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리 외곽의 중국인 밀집 지역에 위치한 OO 게스트하우스는 주머니 사정이 넉넉지 못한 20대 배낭 여행객이던 내게 적합한 숙소였다. 저렴한 가격에 교통도 나쁘지 않고 아침 식사까지 제공한다고 했다. 낡고 허름할 것이라는 예상과 달리 그곳은 지은 지 얼마 안 된 현대식 아파트였다. 초인종을 누르자 키가 작고 깡마른 아주머니가 나왔다. 말투를 보니 조선족분이었다. 아주머니는 본인도 한국에서 거주한 적이 있다며 나를 반가이 맞아주었다. 내부에는 자그마한 방이 여러 개 있었는데, 큰 방 두어 개를 여러 개로 나눈 것 같은 구조였다. 거실과 주방은 여느 게스트하우스처럼 공용으로 사용하고 있었다.
나를 방으로 안내한 뒤, 아주머니는 요리와 청소를 하며 그 와중에 누군가와 통화까지 했다. 종종걸음으로 집안을 바삐 오가는 아주머니에게서 외모와는 달리 단단한 힘이 느껴졌다. 짐을 풀고 있는데 열린 방문 사이로 아주머니의 목소리가 흘러들어왔다.
그래, 여권 준비는 당신이 책임져. 가능한 한 빨리 여기를 떠야 해. 알지?"
어디선가 들어본 적 있는 대사처럼 익숙하면서도 서늘한 느낌이 들었다. 들으면 안 될 말을 듣기라도 한 양 황급히 문을 닫다가 아주머니와 눈이 마주쳤다. 아주머니의 눈빛이 싸늘하게 변했다. 방음이 되지 않는지, 닫힌 문 사이로 여전히 통화 내용이 들렸다. 아주머니는 한국어 대신 중국어에 간간이 불어 단어를 섞어가며 통화를 이어갔다. 전화를 마친 아주머니가 내가 사용하는 방에 들어왔다. 아까와 달리 둘 사이에 어색한 공기가 흘렀다. 그녀는 불편한 건 없는지 물으며, 프랑스 아파트는 집 규모에 비해 주방이 작고 환기창도 없어서 불만이라고 투덜거렸다.
"그래서 이 나라를 떠나서 맘껏 요리할 수 있는 나라로 가려고요."
아주머니는 굳이 하지 않아도 될 설명을 덧붙이고는 방을 나갔다. 나는 기름진 음식 향을 맡으며 중국 요리와 프랑스 아파트는 실로 궁합이 맞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아주머니가 다녀간 뒤 왠지 방에 한기가 도는 것 같아 양쪽 팔뚝을 껴안고 손바닥으로 문질렀다.
숙소에는 나 말고도 두 명의 배낭 여행객이 있었다. 이들은 나와 비슷한 또래의 남자 청년이었는데, 둘은 매우 친한 친구인 듯했다. 게스트하우스에는 이들뿐 아니라 반백의 아주머니 한 분과 30대 후반 정도로 보이는 남자 한 명도 머물고 있었다. 어떤 사연이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이들은 이곳에서 장기 투숙 중이라고 주인아주머니께서 귀띔해 주었다. 아침이면 배낭 여행객들은 관광을 위해 집을 나섰지만, 장기투숙객들은 잠을 자는지 기척이 없었다.
밤이 되어 지친 몸을 이끌고 숙소로 돌아왔다. 메일을 확인할 일이 있어서 컴퓨터가 놓인 거실로 갔다. 컴퓨터 앞에는 장기 투숙 아저씨가 자리 잡고 앉아있었다. 그는 반짝이는 풍뎅이 색깔 셔츠를 입고 단추 몇 개를 풀어 가슴을 드러낸 채 의자에 비스듬히 기대앉아서 푸른 바다가 넘실대는 해안가 사진을 하염없이 바라보며 사진을 축소했다가 확대했다가를 반복했다. 나는 어정쩡한 자세로 멀찍이 앉아 이제나저제나 컴퓨터 좀 쓸 수 있을까 하여 아저씨 뒤통수를 노려보고 있었다. 저 아저씨는 내가 여기 앉아서 기다리는 걸 알기나 할까. 더 이상 참기 힘들어서 컴퓨터 좀 쓰겠다고 입을 떼려는 순간, 그가 뒤도 돌아보지 않고 여전히 모니터를 응시한 채 어눌한 발음으로 말을 꺼냈다.
“여기! 여기 바다 가까운 땅 모두 내 거예요. 나 입양해 준 양아버지 남긴 거, 유... 유산! 그거 되찾아야 해요. 찾아야만 해요. 그들이, 그들이 다 빼앗아 갔어요!”
