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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허니베리 Aug 21. 2023

어항이 사라졌다!

+구피 실종 사건


 


 퇴근하고 집에 들어왔는데 오늘따라 집안이 휑한 느낌이 들었다. 아이 장난감이 흐트러져 있는 넓지 않은 집이라 이러한 수식어가 어색한데 말이다. 하루 있었던 일에 관해 종알대면서 내 뒤를 졸졸 따라다니던 아이가 갑자기 크게 소리쳤다.

앗, 어항이 사라졌다!


 아이의 외침에 나도 걸음을 멈춰 구피 세 마리의 집이 있던 자리를 바라보았다. 어항이 있던 곳은 텅 비어있었다. 아이의 얼굴이 창백해지더니 곧이어 ‘으앙!’하고 울음을 터뜨렸다.
“내 구피들! 구피랑 어항 어디 갔어?”

 친정엄마에게 전화를 거는 손가락이 떨렸다. 엄마는 내가 출근한 뒤, 아이를 학교에 데려다주고 내가 눈치채지 못할 거라 여겨질 정도만큼 사부작사부작 도움의 손길을 주고 간다. 딸 입장에는 아이 돌봐주는 친정엄마가 집안일까지 돕는 게 싫은데, 엄마 입장에서는 딸이 살림에 손끝 하나 손대지 못하게 하면 서운한 면도 있나 보다. 그걸 알고부터는 작은 일들은 모르는 체하기도 한다. 그런데 이번 건은 티가 나도 너무 심하게 난다. 청소하려다가 깬 건 아지, 행여 다치기라도 한 건 아닌지 염려됐다.

 “엄마, 혹시 어항 어떻게 된 건지 아세요?”
 “버렸다.”
 “네? 청소하시다가 깨져서 버리신 거죠?”
 “아니, 더러워서 버렸다.”
엄마의 입에서 나오는 뜻밖의 단호한 말이 화살이 되어 내게 날아왔다.

 “왜요? 구피는 어떻게 하시고요?”
 “너는 왜냐는 말이 나오니? 물이 얼마나 까맣고 냄새가 났는데... 더는 그냥 둘 수 없었다.”
 “더러운 건 아는데 여유가 안 돼서 청소를 못 하고 있었어요. 곧 청소하려고 했는데... 구피 세 마리가 살아있었는데... 우리 가족에게 정말 소중한 생명이었는데...”
나는 충격을 강하게 표현하고자 일부러 ‘우리 가족’이라는 말로 엄마와 경계선을 긋고 말았다.
엄마는 서운하다 못해 엽기까지 한 눈치였다.

 아이에게는 구피가 청소 도중 떠내려갔다고 했지만, 몇 시간 동안 서럽게 통곡하는 아이를 달래느라 폭풍 같은 시간을 보냈다. 아이가 잠든 후 홀로 고요히 앉아 구피와 함께한 시간을 떠올렸다.



 작년 초, 일곱 살 된 아이가 동물을 기르고 싶다는 열망을 드러냈을 때 우리 부부는 ‘드디어 올 것이 왔다’라고 생각했다. 온 가족이 머리를 맞대고 의견을 나눴다. 강아지는 손이 많이 가고, 햄스터는 잘 도망가고, 고슴도치는 냄새가 난다. 장수풍뎅이는 징그럽고, 새는 시끄럽고, 고양이는 털이 날린다. 따라서 우리 가족의 첫 반려동물로 관리하는 데 가장 신경이 덜 쓰일 것 같은 어류를 들이기로 했다. 어항 청소라는 귀찮은 일이 있을 줄은 생각도 못 하고 말이다.

 남편과 아들 그리고 나, 우리 셋은 어종과 어항을 고르기 위해 시장, 마트, 수족관 등을 돌아다니며 조사했다. 거창한 탐방이 무색하게 30cm 길이의 아담한 어항과 형형색색의 구피 여섯 마리를 사 왔다. 아들이 고른 화려한 색의 자갈을 깔아주고, 버섯, 해초 동굴로 정성껏 집을 꾸며주었다. 아이와 함께 구피의 특징을 관찰한 뒤 각각 이름을 지어주고 그 어느 때보다 부자가 된 느낌으로 잠을 청했다. 하지만, 다음날 구피들은 모조리 흰 배를 드러낸 채 죽어있었고, 죽음이라는 것을 처음 경험한 아이는 일주일간을 서럽게 울며 지냈다.

