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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복순이 Jul 13. 2022

할머니, 나의 할머니

 "할머니 봐도 절대 울지 마. 그럼 할머니도 따라 울어."

 병실에 들어서기 전, 엄마는 계속 신신당부했다. 할머니가 사람들이 올 때마다 붙잡고 울어서, 기력이 더 쇠하셨다는 거다.

 "안 울어!"

 조금은 매정한 목소리로 대꾸했다. 


 할머니가 몸이 편찮아지셔서 병원에 입원하셨다는 연락을 받은 건 2주 전이었다. 갑자기 한쪽 몸을 움직이지 못해 검사를 받아보니 뇌경색이라고 했다. 

 6월 초 할머니를 뵙고 기분이 이상했던 일이 떠올랐다. 코로나 이슈 때문에 집에 내려가는 걸 자제했었는데(집에 가더라도 할머니는 안 만나고 올라왔다.), 오랜만에 만난 할머니는 부쩍 늙어있었다. 작고 마른 할머니가 계단을 혼자 못 내려가고, 뒤뚱거리며 걷는 걸 보니 기분이 이상했다. 내 이야기를 들은 동생이 '이전에도 그러셨다.'라고 한 걸 보면 갑작스러운 일도 아니었다.

 그제야 내가 기억하는 할머니의 모습이 같이 살던, 30여 년 전의 모습에 멈춰 있다는 걸 깨달았다. 


 외조부와 외조모는 아빠가 빚더미에 올라앉으며 갑작스레 우리 삼 남매를 떠맡았다. 누구보다도 우릴 사랑하고 애쓰며 키워주셨지만. 할아버지는 무뚝뚝했고, 할머니는 표현이 서툴렀다. 그냥 그런 분들이었다.

 나라고 싹싹한 손녀는 아니었다. 예민했고, 늘 화가 나있었다. 말도 더럽게 안 듣고, 사납기는 또 어찌나 싸나웠는지... 하루는 할머니에게, 또 하루는 할아버지에게 혼났다. 


 중학생 이후로 엄마와 함께 살기 시작하며 할머니 집엔 거의 가지 않았고, 성인이 된 후론 도망치듯 집도 떠났다. 명절 때도 전화만 했다. 최근에야 집에 자주 가고, 종종 할머니 집에도 갔지만 불과 5년도 안 된 일이다. 내 기억 속 할머니의 모습이 30년 전 모습으로 남은 건,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었다. 


 "할머니, 손녀딸 왔어. 손녀딸이 할머니 보려고 서울에서 왔대."

 병실에 들어서자 간호사 선생님이 할머니에게 말을 걸었다. 내 앞에는, 내가 모르는 할머니가 있었다. 너무 작고 쪼글쪼글해진... 우리 할머니.

 "......"

 할머니는 나를 알아보기는커녕, 눈에 초점이 없었다. 말을 하지도, 눈을 마주치지도 못했다.

 "할머니, 손녀딸 이름이 뭐야?"

 "할머니! 할머니 성함이 ㅇㅇㅇ씨 맞으세요?"

 의사 선생님과 간호사 선생님이 계속 말을 걸었으나 할머니는 답이 없었다. 엄마는 이제는 익숙해진 듯 '딸도 못 알아보네.'라며 웃었다. 차라리 울었으면 하는 웃음이었고, 결국 나도 눈물이 터져 나왔다.

 "할머니 앞에서 울면 안 돼요. 할머니 다 알아요. 속상해하세요."

  간호사 선생님의 말에 황급히 병실을 빠져나와 마음을 추슬렀다. 병실을 들어서기 전까지만 해도, 슬프지 않다고 생각했다. 나이가 드시면 아픈 게 당연하다고, 어쩔 수 없는 일이라고. 할머니가 입원하셨다는 소식에 당연히 놀랐지만, 엄마 걱정이 더 컸던 것도 사실이다. 며칠 동안 잠도 제대로 못 잔 엄마는 너무 지쳐보였다. 할머니가 돌아가시기라도 하면 엄마는 어떡하지. 엄마가 얼마나 슬퍼할까. 


 "할머니, 나 왔어..."

 마음을 다잡으며, 눈물을 훔치고 다시 병실로 들어섰다. 여전히 할머니는 아무도 알아보지 못했다. 엄마는 몇 시간 전까지만 해도 괜찮으셨었는데, 또 안 좋아지신 거 같다며 덤덤하게 말했다. 할머니 손을 잡아봤다. 너무 앙상하고 낯선 촉감이었다. 할머니 손을 마지막으로 잡아본 게 언제인지 떠올려보려 했지만 기억이 없었다. 


 아주 오랜만에 기도를 했다. 동생이 공무원 시험을 준비할 때 이후로 처음이었다. 


 다행히도 며칠 뒤 할머니의 상태가 나아지셨다. 나아지셔서, 재활 치료를 받고 계시다고 했다. 옮긴 병실이 병문안이 불가해 뵈러 가진 못 했지만 소식만으로도 마음이 놓였다. 

 할머니와 나는 애틋한 사이가 아니다. 그 사실은 변하지 않는다. 하지만 이제는 안다. 아직 나는 할머니를 떠나보낼 준비는 안 되었다는 걸. 지금의 할머니를 더 알고 싶다는 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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