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까지 그와 나눈 수많은 대화와 직접 겪어본 그의 언행들로 판단하건대, 그는 고집만큼은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을 만큼이나 센 편이었다. 기본적으로 다정하고 배려하는 성격을 갖추었으면서도 주관이 강했고 제 뜻이 옳다고 생각하면 쉽게 굽히지는 않았다. 그럴 때면 타인의 말일랑 톡톡 튕겨내는 듯 고집쟁이의 면모를 보여주곤 했는데 예를 들자면 이런 식이었다. 군자역 만남이 있던 바로 다음 날 아침, 그는 아무렇지 않은 듯 카톡으로 안부를 물어오더니만 내가 응수도 하기 전에 연달아 출근은 잘했냐는 확인 전화까지 빼놓지 않았다. 마치 어젯밤 내가 했던 말을 잊은 듯, 나와 보냈던 시간이 잊힌 듯이.
뭐지.
이토록 지나치게 예사로운 그의 태도에 당황한 것은 오히려 내 쪽이었다. 전날 얘기했던 것들이 그를 ‘떠보고자’ 한 행위는 결코 아니었음에도 내심 내가 너무 강하게 밀어붙인 것은 아닌가, 혹시 내 말에 그가 상처받지 않았을까, 하는 특유의 이타심(?)에서 비롯된 생각을 좀체 떨쳐낼 수가 없었기 때문에 핸드폰에 그의 이름이 떴을 때 놀라움과 반가움이 뒤섞인 감정이 마구 부풀어 오르던 것은 사실이었지만, 이건 말 그대로 그에게 완벽하게 ‘말리고’ 있는 상황이 아닌가.
아니, 아니다. 이것은 왜곡된 표현이다. 그보다는 쏟아낸 말과는 다르게 아직 그에 대한 마음이 정리되지 않았기 때문에, 실제 내가 한 말처럼 그에게 진짜로 연락이 안 오면 어떡하나, 하는 걱정으로 찬 속내를 스스로 인정했기 때문에, 이것은 어쩌면 그의 뜻이 아닌, 나의 뜻이 만들어낸 결과일 수 있으므로 그에게 연락이 온 순간 얼마간 안심했다는 설명이 맞을 테였다.
아무튼 그의 고집스러움과 나의 표리부동. 그 마땅하고도 꼭 알맞은 결합으로 삼일천하도, 일일 천하도 아닌, 한나절 천하로 그것-나의 객기-은 막을 내렸다.
그렇게 전날 그 난리를 피우고도 한나절 만에 나는 다시 그와 어영부영 연락을 이어가게 되었는데 그 연락을 다시 받아주고 있는 내 모습이 여간 우스운 게 아니었지만, 그보다도 그에게 연락이 왔다는 사실에 속으로 안도하다 못해 행복에 가까워 보이는 모습이 더욱 그랬다. 전날의 진심이야 어쨌건 만일 누군가 내 모습을 제삼자의 눈으로 지켜보고 있다면 토라졌다, 누그러졌다, 얼었다, 녹았다, 밀었다, 당겼다, 양극단의 모습을 오가는 영락없는 하(下) 여자 그 자체였을 테였으니.
누그러진 틈을 그도 놓치진 않았다.
지난밤 동안 무슨 생각을 했는지 몰라도 그는 통화를 통해 어제 일을 간명하게 언급하면서 나의 기분을 상하게 한 것을 인정하면서 사과했다. 그러면서도 내 말대로 연락을 하지 않을 생각은 없으며 다시 만나서 이야기하자는 식의 태도를 보였기 때문에, 아, 네. 그렇군요.라고 다소 심술궂고 딱딱하게 답하는 둥 겉으로 티를 내진 않았지만 나는 이미 상당히 마음이 풀린 상태였다.
누군가와 취향을 공유한다는 건 결코 소소하지 않은 기쁨이다.
초반에 그와 언더 힙합 이야기를 나누었던 이후로 내 플레이리스트는 인피닛플로우라든지, 티비엔와이, 이루펀트, 랍티미스트와 같은 전(前) 힙합퍼들이 차지하고 있었고, 그들의 철 지난 음악을 듣는 것은 나름대로 이십 대 초반의 향수를 불러일으키면서 같은 음악을 이십 대의 그도 즐겨 들었을 것을 상상하면 어느새 기분 좋은 말랑말랑한 기분에 빠져들곤 했다. 언더 힙합, 음악은 그를 만나기 위해 인위적으로 만들어둔 ‘가짜 취향’, 격투기를 제외하곤 첫 취향 공유였던 셈이다.