 빈집에 새 식구를 들여 주신 이는 엄마였다. 친구네 구피들이 어찌나 번식을 잘하는지 처치 곤란이라고 한다며 구피 열두 마리를 받아왔다. 엄마가 가져온 구피들을 우리가 샀던 화려하고 아름다웠던 녀석들과 달리, 어린 시절 교실에서 길렀던 금붕어 같은 주황색에, 몸은 냇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송사리처럼 밋밋하기 짝이 없었다. (알고 보니, 구피는 실제 송사릿과였다.) 처음에는 녀석들이 우리를 훌쩍 떠날까 봐 두려움에 이름도 지어주지 못하다가 차차 시간이 흐르며 한 마리 한 마리 이름을 짓기 시작했다. 어느 날, 잔뜩 배가 부풀어 올라 있던 암컷이 치어를 낳았다. 점같이 작은 치어가 성장하는 과정을 관찰하는 것은 아이뿐 아니라 나에게도 생활의 큰 활력소였다. 한동안 어항을 식탁 한쪽에 올려놓고 지냈는데, 반찬으로 멸치를 꺼낼 때면 구피에게 미안한 마음이 들어 종이로 어항을 가리기도 했다. 남편은 온도계, 자동으로 먹이 주는 기계, 수족관 청소를 위한 도구 등 각종 장비를 장만하고는 구피에게 영양제까지 먹이며 지극정성으로 돌보았다.

 하지만 구피의 수명은 1~2년 정도로 짧은 편이다. 공교롭게도 암컷이 하나둘 떠나기 시작하더니 결국 수컷만 세 마리 남다. 따라서 더 이상의 번식은 기대할 수 없게 되었다.

 허리까지 굽은 할아버지 구피 세 마리는 굴속에 숨어 낮이고 밤이고 잠만 잤다. 나는 은근히 그들이 귀찮아지기 시작했다. 청소하지 않아 점점 까매지는 어항을 바라보면서도, 먹이통에 먹이가 거의 남아있지 않은 것을 보면서도 방치하며, 암묵적으로 남편에게 처리를 떠맡겼다. 얼마 전에는 시꺼먼 어항 속에서 구피가 보이지 않길래, “에고, 녀석들이 다 죽었나?”라고 하자, 아들이 “내가 아침, 저녁으로 지켜보고 있는데, 죽지 않았어!”라고 울먹이며 말했다. 구피들은 아들의 목소리에 힘이 났는지 동굴 속에서, 버섯 아래에서, 해초 사이에서 쓱 나와 입을 뻐끔거렸다. 이러한 내가 엄마에게는 구피를 버렸다고 그렇게 심통을 부린 것이었다. 살아있는 생명체의 죽음을 바라며 방치한 사람이, 살아있는 생명체를 버렸다고 펄쩍 뛰다니....

 문제는, 퇴근한 남편 역시 사라진 어항 사건에 충격을 받았다는 것이었다. 그의 모습에 당황한 나는 ‘엄마가 어항 청소하시던 중, 구피들이 하수구로 빨려 들어갔다’고 둘러댔다. 구피를 애지중지했던 남편은 “이번 주말에는 청소하려 했는데... 조금만 기다려 주시지....”라며 말끝을 흐렸다.




다음 날 아침, 엄마에게 소곤소곤 부탁했다.

“엄마, OO랑 OO 아빠한테는 청소하다가 구피를 놓친 걸로 말해놨으니까, 엄마도 그렇게 알고 계세요.” 여린 남자들이 받게 될 상처를 방지하기 위함이었다.

엄마는 어이없다는 표정으로 나를 바라봤다.

 “너희들은 눈도, 코도 없니? 그렇게 더럽고 냄새가 나는데 그걸 치워야지 언제까지 그대로 두려고 했는데?”

