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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허니베리 Jul 17. 2023

새 친구와 감자 뇨끼

상생의 레시피

 얼마 전부터 요리학원에 다니고 있다. 학원에서 배우는 즐거움도 크지만, 동갑내기 수강생을 만나 친구가 된 것도 예상치 못한 수확이다. 또래보다 한참 늦은 결혼과 육아로 옛 친구들과 자연스레 거리가 생겨버린 지금, 새로운 친구의 등장이 반갑다.  




 학원에서는 하루에 세 가지 요리를 배우는데 오늘의 첫 요리는 감자 뇨끼 . 감자 뇨끼를 만든 뒤 냉장고에서 잠자 있 야채를 꺼내 그 위에 올리고 기호에 따라 발사믹 글레이즈 같은 소스를 뿌리면 된다. 참고로, 크림소스를 만들어서 감자뇨끼와 버무리면 '크림감자뇨끼'가 된다.


 감자 뇨끼 만드는 방법은 다음과 같다. 먼저, 감자를 는다. 감자가 뜨거울 때 버터를 넣고 으깬 다음, 밀가루, 계란 노른자, 파마산치즈 가루, 소금, 후추 등을 넣어 반죽한다. 완성된 반죽은 동그랗게 모양을 는다. 끓는 물에 소금 약간과 반죽을 넣은 뒤, 반죽이 물에 동동 뜨면 건져낸다. 이것을 다시 한번 프라이팬에 구우면 감자 뇨끼 완성!




 첫 번째 과정인 감자를 삶을 때, 완전히 익히지 말자. 열을 가하는 과정이 두 차례 남아있고, 감자의 작은 덩어리가 씹히면 식감이 좋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게 말처럼 쉽지 않다. 나보다 먼저 감자를 끓는 물에서 꺼낸 친구가 감자가 너무 덜 익어서 으깨지지 않는다고 투덜댔다. 나는 이 소리를 듣고서 불 끄기를 미루다가 감자를 너무 푹 익혀버리고 말았다.


 친구의 반죽은 감자 덩어리가 너무 커서 엉겨 붙지 않는 반면, 내 감자는 진흙처럼 으스러져서 반죽이 질어졌다. 반죽과 씨름하며 투덜대던 친구가 반죽이 담긴 그릇을 들고 내 앞을 지나갔다. 실망스러운 얼굴로 ‘망했네. 안 되겠다.’라고 중얼거리는 걸로 보아 아무래도 반죽을 버리려는 듯했다. 급히 친구를 불러 세웠다. 친구라고는 하지만, 나이 들어 만난 상대라 말은 쉽사리 놓지 못한다.


 “혹시 그거 버리려고요?”

 “망해서요.”

 “이리 줘 봐요. 내가 살릴 수 있을 것 같아요.”


 자포자기하듯 친구가 내민 반죽을 받아 들었다. 나는 내 반죽과 친구의 반죽을 섞은 뒤, 밀가루로 점성을 조절하여 치대기 시작했다. 반죽을 주무르면서 어릴 적 엄마와 함께 수제비 반죽하던 감각이 손끝에 남아있다는 사실을 문득 깨달았다. 팔과 손에 통증이 느껴지기 시작할 무렵, 모양 잡기에 알맞은 반죽이 완성됐다. 친구의 설익힌 감자 덩어리가 내 반죽에 섞여서 ‘점성 있으면서도 감자의 아삭아삭한 식감이 살아있는’ 상태가 되었다. 강사가 요구했던 바로 그 반죽이다. 친구에게 반죽을 뚝 떼어줬다. 요리를 포기할 뻔했던 친구는 반죽을 받아 들고는 신기해하고 고마워했다.


 손, 도마, 칼에 덧가루를 뿌리고 찰흙 놀이하듯 반죽을 긴 원통 모양으로 늘린 뒤 칼로 숭덩숭덩 썰었다. 동글동글한 반죽을 포크로 꾹꾹 눌러 모양을 내고 삶고 건져 노릇노릇하게 기름으로 구워냈다.


 완성된 감자 뇨끼를 맛봤다. 친구도 자기 감자 뇨끼를 한 입 베어 물었다.
 “간장 푹 찍어 먹으면서 막걸리 한 잔 마시면 딱 좋겠네요.”
 말을 듣고 보니 내게는 이태리 수제비로 여겨지는 감자 뇨끼가 이 친구에게는 이태리 감자전으로 다가왔나 보다. 어쨌거나, 실패할 뻔했던 두 사람의 반죽이 합쳐져서 완벽한 요리로 변모했다. 요리를 배우고는 있으나 학원 문을 나서는 순간, 레시피는 고사하고 오늘 무슨 요리를 했는지조차 잊곤 한다. 하지만 오늘의 요리에는 이야기가 깃들었으니 만드는 방법과 과정이 쉽사리 잊히지 않을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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