짧은 이야기였지만 한 편의 영화 같은 스토리가 머릿속에 펼쳐졌다. 풍뎅이 아저씨에게 그런 사연이 있었구나. 안쓰럽기도 하지.... 아저씨가 나를 향해 천천히 의자를 돌리더니 말을 이어 나갔다.
“여기 근처에 내 집도 있어요. 크고, 방 많고, 화려해요. 혼자서는, 혼자서 살기에는 너무 외로운 곳이에요. 오랫동안 기다렸어요. 나와 함께 이곳으로 돌아갈 사람을. 근데 오늘 찾은 거 같아요. 아가씨, 지금 같이 가볼래요?”
"저, 저요? 아니요! 저는 내일 한국으로 돌아가요!"
물벼락을 맞은 듯 정신이 차려졌다. 제대로 미친놈이구나!
도망치듯 방으로 들어갔다. 그제야 살펴보니 방에는 잠금장치가 없었다. 바리케이드라도 쌓으려고 방안을 둘러보는데 방문이 스르르 열렸다. 소스라치게 놀라며 문 쪽을 바라보니 깡마른 몸매에 실크 롱슬립 차림을 한 반백의 아주머니가 서 있었다.
"무슨 일이시지요?"
“아가씨, 내가 점 좀 봐줄게.”
“아... 아니요. 교회 다녀서요.”
“아가씨가 남 같지 않아서 그래. 아가씨 보니 한국에 두고 온 딸도 생각나고. 내가 원래 대학에서 피아노를 전공했던 사람이에요. 하지만 결혼하고 아이 하나를 낳고는 평범한 주부로 살아갔지. 아이를 돌보다가도, 살림하다가도, 먼지 덮인 피아노를 바라보게 되더라고. 어느 날, 퇴근하고 돌아온 남편에게 저녁밥을 지어주고 아이를 씻기고서는 집을 나왔어요. 그냥, 아무 말 없이. 짐도 하나 없이. 남편은 아주 착한 사람이었어요. 하지만 그와 함께 평범하게 살아가는 건 내 삶이 아니었어요. 집을 나온 뒤 무작정 프랑스로 떠나왔지. 그리고 이곳에서 예술가를 만났어. 그는 나이가 아주 많은 이였지만 죽는 날까지 나를 끔찍이 사랑해 줬지. 내가 알지 못하던 나를 발견하게 해 준 사람이야. 여자로서 많은 사랑을 받았어... 그가 죽는 날까지.”
“아... 그런 사연이 있으셨군요.”
“어디 보자, 이런, 아가씨는 똬리를 틀고 있는 흰 뱀이로군. 남자로 태어났으면 좋았을 것을, 여자로 태어나서 겨울잠을 자고 있구먼...”
“근데 아주머니, 저 너무 피곤해서 어서 자야 할 것 같아요."
겨울잠 자는 건 고사하고, 아주머니 때문에 밤잠도 잘 수 없었다. 아주머니를 간신히 내보내고 마음을 진정시키려고 하는데 문밖에서 남자, 아주머니, 주인이 숙덕숙덕 대화를 나누는 소리가 들렸다. 간간이 주인아주머니가 흥분했는지 중국말로 큰소리를 내기도 했다. 저들이 장기 매매 같은 일을 하는 범죄 조직이 아닐까 하는 의심이 솟구쳤다. 두러움에 팔다리가 경직되기 시작했다. 그때, 관광을 나섰던 두 명의 한국인 청년들이 돌아왔다.
“다녀왔습니다!”
우렁차고 해맑은 두 청년의 목소리가 진심으로 반가웠다.
뜬눈으로 밤을 꼬박 새웠다. 다음 날 이른 아침, 미리 꾸려놓은 가방을 등에 짊어지고 ‘그들’이 깨지 않도록 살금살금 문밖으로 나섰다. 그 순간, 늘 아침 무렵 잠자리에 들던 아저씨가 옷을 말끔히 차려입은 채로 내 앞을 가로막았다.
“저희도 마침 그쪽으로 갈 일이 있어서 저희랑 같이 가면 돼요! 잘 쉬고 갑니다.” 그러자, 아저씨가 거칠게 내 팔을 잡아챘다.
“이 아가씨는 제가 데려다 드릴게요.”
청년 한 명이 내 반대 팔을 잡아당겼다.
“아니요, 저희도 그쪽으로 가는 길이니까, 같이 가겠습니다!”
아저씨와 청년이 줄다리기하듯 양쪽에서 팔을 잡고 잡아당기자 다른 청년 한 명이 내 등을 세차게 떠밀어 순식간에 문밖으로 밀려 나왔다.
