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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허니스푼 Oct 29. 2021

엄마가 집을 비운 동안 (1)

아주 오랫만에 나홀로 휴가를 갖게 되었다.

한국행을 마치고 싱가포르에 돌아왔다. 1주일 동안 자가격리를 해야 하는데, 집에서도 화장실 딸린 안방에서 격리할 수 있었지만 오랫만에 집을 떠난 김에 푹 쉰다 치고 5성급 호텔에 투숙했다.


아이들을 두고 이렇게 길게 내가 집을 나가 있었던 것은 처음이다. 사정이 있어 집을 비운 적이 있지만 사흘을 넘긴 적은 없었다. 강제성을 띈 격리가 아니었다면 이번에도 할 수 없었을 것이다.

 

전자팔찌를 찬 채로 호텔방에 갇혀서 룸서비스와 배달음식을 시켜 먹었다. 친정집에서 20대에 썼던 다이어리와 플래너를 전부 들고 와서, 그 시절 좋아하던 노래들을 들으면서 죽 읽어봤다. 언제나 가장 좋았던 시절은 내가 아는 것보다 더 일찍 왔었고, 더 이상 좋은 시절은 없을 것 같았지만 그래도 또 다시 돌아오곤 했다. 그렇게 첫 사흘을 보냈다. 최은영의 소설 <밝은 밤>을 읽었고, 넷플릭스에서 영화 <써니>를 봤다.


다음 사흘은 드라마를 봤다. 넷플릭스 드라마를 보기 시작하니까 일상이 무너졌는데, 어차피 단조로운 일상이었어서 그래도 괜찮았다. 졸려서 더 이상 정신을 차릴 수 없을 때까지 넷플릭스를 보다가 시계를 보지 않고 잠들었고, 저절로 눈이 떠지는 시간에 일어났다. 활동량이 부족하니 식사량도 줄어서 음식은 하루에 두 끼만 먹었다. 16회를 완주한 드라마는 <어쩌다 발견한 하루>라는 사랑스러운 판타지 학원물이었는데, 호텔방에 격리된 상황이 아니라면 아마 절대 보지 않았을 드라마였다.


그렇게 혼자 있다 보니 가족을 뺀 내 인생은 텅 빈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가족 말고는 연락할 사람도 없고, 일상으로 돌아가서 굳이 만날 사람도, 하고 싶은 일도 거의 없다. 옛 일기를 보니 내가 가장 행복하고 즐거웠던 시절은 만날 사람이 많고 약속이 많을 때였다. 물론 20대 때 만큼 남녀불문 새로운 사람들을 끊임없이 만나고, 자주 보는 친구들과 커피를 마시고 영화를 보고 저녁을 먹고 그리고도 헤어지기 아쉬워서 또 커피를 마실 만큼 붙어다닐 수 없다는 건 안다. 그래도 지금은 너무 재미가 없다.


아이들을 키우면서 가정생활에 매몰된 탓도 있을 것이고, 이민과 해외이주를 반복하며 문화적, 사회적으로 단절된 탓도 있을 것이다. 직장을 다니지 않는 전업주부라서 더 그럴 수도 있겠다.


그동안 내가 직장을 다녔다면 사회적으로나 인간관계적으로 더 많이 자극받고 성장하고 재미있었을 거라는 환상이나 아쉬움은 별로 없다. 일단 전업을 하기 전에 몇 년 경험했던 내 워킹맘 생활이 그렇지 않았다. 일이 막 재미있는 것도 아니었고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며 경험하고 자극받을 기회도 별로 없었다. 가까이에서 남편을 보면 더 그렇다. 남편은 꽤 좋은 회사에서 그런대로 성공적인 커리어를 유지하고 있는데도, 남편의 일상과 회사생활을 보면 '내 기준에서' 재미있고 부러워 보이지는 않는다.


우리가 다닌 회사들이 유난히 단조로운 것이었을까? 아니면 미국 회사가 대체적으로 그런 것일까? 아니면 미국에선 이민자이고 싱가포르에선 외국인인 우리가 사회와 단절되어 있는 것일지도. 아니면 일과 가정생활 사이에서 숨가쁘게 왔다갔다 하려면 한국이었어도 지금과 마찬가지로 재미없게 살고 있었을지도 모르겠다.


결국은 무슨 생각을 어떻게 해도 돌고 돈다. 이 중에 한 가지라도 내가 바꿔볼 수 있는 것은 직장을 갖는 것 뿐인데, 그래야 하는 것일까? 직장을 다녔을 때 내 사회적 욕구가 충족되었던 것은 아니지만, 최소한 매우 바빠서 정신없이 시간이 가기는 했다. 물론 지금도 시간은 정신없이 가는데, 저녁이 되고 주말이 될 때마다, 도대체 내가 뭘 했는데 이렇게 시간이 흘러갔고 나는 피곤한가? 하고 의아할 뿐이다.


격리기간 동안 나는 내가 이렇게나 게으를 수 있는 최강 집순이라는 걸 알았다. 공부나 일, 집안일, 다른 사람을 돌보는 것 등 아무런 생산적인 일을 하지 않아도 하루는 쉬이 갔다. 그렇지만 그렇게 오래는 못 할 것 같다. 신체적으로나 사회적으로 새로운 자극이 없는 일상은, 영양공급이 끊긴 식물처럼 시들해져 갔다. 그리고 지금 내 생활에서 가장 부족한 것은 가족이 아닌 사람들을 통한 사회적 자극이라는 것도 알게 되었다.


어쩌면 이것도 코로나 블루의 일종인지도 모르겠다.




격리를 마치고 집에 돌아왔는데, 현관에 들어서는 순간 이 집에 놓여 있는 모든 물건들은 - 가구는 물론이고 책이며 온갖 일상용품, 화장실이나 부엌 캐비넷 안에 쟁여 놓은 것들, 하다못해 냉장고와 냉동실 안에 있는 음식들까지도 - 거의 다 내가 고르고, 내가 사서, 내가 배치해 놓은 것이라는 걸 깨달았다. 이 집안의 모든 디폴트는 내가 설정했다. 가끔씩 느끼던 ‘내가 바로 이 가정’이라는 이상한 흡수감이 그것 때문일까? 이상하게도 ‘집'이 그리 반갑지 않았다. 그렇다고 지겹고 싫은 것도 아니었는데, 다만 떨어져 있었던 것 같지가 않다. 오랫만에 돌아와서 "아, 역시 우리 집이 제일 좋아!" 하는 감정은 들지 않았다.


그렇지만 아이들을 직접 만지고 냄새맡고 뽀뽀하는 것은 내게 굉장한 현실감을 주었다. 어쩌면 그것만이 내 인생에서 지금 당장 붙들 수 있는, 생생하고 유일한 진짜인 것 같은 느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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