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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허니베리 Jul 09. 2023

오물 처리

어른과 오물의 상관관계


 아이 담임선생님께 전화가 왔다. 아이가 초등학교에 입학한 지 몇 개월 지났지만 이렇게 선생님에게 전화가 걸려온 적은 한 번도 없었다. 무슨 일일까? 심장이 쿵쾅거렸다.

 “여보세요, OO 엄마시지요?”

 선생님의 말투가 침착하고 차분한 것으로 보아 큰일은 아닐 거라고 스스로를 다독였다. 선생님께서는 아이가 대변 실수를 했다고 다. 기저귀 뗀 이후로 실수한 적이 없었는데 탈이 났구나 싶었다. 지금 근무 중이라 외할머니께서 부탁드리겠다고 말씀드리고 전화를 끊었다.

 

 친정엄마에게 전화를 걸었다. 벨이 한참을 울린 뒤에야 엄마가 전화를 받았다. 목소리 뒤로 지하철 소음이 들려왔다. 어디인지 여쭤보니 병원에 가는 중이라고 했다. 엄마는 관리가 필요한 질환이 있는데 또 안 좋아졌나 보다. 내가 신경 쓸까 봐 숨긴 게 틀림없다. 염려스러운 마음과는 반대로 버럭 짜증 냈다.

“오늘 병원 가시는 거 저한테도 미리 말씀해 주셨어야지요.

엄마가 홀로 병원 오가다가 어려움 겪을까 봐 걱정스러운 마음 위에 아이 문제는 어떻게 해결하나 심란 마음까지 얹어져서 엄마 마음까지 불편하게 만들 말았다.




 복무 처리를 하고, 주차장을 향해 뛰었다. 처음 겪는 상황에 당황하고 수치심을 느낄 아이 생각에 운전대를 쥔 손에서 땀이 났다. 학교에 도착했다고 선생님께 연락하자 아이가 커다란 쇼핑백을 들고 걸어 나왔다. 나를 보고도 달리지 않고 느릿느릿 쭈뼛쭈뼛 다가오는 모습에 코끝이 찡해졌다. 두 팔을 벌리고 아이를 향해 뛰었다. 아이에게 가까이 다가서자 코를 찌를 듯한 냄새가 풍겨 나왔다. 조그마한 얼굴을 들여다보니 안경 너머로 눈물 자국이 가득하다. 아가, 얼마나 속상했을까... 숨을 참고 아이를 꼭 끌어안으며 손에 든 옷 봉투를 뺏어 들었다. 윽! 뱃속에서 무슨 일이 일어났길래 재래식 화장실 냄새가 풀풀 나는 것일까.


 오들오들 떠는 아이를 차에 태워 집으로 데려갔다. 화장실에서 옷을 벗기고 아이를 씻겼다. 선생님께서 꼼꼼하게 싸준 지퍼백을  펼쳐보니 바지와 속옷은 물론이고 티셔츠와 양말까지 엉망진창이었다. 나도 모르게 헛구역질이 나왔다. 선생님께 죄송한 마음이 더욱 커졌다. 아이들 살피느라 가뜩이나 바빴을 선생님도 몹시 난감했을 것이다. 더러워진 옷을 손빨래했다. 하필 시어머님께서 사준 새 바지였기에 버릴 수도 없었다.  끊임없이 걸려 오는 전화와 날아오는 이메일로 업무 처리를 하며 손빨래한 옷을 삶고, 아이 밥을 해먹이고, 화장실 청소까지 하고 나니 벌써 네 시간이 흘렀다. 숨이 턱턱 막혀왔다.


 변으로 범벅된 화장실을 청소하다가 엄마가 떠올랐다. 청소를 마치고 엄마에게 전화를 걸었다. 병원 검진 결과, 건강 상태가 나빠지지 않았다고 했다. 몇 시간 동안 지속되던 긴장이 풀리는 듯했다.




 엄마는 치매 증상을 보이시는 머니를 몇 년 간이나 모시고 살았다. 그무렵 나도 잠시 한집에서 지는데, 엄마가 잠깐 외출하면 할머니 온 집에 변을 발라놓았다. 나는 이를 발견하는 즉시 얼른 치우고 청소했다. 아버지는 아직도 가끔 이 일에 관해 고마움을 표현한다. 벌써 십 년도 훌쩍 지난 옛일인데도 말이다. 하지만 당시, 사건의 당사자인 할머니께서는 고무장갑을 끼고 청소하는 내게 달려들며 '아가씨가 내 물건을 훔치고 있다'며 욕했다.

 

 오늘은 아이의 변을 치웠지만, 아이는 이것이 고마운 일인지를 알지 못한다. 시간이 흐르면 이 사건을 망각할 가능성이 크다. 사실, 그랬으면 좋겠다. 혹시 기억한다고 하더라도 본인 입장에서 부끄러웠던 경험이 떠오르지, 엄마의 수고를 헤아리기 어려울 것이다.




 사람은 탄생부터 죽음을 맞이하기까지 끊임없이 배설하며 살아간다. 살다 보면  누구든지 자신의 오물을 타인이 처리해 주기도 하고, 타인의 오물을 대신해서 처리해 주는 시기가  있다. 나이 또는 병으로 인해서 말이다. 그런데 사람은 과연 항문과 생식기로만 배설하는가. 그렇지 않다. 입과 행동을 통해서도 끊임없이 오물을  쏟아낸다. 자신이 쏟아내는 오물을 스스로 처리하지 못하더라도 삶을 영위하고 있다는 것은 누군가가 그것들을 치워주고 있다는 뜻이다. 이에 관해 감사의 표현을 하는 이도 있지만, 고마움에 관해 깨닫지 못하는 이도 있고, 간혹 감사 인사를 하는 대신 욕하는 이도 있다. 나 역시 이 세 가반응을 다 보이며 살고 있을 것이다.


 한 해 한 해 나이가 들고, 짊어져야 할 책임 보따리가 커지며 어른이 무엇일까에 관해 고민한다. 오늘 하나의 답을 얻었다. 힘닿는 한 주변에 쏟아진 오물을 묵묵히 치우는 한편, 나의 오물을 치워주고 있을 이들에게 감사의 표시할 줄 아는 것, 그것이 어른이 아닐까 싶다.











이미지 출처: Flaticon(created by fjstudi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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