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말 화가 난다.
나도 없는 시간 내어 아이를 위해서 최선을 다하고 있는데 칭찬은 못 할망정....'
남편에게서 메시지가 왔다.
아이 돌보는 것과 관련해 남편과 다툰 뒤, 분을 가라앉히기 위해 홀로 산책하던 중이었다. 그가 자기 잘못을 깨닫거나 인정하는 건 천지가 개벽하는 것보다 어려운 일일 거야,라고 생각하던 중이었지만, 이런 메시지를 보내는 건 정말이지 너무했다.
집으로 들어가려던 발걸음을 멈추고 건물과 건물 사이 그늘진 곳에 놓인 벤치에 앉았다. 겨울이라면 칼바람이 불었을 곳이었다. 바람이 건물 사이를 신나게 오가며 내 등과 얼굴을 스치고 지나갔다. 서운한 감정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올라왔다. 건물 사이 골목길이라고는 하지만, 간간이 행인이 있었다. 눈시울이 자꾸만 붉어져 고개를 아래로 푹 숙였다. 아스팔트 위를 부지런히 오가는 개미에게 비구름이라도 되는 것처럼 눈물을 뿌려주었다.
남편에게 긴 메시지를 남겼다.
'......매일같이 직장에서 에너지를 소진하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이면
늘 머리에 쥐가 나고 심장이 쪼여와.
집에 발을 딛는 순간 쓰러질 것 같은데도
나는 아이를 돌보고 살림을 해.
나도 집에 들어오면 소파에 누워서 핸드폰만 보고 싶은데
그러면 아이와의 삶이 영위가 안 되니까......'
장문의 메시지를 싫어하는 그이다. 아마 읽지 않겠지. 아니면 읽고 더 크게 화를 내겠지. 연애 때부터 신혼 초에 이런 일을 몇 번 겪은 뒤 서로 감정이 좋지 않을 때 장문의 메시지를 보내는 일은 삼가던 터였다.
한참 뒤 그에게 메시지가 왔다.
'아이 데리고 나갔다 올게. 저녁 잘 먹고. 내일 다시 차근차근 이야기해 보자.'
그의 반응에 조금 놀랐다.
얼마 후에 그가 사진을 한 장 보내왔다.
아이가 신나게 풀밭에서 뛰노는 모습이었다.
아홉 시 무렵 남편이 얼굴 가득 미소를 머금은 아이를 데리고 집으로 돌아왔다. 나는 입맛이 없어서 그제야 밥을 물에 말아먹으려던 참이었다. 남편이 아무 말 없이 밖으로 나갔다. 또 운동하러 갔구나 싶었는데 잠시 후 문 열리는 소리가 났다. 남편은 슬그머니 다가와 식탁 위에 초밥을 올려놓았다.
"밥 안 먹었어요?"
남편을 향해 고개를 들지 않고 초밥을 바라보며 남편에게 물었다.
"아이랑 먹었어요."
"근데?"
"이 앞에 마트 갔더니 세일하길래."
그의 손을 살펴보니 마트 다녀왔다는 사람이 다른 건 안 사 왔다. 뜀박질한 사람처럼 숨소리도 거칠다.
이미 밥을 꽤 먹어 배가 불렀으나, 그가 내민 초밥을 꾸역꾸역 먹었다.
다음 날 아침, 커피를 내리고 아이에게 말했다.
“아빠한테 커피 드실 건지 여쭤봐라.”
아이는 바로 옆에 있는 아빠와 나를 번갈아 쳐다보더니 어리둥절핟 표정으로 아빠에게 내 말을 그대로 전했다.
“아빠, 엄마가 커피 드실 거냐고 물어보래요.”
“마시겠다고 전해라.”
“드시겠대요.”
“맛이 어떤지 여쭤봐라.”
“맛있다고 전해라.”
아이가 잠시 멈칫하며 눈동자를 데구루루 굴리더니 얼굴에 빙그레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엄마, 아빠가 커피 맛있대. 그리고 엄마 사랑한대.”
아이의 말이 끝난 뒤 약 3초간 정적이 흘렀고, 우리 셋은 웃음을 참지 못하고 깔깔대며 웃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