우리 셋은 말없이 복도를 달려, 미리 약속이라도 한 듯 엘리베이터 대신 계단을 이용해 아래로 뛰어 내려갔다. 무거운 가방을 메고 한참을 달린 우리는 큰길에 나서서야 헉헉거리며 숨을 돌렸다.
아침부터, 아니 어젯밤부터 이게 무슨 일이람! 간신히 정신을 차리고 공항에 가려고 지하철 역으로 향했는데 파리의 대중교통이 마비되어 있었다. 우왕좌왕하는 시민들을 붙잡고 무슨 상황인지 묻자 모른다는 답변만 돌아왔고, 심지어 어떤 시민은 나에게 이게 무슨 일이냐고 묻기까지 했다. 간신히 찾은 지하철 역무원에게 어찌 된 일인지 물어보니 무뚝뚝한 얼굴로 ‘파업’이라고 적혀있는 종이를 가리켰다. 출근해야 하는 파리 시민들도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지만, 비행기를 타야 할 나의 당혹감이 훨씬 컸다. 다급히 종이지도를 펼쳤다. 이십여 년 전 일이라 잘 기억나지는 않지만, 아마도 파리 북역을 찾지 않았을까 싶다. 그곳에는 공항 가는 RER이 있을 거고, 이건 시내 대중교통 파업이랑은 상관없이 운행할 것이라고 판단했던 것 같다. 지상으로 올라오니 택시도 잡힐 리 만무했다. 나는 청년들에게 인사를 했다.
“저는 일단 좀 그냥 뛰어 볼게요.”
청년들은 내 말에 기겁했다.
“저 이 정도 거리는 충분히 걷고 뛰어서 갈 수 있어요. 가다가 택시가 잡힐 수도 있고요.”
청년들은 잠시 주저하더니, 운동 삼아 동행하겠다고 했다. 내가 미안함에 거절하자, 그들은 나를 지나쳐 앞장선 채 커다란 배낭을 등에 메고 달리기 시작했다. 중간 과정은 잘 기억나지 않는다. 한겨울이었지만 땀으로 흠뻑 젖었고, 무거운 배낭을 버리고 싶단 생각이 들었던 것밖에는. 아무튼 그렇게 달리고 달려 결국 공항 가는 열차에 몸을 실었던 것 같다. 그 청년들과 어디에서 헤어졌는지는 생각나지 않는다. 그들에게 제대로 고마움을 표시하지 못한 것은 두고두고 후회된다. 아무튼 우여곡절 끝에 공항에 도착하자, 긴장이 풀어지며 안도감이 몰려왔다. 이제 비행기에 타기만 하면 된다!
수속을 위해 에스컬레이터에 올라탔다. 이민 가는지 큰 트렁크에 거대한 가방을 얹은 짐꾸러미를 붙들고 에스컬레이터에 탄 노부부의 모습이 눈앞에 보였다. 에스컬레이터가 살짝 덜컹거릴 때마다 짐은 크게 요동쳤고, 할아버지, 할머니께서는 보채는 손녀 달래듯 짐을 끌어안고 위태롭게 위로 이동하는 중이었다.
'저거 나한테 굴러 떨어지면 죽겠....' 이러한 생각이 끝나기도 전에 ‘와당 탕탕!’ 소리와 함께 함께 노부부의 트렁크와 가방이 나를 향해 쏟아져 내려왔다. 나는 거대한 가방들과 함께 까마득한 아래로 굴러 떨어지는 참사를 막기 위해 그 커다란 짐들을 온몸으로 막아내는 초인적인 힘을 발휘하였다. 덕분에 천국 대신 공항 출국장을 밟을 수 있었다.
미안함에 어쩔 줄 몰라하는 노부부를 보낸 후, 다리에 힘이 풀려 자리에 털썩 주저앉았다. 상황에 어울리지 않게 배고픔이 찾아왔다. 배낭 속에 있는 복숭아 생각이 났다. 지금 먹지 않으면 탑승 수속 과정에서 뺏길 텐데.... 캐리어 깊은 곳에서 작은 여행용 나이프를 찾아 꺼냈다. 물컹물컹한 복숭아 껍질을 깎아서 한 입 베어 물었다. 복숭아 과즙과 함께 온종일, 아니 누군가를 찾아 프랑스를 헤맸던 몇 주 동안 참고 있던 눈물이 터져 나왔다.
이토록 두렵고 정신없는 에피소드는 나를 한국으로 등 떠밀듯 돌려보냈다. 이러한 사건들이 아니었다면, 미련에 못 이겨 프랑스를 떠나지 못하고 헤매고 다녔을 것이다. 꽤 오랫동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