 응원하는 중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