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가 떠난 뒤로 내가 머물던 지역에서 심각한 무력 충돌이 일어났고, 나 역시 거주하던 곳에서 탈출했다. 스트레스 때문이었는지 심한 복통을 느낀 나는 수도에 도착하자마자 큰 병원에 입원했다. 검사를 받느라 딱딱한 침대에 불편한 자세로 오랜 시간 누워있으니 가슴팍에 심하게 담이 결렸다.
Oh, my God! What's ‘담’ in English?
당시는 스마트폰도 없던 때였다. 한참을 고민하다가 의료진을 붙잡고 내 증상에 관해 설명하기 시작했다.
- 나, 가슴이 아파.
- 정확히 어느 부위?
- 여기 심장
- 어떻게 아픈데?
- 숨 쉴 때마다 쥐어짜는 것 같아. 누가 때리는 것 같기도 하고, 찌르는 것 같기도 해.
- 어느 정도로 아픈데?
- 숨쉬기가 어려울 만큼.
짧은 영어이긴 하나, 이 정도면 담 결리는 현상을 거의 완벽하게 설명한 거 아닌가?
그런데 갑자기 의료진들이 벌떼같이 몰려들더니 눈 깜짝할 새에 가위로 상의를 찢어버리고서는 심장 근처에 차가운 뭔가를 붙이기 시작했다.
"왓 아 유 두잉 나우?"
당황해서 중학교 시절 배운문장을 크게외쳐댔지만, 그것도 얼마 가지 못했다. 그들이 입에 인공호흡기를 씌워버렸기 때문이다. 나는 바퀴 달린 침대에 옮겨져 어디론가 끌려간 뒤 삼 면이 투명한 유리방 안에 갇혀버렸다. 가뜩이나 담 와서 죽을 것 같은데 급작스럽게 일어난 사건에 기가 막혀 진짜 죽을 지경이었다. 그러나 우리 선조들은 말했다. 타이거 굴에 들어가도 정신만 차리면 살 수 있다고. 유리방을 찬찬히 둘러보았다. 출입문 근처에 ICU(intensive care unit)란 글자가 떡하니 붙어있었다. 아, 이곳, 영화에서 본 적이 있다. 비운의 여주인공이 죽음을 맞이하던.... 담 결려서 '중환자 집중치료실‘에 들어간 사람은 아마도 인류역사를 통틀어서 나밖에 없을 것이다.
의료진이 찾아올 때마다 나는 커뮤니케이션 과정에서 오해가 생긴 것 같으니 제발 좀 꺼내달라고 애원했다. 무엇보다도, 그 방에서는 음식물 섭취를 제한하고 있어 배고픔에 진짜 죽을 것만 같았다. 하지만 내 호소는 묵살되었고 담 결림과 뱃가죽이 등에 붙는 이중고 속에서 수많은 검사가 진행됐다. 꼬박 이틀이 지나고 아사하기 직전, 한 여자가 나타나 내 얼굴을 내려다보며 씩 미소 지었다. 나는 힘없이 누운 채 희미해져 가는 의식을 부여잡으며 생각했다.
'저이는 천사일까, 악마일까?'
그때, 여자가 자신의 정체를 밝혔다.
“저는 심장 전문의입니다. 당신, 엄청 튼튼한 심장을 가졌네요. 100살까지도 끄떡없겠어요.”
그녀의 선언으로 인해 나는 유리방에서 빠져나올 수 있었다. 그녀는 정녕 천사였다.
참, 내 증상은 영어로 ‘muscle pain’이었다나 뭐라나. 먼 훗날 알게 된 건데, 내가 영어로 설명한 것이 심근경색 증상과 유사하여 아마도 의료진이 스텐트 시술 준비하고 있었을 거라고 한다. 영어 공부에 게을리하는 자녀가 있다면 내 글을 보여주기를 바란다. 외국어 능력, 그중에서도 어휘력은 강제입원, 엉뚱한 시술, 아사의 위기 등 여러 위험으로부터 자신을 지킬 수 있다. 요새는 스마트폰과 번역 앱이 있어서 괜찮으려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