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냥 어릴 때부터 그렇게 하고 싶었어...
'쉬~ 메이 비 더 뷰-티~'
결혼식 자리에서 흘러나오는 아름다운 음악 중 하나, 다들 한번쯤 좋다고 느끼지 않았어?
이 노래는 나중에 나도 들어 봐야지, 나도 써야지, 했던 노래들, 혹시 있지 않았어? 나만 있었나?
행사의 꽃은 노래지. 기왕 결혼식 할 거 대충 무슨 노래 틀지 한번 생각해보자.
대학생 시절 아르바이트로 결혼식 비디오 촬영을 하면서 어느날 문득. 내가 할 결혼식의 입장 혹은 퇴장곡으로 AC/DC의 'Highway To Hell'을 쓰면 딱이겠다는 생각이 머릿속을 스쳤다. 실없는 상상을 해보며 피식 웃었다. 결혼할 계획조차 전혀 없이 그런 생각을 했다는 게 아직도 어설프게 웃기다.
세월이 지난 지금, 나는 그냥 그 계획을 실현할 예정이다. 왜냐고? 나 혼자 재밌으니까... 나 혼자 재밌어도 되니까... 대학 밴드 동아리 친구 중 결혼식 촬영 일을 같이 하던 친구와 우스갯소리로 농담을 하곤 했다. 결혼은 지옥행 고속도로이니 무조건 '하이 웨이 투 헬'을 틀어야 한다고. 그러면 다른 친구들이 옆에서 한마디씩 나는 뭘 틀을 거네, 너는 뭘 틀을 거네, 하며 거들었다.
나와 반려인은 내 의견을 수렴해 각자 입장하고 함께 퇴장하는 걸로 이야기를 했다. 돋보이는 걸 좋아하는 반려인이 혼자 입장하는 것보다 동반 입장을 선호해서 처음엔 놀랐다. 단순히 이제 함께니까 함께 들어가는 게 좋지 않냐는 게 그의 의견. 나는 쇼의 맛(?) 을 위해서 따로따로 들어가자고 했다.
사진: 나의 결혼식 플레이리스트 (c. 한글)
https://open.spotify.com/playlist/1TcLpW57U3LGbgeGA8QERb?si=98fbb36a40674532
Immigrant Song - Led Zeppelin
- 영화 '토르' 예고편에서 울려퍼지던 까랑까랑한 아아아~ 아!!!!
- 맨 처음 등장하는 기타리프가 아주 치명적이다. 내가 조권처럼 유쾌하게 깝치면서 입장할 수만 있다면 이 곡을 입장곡으로 쓸 예정이다.
Highway to Hell - AC/DC
- 그 유명한 '하이 웨이~ 투 헬!' 시원시원한 록 사운드가 가슴을 뻥 뚫어놓는다. 결혼 상대를 결정하기도 전부터 이미 정해버린 입장곡 원 픽.
-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 사운드 트랙 중 퀄의 애창곡도 추가해야겠다. 여유롭고 한가한 분위기, 사랑스러운 가사가 매력인 '레드 본'의 '컴 앤 겟 유어 러브'도 입장곡으로 좋겠다는 생각을 해본다.
Welcome To The Jungle - Guns N' Roses
- 나처럼 우아해 보이고 싶은 욕망이 나보단 덜한 반려인의 입장곡이 될 것 같다.
‘샤나나나나나나나나 온 마 니이히~~~~~이히’
이쯤 되니 반려인의 친척 어르신들께서 어떻게 반응하실지 슬슬 궁금해진다. 이렇게 적어놓고 나니 억지로 결혼식 올리는 것 때문에 친지들을 곯리는(?) 것 같기도 한데, 어느 커플이 자신들의 입장곡과 퇴장곡 등을 아주 신나고 경쾌한 것으로 직접 잘 선곡한 적이 있었다. 유명한 팝송들이었고, 그 집안 어르신들이 꽤나 좋아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아무렴 록스타 꿈나무 외길인생 10년을 고독하게 걸어온 사람의 결혼식이니 반려인의 친척들도 이상하다거나 무례하다고 생각하지는 않을 것 같다.
Sympathy For The Devil - The Rolling Stones
- 따뜻한 톤의 베이스와 퍼커션의 신나면서 편안한 리듬, 피아노 소리, 후 - 후 - 하는 유쾌한 코러스. 낭만이 낭낭하게 흐르는 롤링 스톤즈의 음악.
- 결혼식 행사가 본격적으로 시작되기 전, 시작시간에 워밍업 용으로 틀어놓을 노래. ‘기대되지? 재밌겠지?’ 뭐 이런 느낌이다.
