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허니스푼 Jul 10. 2021

여름방학 독해 프로젝트

아이의 공부 계획은 아이의 것인가, 엄마의 것인가?

미국 학생들이 1년에 한 번씩 치르는 MAP이라는 학력평가시험이 있다. 4학년에는 상위 10퍼센트 안에 들었던 첫째의 독해 실력이 5학년에는 20퍼센트, 6학년인 올해는 30퍼센트 대로 떨어졌다. 본인도 약간 놀란 것 같았지만 충격은 며칠 지나면 잊혀지고 본인은 다시 아무렇지도 않은 듯 한데, 나는 이걸 그대로 둘 수가 없다.


지금 성적이 낮은 것은 괜찮다. 그렇지만 이대로 둔다면 나중에 독해실력이 저절로 오를 리가 없다. 그리고 다른 과목과 달리 독해는 빠른 시간에 실력을 올릴 수 없고 학원이나 과외의 도움도 받기 어려운 데다가, 한해 한해 갈수록 아이가 책을 길게 오래 읽을 수 있는 시간은 점점 더 부족해질 테니 말이다.


그래서 여름방학 10주 동안 딸의 독해력 향상에 집중하기로 했다. 딸의 약한 독해실력에는 세 가지 문제가 있다. (1) 긴 글을 끝까지 집중력을 유지해서 읽지 못한다 (2) 큰 그림만 이해하고 디테일을 놓친다 (3) 배경지식이 부족하다. 결국 양, 질, 배경지식 세 가지가 모두 약하다. 특히 배경지식이 부족한 건 학교 영어시간에는 티가 잘 안 나는데, 아이가 다양한 논픽션 지문을 읽는 학력평가시험에 약하고 영어보다도 사회과목을 어려워하며 흥미를 금세 잃는다는 걸 알게 됐다.


내가 어렸을 때부터 읽기 쓰기 말하기를 다 잘했고 외국어랑 사회과목은 취미이자 특기였으며 전직 미국변호사인데, 내 딸이 이걸 다 싫어하고 못한다니 마음 한구석에서는 인정하기가 참 어려웠다.


어쨌든, 배경지식와 독해의 양과 질을 모두 보충하기 위해 올해 여름에는 다음과 같은 계획을 세웠다.


1. 배경지식: 주니어용 역사책 <The Story of the World> (총 4권) 시리즈를 하루에 한 챕터씩 읽는다. 이 책은 이미 작년 여름이랑 겨울에 방학마다 조금씩 읽어 오던 참이다. 한 챕터는 6-8 페이지 정도로 짧지만 내용의 밀도가 높아서 우리 아이 수준에는 하루 한 챕터 이상은 힘들다고 판단했다. 이 내용을 다 알으라는 건 아니다. 이런 사건과 인명과 지명이 있다는 것을 아이가 한 번이라도 접하고 익숙해지기를 바랐다.


2. 독해의 질에반 무어 출판사의 <Daily Reading Comprehension> (7학년) 문제집을 하루에 지문 3개씩 읽는다. 문제집은 하루에 지문 1개씩 30주 동안 끝내는 구성으로 되어 있는데, 막상 보니 지문이 너무 짧아서 우리는 지문 3개씩 방학 10주 동안 끝내기로 했다. 생각보다 내용이 쉽고 지문도 짧았지만, 그래도 문제풀이를 염두에 둔 독해연습 경험이 없는 아이에게는 이 정도라도 해보는 게 훨씬 낫지 않을까 기대했다.


3. 독해의 양방학 전에 미리 선생님과 친구들에게 추천을 받아 이런저런 책들을 빌려오게 했다. 내가 검색을 통해 골라서 사다 놓은 책들도 있다. 이 중에서 장르를 바꿔가며 일주일에 한 권씩 읽는다. 원래 계획은 하루에 한 시간씩 읽는 것이었는데, 시간으로 독서를 측량하기 시작하면 아이가 과연 얼마나 적극적으로 머리를 쓰는지 알 수 없어서 일주일에 한 권을 자기 리듬대로 읽는 것으로 바꿨다.




그렇게 6주가 지났다. 아이는 아슬아슬하게 밀리지 않고 잘 따라오고 있다. 사실은 내가 끌고 간다. 밀린 건 주말에 끝내고, 주말에 끝내지 못할 만큼 많이 밀리는 일은 아예 생기지 않도록 매일 확인한다.


막상 해보니까 생각보다 내 간섭이 더 많이 필요했다. 아이가 아직 다 못 끝낸 과제는 하루종일 내 머릿속에 박혀 있다. 아이가 하기 싫어 머리가 안 굴러가는 날에는 어르고 달래며 같이 읽는다. 혼자 읽었을 때도 꼼꼼히 제대로 했는지 결과물을 확인하거나 답 맞추고 해설 읽는 걸 같이 한다. 아이가 읽는 책을 나도 읽고서 독서퀴즈를 내고 내용에 대해 이야기를 나눈다.


그런데 할수록 회의감이 든다. 아이는 시키니까 읽으면서도 자기가 이걸 왜 하는지 모르는 것 같다. 그걸 보면서 나도, 내가 이렇게 하는게 도대체 잘 하는 일인지 모르겠다. 나는 하루종일 아이가 그날의 과제를 다 끝내기만 기다리면서 시간을 보내고 있다.




6학년 딸을 공부시키면서 느낀다. 공부머리는 사람마다 다르다는 거. 키와 체형이 타고나듯이, 특히 신체적인 성장의 시기도 사람마다 다르듯이. 공부도 마찬가지다.


