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적된 피로 때문일까. 일요일 아침, 침대에서 일어나 늦은 아침을 먹고 커피를 마셨음에도 머리가 맑게 깨어나지 않았다. 몸도 이사를 마치고 이삼일 지난 것 같이 어깨가 묵직하고 팔다리가 저릿저릿했다. 욕실로 들어가서 샤워하고 굼뜬 몸짓으로옷을 챙겨 입었다.
교회에 들어서니 계단 한쪽에 붉은색 천이 포도주가 흐르듯 주르륵 아래로 펼쳐져 있다. 지난주, 예수님이 십자가를 지신 고난주간이라고 교회에서 보낸 메시지가 기억났다. 오늘은 부활주일이었다.
교회 안은 유난히 밝게 느껴졌다. 천장과 벽에서 내리쬐는 조명은 예배당 구석구석까지 환하게 비췄고, 성가대 찬양 소리는 힘차게 울려 퍼져 건물이 미세하게 흔들리는 것 같았다. 주변이 온통 밝은 기운으로 가득한 가운데 나는 검은색 베일로 칭칭 싸인 듯 홀로 어둠 속에갇혀있었다.매서운 겨울 한파가 지나가고 봄이 왔다고는 하지만, 내 영혼은 동상에 걸렸었는지 아무런 감각이 없었다. 나의 푸르스름한 영혼은 웅크린 채 멍하니 앉아 눈물을 줄줄 흘렸다. 이유는 알 수 없었다. 봄도 오고, 부활하신 예수님도 만나러 왔는데.
눈을 감은 채 부활한 예수의 모습을 머릿속에 그려보았다. 눈같이 희어 눈부셨다는 예수. 감고 있던 눈이 부시는 것만 같아 눈을 더욱 세게 감았다. 예수의 모습이 머릿속에 다 그려질 무렵, 그의 손을 떠올렸다. 그의 손에는 십자가에 매달기 위해 로마 군인들이 못을 박았던 크고 길게 찢긴 상처가 있었다.
왜 이런 모습으로 부활하셨나요? 굳이? 이렇게 살아날 수 있는 분이라면 깨끗이 회복한 모습으로 나타나셔야 하는 거 아닌가요? 신이면서, 완전한 분이라면서.
그런데 말이다. 그 못 자국을 보며 질문을 던지는 순간, 동상으로 인해 무감각했던 내 영혼이 얼얼해짐을 느꼈다. 잠시 후 사방이 간질간질하기도 하고 멍든 곳을 누르는 것처럼 통증도 느껴지는 게,감각이 살아나고 있음을 직감했다.
예수는 죽음에서 다시 살아났는데, 아픔의 흔적을 지니고 있었다.
아픔의 흔적은 여전히 남아 있으나, 예수는 다시 살았다.
그러니 너도, 너도 살아갈 수 있다.
차갑게 식어가던 푸른색 영혼이 차츰 노르스름하게, 하얗게 변하더니 분홍빛 혈색이 돌기 시작했다.
큰 아픔은 쉬이 치료되지 않는다. 아픔이 즉시 치료된다면 그것은 기적이다. 하지만 더 큰 기적이 있다. 그것은 아픔을 가지고도 죽지 않고, 살아내는 것이다. 몸을 관통한 고통의 흔적을 지닌 채 죽음을 이겨내고 다시 살 수 있다고 보여준 서른세 살의 청년이 내 앞에 서있다. 그의 갈기갈기 찢어진 손을 잡고 무릎에 힘을 주어 일어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