September - Earth, Wind & Fire
-두 유 리멤버? 그 유명한 '아이야~' 다. 황정민 배우가 아내 출산 때 불러서 맞을 뻔했다는 그 곡. 내가 언젠가 오사카 섬머소닉에 혼자 가서 땀을 뻘뻘 흘리며 들었던 그 곡.
- 함께 운전을 해 나갈 인생의 도로에 밝은 일만 있기를 바라는 마음에 신나는 노래를 선곡했다.
- 원래 퇴장곡을 '웰컴 투 더 정글'로 하려고 했으나, 그건 너무 잔인하다는 반려인의 의견에 내가 제안한 퇴장곡. 반려인이 한 번에 OK했다.
Mr. Blue Sky - Electric Light Orchestra
-위 플레이리스트 사진에는 없지만 듣는 것만으로 행복해지는 곡 두 번째. 우리가 동반 퇴장한 후, 사람들을 식사 자리로 안내할 때는 왠지 모르게 어릴 적 추억에 대한 향수에 젖게 만드는 곡을 플레이하고 싶다.
Outlier, No Reason - Bonobo
- 약간 씁쓸한 뒷맛이 매력인 밴드 보노보의 인스트루멘털 트립합.
- 사람들이 식사를 마치고 집으로 갈 때, 퇴장 시간을 알리며 집으로 보내는 음악이 이런 느낌이었으면 했다. 자신의 인생을 한번씩 생각하면서 집으로 돌아가게 되는 그런 곡을 원했다. 우울할 때 들으면 좋은 음악이었으면 했다. 이 곡을 틀면 사람들이 무슨 표정을 지으며 집으로 향할지 궁금해진다. 이제 난 뭐 결혼식이 아니라 기획공연을 준비하는 것 같기도...
인생에서 일어나는 수많은 일들은 모두 선택이다.
우리 아버지는 결혼이라는 제도 자체가 문제라고 말하시며 결혼을 왜 굳이 하냐고 계속 뚱해 하시는데, 정작 당신은 재혼을 하셨다. 어불성설 갑
내가 '저 사람이랑 결혼하고 싶다' 얘기를 꺼낸 이후 근 2년간 나는 (애진즉 새집살림을 차린) 우리 아빠한테 갈굼을 당했다. 이게 불만이고 저게 불만이라면서 나의 인생에 아빠의 기준을 맞추려 하는데, 문제는 '결혼'이 아니다.
취직할 때도, 대학에 진학할 때도, 고등학교를 갈 때도, 후라이드 치킨이냐 양념 치킨이냐를 고를 때도 아빠는 내 선택에 반대표를 던졌다. '너는 아는 게 뭐냐'며, 내가 하는 수많은 선택이 잘못됐다며 당신의 선택이 옳다고 하신다.
나는 내 인생에서 중요한 결정을 아빠와 논의할 수 없었다. 말이 안 통하니까. 내가 인터넷 신문사에 취직해서 빌빌대고 있는데 '조중동 아니면 들어갈 생각 마라'고 하는 사람이 아빠니까.
열 세 살 이후 기껏 몇 달에 한 번 만나서 밥 먹고 영화 보고 했던 아빠와의 시간들이 퍽 힘들었다. 몇 년을 피하기도 했다. 아빠는 내가 뭘 좋아하고 뭘 싫어하는지 잘 몰랐다. 아니, 내가 뭘 좋아하고 뭘 싫어하는지에 대해서 관심이 전혀 없었다. 생일에 내가 메탈 시계가 갖고 싶다고 하면 아빠는 '이게 더 좋다'면서 가죽 줄 시계를 사 주었다.
그래서 결론. 내 결혼에서 가장 중요한 건 '남 눈치 안 보기'인 것 같다. 우리는 가뜩이나 남 눈치 보느라 이래저래 고생하면서 살아가는데, 누군가 반대한다거나 해서 내가 하고 싶은 걸 하지 못하는 그런 불상사는 누구에게든, 어떤 일을 준비하는 상황에서든 일어나지 않았으면 하고 바란다.
하나의 선택이라도 남을 위한 선택을 하다 보면 그게 쌓여서 타인을 미워하게 된다. ‘너 때문에 내가 하고 싶은 것도 못 하고’… 어디서 많이 들어본 단골 멘트를 치게 된다. 미움이 쌓이면 내 속이 안 좋다. 우울해진다. 결국 그런 잘못된 선택의 대가는 내 마음이 치르게 되는 것이다.
노래 하나하나, 듣는 사람들의 표정을 상상해 가면서 내가 직접 고르는 게 인생을 이끌어갈 용기이자 나에 대한 자신감이라고, 어줍잖게 스스로를 칭찬해줘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