아이는 성실해서 학교에서 가르치는 내용을 이해하고 숙제는 혼자서 다 해간다. 그러나 미국 학교에서 요구하는 과제나 시험의 수준은 한국보다 매우 낮아서 아이가 숙제 다 해가는 정도만 보고 마음 편할 한국 부모는 별로 없을 거다. 물론, 공부(study)와 배움(learning)을 별개의 것으로 본다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예를 들어, 올해 햄스터를 키우기 시작한 아이는 유튜브를 통해 햄스터의 생태와 키우는 법을 공부했고, 좋은 환경을 만들어주기 위해 집안에 있는 각종 재료로 햄스터 놀이동산과 장난감을 만들었다. 더 좋은 햄스터 용품과 영양식을 사느라 온라인 쇼핑에 반 년치 용돈을 탕진한 후에 과소비란 무엇인가를 깨닫기까지 했다. 이렇게 아이는 스스로의 힘으로 다양한 경험을 하고 많은 배움을 얻었다.


그런데 그것과는 별개로, 수학은 귀찮고 읽기는 지루해서 일정 시간 책상에 앉아 있는 걸 힘들어한다. 아이의 성향을 바꿀 수는 없다. 다만 그걸 '타고났으니까'라는 이유로 그대로 두어야 하는지, 아니면 부족한 부분은 엄마가 보충해준다는 각오로 내가 나서야 하는지 자주 고민한다.


나는 역사책을 읽으면 머릿속에 내용의 지도가 그려진다. 기존에 알고 있던 사건과 이름 등이 이리저리 연결되면서 이야기가 완성되고 다음 이야기가 궁금해진다. 나는 좋은 역사책을 찾으면 아이에게도 그렇게 머릿속에 반짝 불이 켜지는 순간이 올 줄 알았다. 그런데 이 아이의 머릿속에는 전혀 지도가 그려지지 않는 것 같다. 사건과 사람의 이름들이 키워드가 되어 이야기가 만들어지지 않는 것 같다. 역사책이 재미있을 리가 없다.


역사책 뿐 아니라 대부분의 책을 그다지 재미있어 하지 않는 것 같다. 좋은 이야기책을 찾으면 아이를 책에 푹 빠지게 할 수 있을 줄 알았다. 그런데 아무리 다양한 책을 들이밀어 봐도, 아이는 글을 읽는 것에 즐거움을 느끼지 않는 것 같다. 이 아이는 이런 타입인가 보다. 책이 아닌 방법으로 배우는 아이. 인생은 그렇게 다양한 방법으로 배우면서 살아도 좋을 것이다. 그러나 적극적으로 글을 읽는 법을 익히지 못하면 기존 교육제도 안에서 공부를 하고 시험을 보기에는 불리할 것이 너무 뻔하니 나는 다시 고민한다.




지난 6주 동안 내 엔진으로 아이들을 돌렸다. 내 에너지로 아이들을 궤도에 올려 놓으면 어느 때부터는 힘을 받아 자기들의 엔진으로 굴러갈 줄 알았다. 그런데 전혀 아니었다. 언제라도 내가 손을 놓으면 아이들도 멈췄다. 독서도, 수학도, 피아노도 다 마찬가지였다.


나는 자식을 낳기 전에는, 그리고 아이를 키우면서도, 언제나 반 발짝 뒤에 서 있는 부모가 되고 싶었다. 글은 커녕 숫자도 안 가르치고 영어도 가르치지 않은 채 미국 학교에 보냈다. 그런데 어느 때부터인가 계속 그렇게 놔두면서 아이가 혼자 할 날을 기다리는 것도 허황되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 마음을 정리해 본다. 앞서가며 다그치고 싶지는 않은데 아이가 혼자 하는 날까지 가만히 기다리기만 할 수도 없다. 그러니 나는 앞으로의 4주도 내 엔진으로 아이를 움직일 각오를 해야 한다. 하기 싫으면 하지 말으라며 놓아 버릴 수는 없는 노릇이다. 벌써 중학생인데. 그렇지만 내가 이렇게 하면 아이는 저렇게 하겠지 라는 기대를 버리기로 마음먹었다. 이게 어떤 마음인지 안다. 다이어트하고 외국어 공부할 때의 마음이다. 내가 하는 일의 성과가 빠른 시간 안에 나타나지 않는다. 욕심이 앞서 과하게 하면 일찍 지쳐 포기하게 된다.


금방 결과를 보겠다는 기대 없이, 내가 내 마음에 속아서 지치지 않도록 아주 현실적인 스케줄로 4주만 더 해보기로 했다. 지난 6주 동안 매일 하던 수학은 이제 그만두기로 했다. 시리즈의 제3권을 끝내면 역사책도 그만 읽기로 했다. 다음 주부터 싱가포르의 거리두기도 많이 완화될 예정이니 아이들을 데리고 더 많이 놀러 다닐 것이다. 그렇지만 독해문제집과 책은 계속해서 읽힐 거다. 다만 내가 내 기대에 속아 서운해하지 않기로 했다.


그러니까 이 프로젝트는, 아이의 독해력에 대한 것이 아니다. 매일 제 시간에 밥을 차려주듯이, 매일 제 시간에 잠자리에 들게 하듯이, 매일 일정한 양의 글을 읽히겠다는 것이고, 그게 하루하루 잘 되고 잘 되지 않고에 일희일비하지 않겠다는 내 꾸준함에 대한 것이다.


작가의 이전글 싱가포르에서의 지난 2년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