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가 피아노에서 거둔 작은 성취
싱가포르에서 피아노를 배우는 어린이들은 ABRSM이라는 영국의 피아노 급수 제도를 따른다. 그래서 단계마다 시험을 봐서 급수를 인증받아야 피아노 실력을 증명할 수 있다.
코로나 이전에는 일년에 두 번 정해진 기간에 영국에서 온 시험관들 앞에서 지정곡을 쳐 보였는데 지금은 피아노 치는 모습을 촬영해서 동영상을 제출하는 방식으로 시험이 이루어진다. 코로나 초기에는 온라인 시험이 오프라인 시험보다 쉬웠는데, 이젠 한 번의 기회밖에 없는 오프라인 시험과 달리 완벽한 비디오를 찍을 때까지 수십 번 수백 번 반복할 수 있는 온라인 시험이 매우 어려워졌다고 한다.
초등 4학년인 우리 아들도 이번에 첫 ABRSM 시험을 치렀다.
촬영할 곡은 총 4개였고 여름 전부터 시작했다. 처음에는 곡을 배우고, 어느 정도 익숙해진 후에는 곡을 외우고, 그러면서 표현을 풍부하게 하고 속도를 빠르게 하고 손가락을 정확하게 하는 모든 디테일을 완성하면서 가을을 보냈다. 우리가 12월 초 한국에 갈 예정이라 그 이전에 비디오를 제출해야 했다.
이 정도면 꽤 잘 하는 것 같은데.. 라고 여겨질 때쯤 더 높은 기준에 맞춰 연주를 다듬어야 했고, 또 다시 이 정도면 꽤 나아진 것 같은데.. 라고 여겨질 무렵 선생님은 더 높은 수준을 요구했다. 9월에서 10월에 이르는 동안 아이는 슬럼프에 빠진 듯이 전혀 나아지지 않았는데, 10월의 어느 날 갑자기 연주가 눈에 띄게 좋아졌다. 그리고는 또 다시 큰 발전 없이 비슷한 정도에서 지루하게 반복되었다.
각각의 곡은 한 페이지였고 연달아 쳐도 3분 남짓 길이였다. 아이는 굉장히 지겨워했고 하루에 2-30분 이상 연습을 시키기 어려웠다. 그래도 최소 10분이라도 몇 달 동안 거의 매일 반복했다. 그렇게 11월의 첫 주말에 레코딩을 시작했다.
네 곡을 연주하면 보통 한 곡은 아주 잘하고, 두 곡은 평범하고, 한 곡은 약하기 마련이다. 그런데 레코딩을 할 때는 이게 아쉬워서 다시 치면 이번에는 저기가 틀리고, 그래서 그 부분을 신경써서 또 치면 다음에는 또 다른 곳이 틀리고, 이렇게 반복하다 보면 아이가 지치고 집중력이 흐트러져 뭘 해도 이전만 못하게 된다.
연습할 때와 마찬가지로 레코딩 단계에서도, 이 정도면 된 것 같고 어차피 아이의 현재 실력과 멘탈로는 이 이상 잘할 수 없을 것 같은데, 그래도 콕 찝어 반복하고 연습하다 보니 결과물이 놀라울 정도로 좋아졌다. 첫날 한 시간 반의 레코딩을 했을 때 굉장히 뿌듯해하던 아이는 세션이 반복되자 점점 지쳐갔다. 이걸 무한정 반복하는 것보다는 적당히 끝내는 게 좋지 않을까 싶어질 무렵, 5번째 세션에서 여태까지의 베스트라고 여겨지는 멋진 비디오를 하나 건지게 되었다.
8개월 동안 매달려 완성한 연주였다. 나야 그동안 피아노 좀 쳐라 잔소리하며 구경만 했고 스트레스는 아이 본인이 받았는데, 이렇게 시간과 스트레스를 견디니 무언가 특별하게 아름다운 것이 나온 것이다. 아이는 알고 있을까? 본인이 스스로의 실력과 멘탈을 한 단계 뛰어넘어 작품을 완성했다는 것을.
아이가 즐겁게 기꺼이 한 건 아니었다. 여태까지 만난 두 명의 피아노 선생님이 모두 이 아이는 피아노에 재능이 있다고 했는데, 막상 본인은 피아노 치는 것을 즐기지 않으니 소용없었다. 아이는 완벽주의 성향이 있어서 뭘 하든지 스트레스를 받는 편이라, 옆에서 바라보기 안스러워서 엄마가 억지로 시킬 수도 없다. 그런데 스트레스를 받으면서도 꾸역꾸역 계속 하는 맷집이 있기도 하니, 도대체 언제 이 아이를 푸시해야 하고 언제 부담을 거둬 줘야 할지 나도 잘 모르겠다.
그렇지만 이번 연주 비디오를 촬영하면서는 참 대견하고 기뻤다. 지난 4월에 <실패만 거듭한 악기 교육>이라는 제목으로 도대체 아이들 피아노는 왜 가르쳐야 하는 것인지 회의하는 글을 썼다. https://brunch.co.kr/@honeylemonspoon/26 그래도 한 번 쯤은 우리 집에서도 이런 기적같은 일이 생겨나는구나. 아이가 신기하고 기특하고 고마웠다.
안타깝게도 시험 동영상을 완성한 다음날부터 아이는 피아노에 다시 흥미를 잃고 연습을 그만뒀다. 선생님이 발견한 그 어떤 재능도, 꾸준한 반복으로 완성작을 만들어 낸 그 어떤 성취의 경험도, 하기 싫은 아이 앞에서는 힘이 없구나. 이 경험에 힘입어 조금 더 큰 꿈을 꾸고 앞으로 나갈 동력을 얻은 사람은 과연 엄마 뿐이란 말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