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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복순이 Nov 17. 2020

나는 늘 엄마 편이야.

 [30만 원 보냈으니깐 oo랑 뽀글이라도 하나씩 사 입어~]

 엄마한테 부재중 한 통과 함께 톡이 남겨져 있었다. 엥? 갑자기 왠 뽀글이?

 엄마에게 전화를 해보니, 뽀글이를 하나 사 입었는데 너무 따뜻하고 좋아서, 혼자 입기 미안해서 돈을 보냈다는 요지였다. 너네도 사 입으라며. 엄마가 말하는 뽀글이는 흔히들 '후리스'라고 하는 플리츠 재킷을 말하는 듯했다. 

 엄마도 참. 미안하긴 뭐가 미안해. 그리고 내가 뽀글이 하나 없을까 봐. 당연히 이미 사서 잘 입고 다니지... 

 고맙다는 말과 함께 전화를 끊었으나, 이러나저러나 자식만 생각하는 듯한 엄마에 속상해서 눈물이 핑 돌았다. 그러고 보니 나는 그 흔한 뽀글이 하나도 엄마한테 사준 적이 없네. 

 혼자 눈물을 삼키다가, 아주 오래 전의 일이 떠올랐다. 내게는 '엄마'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얼굴이 있다.


 크리스마스. 친구와 놀다가 집으로 가는 막차를 놓치고 말았다. 막차 시간을 계산하고 노는 게 당연했던 시절이었는데, 어쩌다가 막차를 놓쳤는지... 될 대로 되라라는 심보였다. 집에 들어갈 수 있으면 들어가고, 아님 말고. 나름 가장 반항적이던 시기였다. 

 시골에 살고 있었던 탓에 집까지는 시에서 시를 넘어갈 뿐만 아니라 차를 타고도 1시간이 넘는 거리였다. 휴대폰도 없던 나는 무작정 택시를 탔다.

 당시 엄마는 실내 포장마차를 운영하고 있었는데, 바닥에 돌이 깔려있어 걸을 때마다 시끄러운 소리가 났다. 가게로 들어서자 놀란 눈의 엄마가 뛰쳐나왔다.

 "엄마 나 택시비 좀..."

 가게 안으로 터덜터덜 걸어 들어서 이런저런 설명도 없이 손을 내밀었다. 엄마는 얼떨떨한 얼굴로 주머니를 뒤적뒤적 거려 만 원짜리 다발을 건네줬다. 택시비라고 하기에는 너무 많은 현금 뭉치를 건네는 엄마는, 평소의 평온하고 차분한 모습과 다르게 허둥지둥 댔다. 

 1시간도 넘는 거리를, 심야 할증도 모자라 시외 할증까지 붙이고 온 나는 쭈뼛거렸는데, 꾸중을 들을 거란 예상과 달리 엄마의 얼굴엔 걱정만 가득했다. 무슨 일이 있었던 거냐고 걱정스럽게 묻는 엄마에게 영화를 보며 놀다 보니 시간 가는 줄 몰랐다고 답을 했고, 엄마는 별 일 없으면 됐다고 했다. 밤늦게까지 연락도 없이 안 들어와서 무슨 일이라도 난 줄 알았다고. 

 엄마의 놀란 얼굴에, 오히려 내가 당황했다. 그 놀란 얼굴은 오랜 시간 내게 엄마의 이미지로 남아있다. 걱정과 안도와 놀라움이 섞인 그 얼굴. 

 그 당시 내게 엄마는 좀 무심한 이미지였다. 내가 밤늦게까지 놀고 오거나 친구 집에서 자고 들어와도 걱정하지 않는 이미지. 걱정을 하지 않아서 '무심하다'라기보다는, 그런 부분에 있어서 좀 쿨했다고 해야 할까. 믿어줬다고 해야 할까. 친구들은 힘들게 받아내는 외박 허락이나 여행 허락도 손쉽게 받고는 했다.  그래서 걱정하는 엄마의 얼굴을 봤을 때, 너무 놀라 '될 대로 돼라'라고 생각했었다는 사실에 큰 죄책감을 느꼈다.


 엄마는 좀처럼 감정 표현을 하지 않았다. 크게 소리를 내어 웃지도, 울지도, 화를 내지도 않았다. 

 그래서 처음 엄마가 소리 내어 우는 소릴 들었을 때, 나는 어쩔 줄을 몰랐다. 

 "내 편은 하나도 없어."

 엄마가 동생과 다툰 일로 하소연을 하던 중이었다. 자초지종은 기억이 나질 않지만, 아무래도 내가 동생의 편에서 답변을 했었던 모양이다. 엄마는 왈칵 울음을 터트렸다. 평소라면 그냥 넘어갔을 일인데, 갑작스럽게 울음을 터트리는 엄마에 몹시 당황했다. 

 나중에서야 엄마가 갱년기를 겪고 있었다는 걸 알게 되었는데, 그 잠깐의 시기가 지나자마자 엄마는 언제 그랬냐는 듯, 다시 감정 표현을 하지 않는 엄마로 돌아와 있었다. 우는 엄마도 속상했지만, 속 시원하게 감정을 표현하지 않는 엄마가 더 속상했다.


 왜 그랬어. 

 엄마는 너무 일찍 결혼했다. 지금의 내 나이에 이미 초등학교 고학년 딸 두 명과 유치원생 아들이 있었다. 아빠가 육아에 적극적이었을까? 아내와 자식들을 먹여 살리는 일만으로도 고달팠을 것이다.

 타지에서, 홀로 아이들을 키워야 했던 엄마는 어땠을까. 내가 태어난 게, 엄마에겐 축복이 맞았을까? 엄마가 견뎌내야 했던 그 시간들은 상상만으로도 괴롭다. 내 몸 하나 건사하는 것도 괴로워 몸부림치는 나인데 우리 엄마는 얼마나 힘들었을까. 고맙다, 미안하다는 말도 꺼낼 수가 없다. 대체 왜 그랬냐고. 왜 그 어린 나이에 결혼까지 했냐고, 더 놀고, 하고 싶은 거 실컷 하지 그랬냐고 하고 싶지만... 우리 가족을, 나와 내 동생들을 부정하는 일이기에 마음속에 묻는다. 

 "왜 엄마 편이 하나도 없어. 나는 엄마 편이야."

 그때 왜 그렇게 말하지 못했을까. 엄마의 우는 소리를 들으며, 그저 '왜 울고 그래'라는 말 따위를 했던 거 같다. 그때나 지금이나 불효녀다. 

 왜 엄마 편이 하나도 없어. 나는 늘 엄마 편이야.

 많이 늦었지만... 이야기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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