엄마의 반응에 마음이 쨍그랑 깨지며 속에 담겨있던, 버린 어항 속 물만큼이나 시꺼먼 말이 콸콸 쏟아져 나왔다.

 “우리가 청소하려고 했단 말이야. 나도, OO 아빠도 바빴던 거 뻔히 아시면서, 말씀이라도 주셨으면 아무리 힘들어도 우리가 청소했지! 왜 우리 걸 마음대로 하시냐고요!”

 돌과 물이 잔뜩 들어 무거운 어항을 들어 옮기고 치웠을 엄마에 대한 고마움과 안쓰러움보다도 ‘내 영역’에 대한 침범이 화나고 속상했다. 어젯밤 떠올렸던 나의 태도는 금세 잊은 채, 작은 생명에 대한 모진 태도에, 그 생명을 사랑하는 이들을 존중하지 않는 모습에도 심장이 방망이질 쳤다.



  출근하자, 동료가 물었다. 눈치 빠르고 통찰력 있는 이였다.
 “선생님, 집에 뭔 일 있으셨나 봐요.”
 “네, 어머니께서 더럽다고 어항을 버리셨어요. 구피도 세 마리나 들어있었는데 말이에요.”
 어투에 속상한 맘을 꾹꾹 눌러 담아 사건에 관해 언급했다.
 “어머니께서 딸 도와주신다고 그러셨구먼요. 노인네가 쬐깐한 물고기 버린 것 같고 속상해하지 말아요. 괜찮아, 괜찮아."
 어려운 일이 생길 때마다 이 선생은 “괜찮아, 괜찮아.”라고 한다. 그 말을 들을 때마다 내가 크게 생각했던 문제들이 별일 아니었음을 깨닫게 된다. 그리고 ‘진짜 괜찮은데?’ 또는 ‘괜찮아질 거야.’라고 마음을 다잡게 된다.



 퇴근 후 엄마와 마주쳤다. 푸석해진 얼굴서로가 눈을 제대로 추지 못했다. 내가 먼저 말을 꺼냈다. 엄마의 노고에 대해서는 감사의 표현도 하지 않고, 맘 상하게 한 것에 대해 죄송하다고. 그리고 엄마를 바라보았다. 내심 ‘나도 미안하다, 너한테 묻기라도 해야 했는데....’와 같은 엄마의 반응을 기대했나 보다. 하지만 여전히 딱딱한 표정으로 서 있는 엄마를 보자, 나도 모르게 그만 몹쓸 사족을 붙이고야 말았다.
“동생 말이야. 엄마는 동생이 아빠 닮아서 미안하다는 표현 잘 안 한다고 하셨잖아. 아닌 것 같아. 엄마 닮아 그런 거 같아.”
말을 내뱉고서  아차, 싶었다.

 엄마가 아까보다 더 굳은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이번 주말에 너희 시아버님 한국 들어오신다고 하지 않았니. 곧이어 시어머님도 오실 테고. 어항 보시면 네게 또 한 소리 하실 것 같더라. 나도 너희를 제대로 돌봐주지 않는다고 생각하실 테고. 요새 이 서방은 계속 새벽에 들어온다면서? 앞으로도 너 혼자서는 청소하기 벅찰 것 같아서 치운 거다.”

 엄마의 말씀을 듣고 나는 얼음처럼 꽁꽁 얼어붙어 꼼짝할 수가 없었다.
 한참을 가만히 서 있다가 무겁게 들러붙은 입을 간신히  뗐다.
 “엄마, 그런 줄도 모르고... 진작 말씀을 하시지....”




 어항이 놓여있던 자리를 살펴본다. 아침까지만 해도 썰렁해 보이던 곳이 따뜻한 공기로 채워진 느낌이다. 어항에는 담을 수 없는 그 무언가가 내 주변 가득 넘실댄다. 투박하고 거칠지만, 나의 존재를 감싸주고 어루만지는 그 무언가가. 스스로 돌아볼 때 족한 구석 많은 나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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