수많은 대화가 오갔던 어느 한 밤에, ‘썸’ 단계의 기본 대화 코스라고 해야 마땅한 ‘인생 영화 꼽기’ 시간이 있었다. 연주 씨는 인생 영화가 뭐예요, 라는 질문에 나는 단박에 김태용 감독의 <가족의 탄생>을 꼽았다. 다들 탕웨이랑 결혼하는 김태용 감독을 두고 전생에 나라를 구했나, 고 말했지만 나는 반대였다고. 그런 감성을 지닌 사람을 남편으로 맞이했다니 탕웨이는 참 복이 많은 사람인가 봐요. 여운이 길었다는 내 말에 그는 자신에게 여운이 많이 남았던 영화로 <조제, 호랑이, 그리고 물고기들>을 꼽았고, 나도 퍽 공감했다. 둘의 이별, 그 헤어짐의 순간을 잊을 수가 없다고. 그렇게 한참 사랑의 소멸을 이야기하다가, 그 흐름은 자연스레 <봄날은 간다>로 이어졌다. 어렸을 땐 이영애가 나쁜 줄 알았거든. 그런데 이제 와 생각해보면 이해가 가요. 그는 말했다.
어떻게 사랑이 변하니.
유지태처럼, 나도 그렇게 외쳤던 적이 있었다. 아마도 꽤 여러 번. 그 외침은 점차 잦아들다 서른이 넘어서면서는 퍽 담담해졌다. 달이 뜨고 지고, 꽃이 피고 지고, 계절이 변화하듯 사랑도 탄생과 성숙, 그리고 결국 쇠퇴와 소멸의 과정을 거친다는 것을, 나는 온몸으로 체득했다.
“운명의 여자를 만나 사랑했는데, 그 사랑은 사그라지고 ‘진짜 운명’이라고 생각되는 또 다른 여자를 만나게 된다면 어떻게 할 것 같아요?”
갑작스러운 나의 질문에 핸드폰 너머 그는 아주 잠시 고민하는가 싶더니 ‘그럴 일이 없다’라고 답했는데, 그 답은 단호하면서도 명확했지만 어쩐지 고심한 티가 나진 않았다. 그의 답이 썩 마음에 차지 않아 나는 다시 한번 물었다.
“캐나다 영화인데 혹시 <우리도 사랑일까>라는 영화, 봤어요?”
들어본 적 없는 것 같다는 그의 말에 나는 내가 생각하는 사랑을 가장 잘 표현한 것이 이 영화라며 영화를 보고 함께 이야기를 나누고 싶다 말했고, 그는 곧장 1) ‘33의 3’ 읽기, 2) ‘우리도 사랑일까’ 보기, 3) 곱창에 소주 한잔하기라는 조만간 꼭 해야 할 세 가지의 ‘To do list’ 목록을 읊었던 것이다.
그 이야기를 나눈 것이 삼 주 전이니 그사이 대견하게도 1)과 3)은(어제의 자리도 인정한다면) 해내 리스트에서 삭제되었고, 이제 2)‘우리도 사랑일까’ 시청하기 만이 남아있었는데, 오늘이 그에게 남은 마지막 리스트를 삭제할, 바로 그날인 듯했다.
침대에 누워 영화를 볼 준비를 다 했다며 그가 내게 연락해왔을 때, 때마침 나 역시 잘 준비를 다 하고 누워있던 참이었다. 왠지 잠이 쉽사리 오지 않는 밤이었고 나는 일어나 노트북을 챙겨 왔다. 같이 봐요, 영화를 재생하고 있는 화면을 찍은 사진과 함께 내가 보낸 메시지에 대한 답으로 그는 전화를 걸어왔고, 그렇게 각자의 방에서 그와 나는 함께 나의 추천 영화를 시청했다.
<우리도 사랑일까>. 매력적인 주인공 ‘마고’. 그녀는 닭고기 요리책을 집필하는 남편 ‘루’와 5년 차 부부 생활 중이고, 그런 그녀에게 우연히 ‘대니얼’이라는 앞집 남자가 다가오는데…. 이동진 평론가의 말을 빌리자면 순도 100% 사랑에 관한 이야기. 이보다 더 정교하고 예리하게 그려낸 사랑 이야기가 있을까. 사랑에 관한 인생 영화로 나는 주저 없이 늘 이 작품을 꼽곤 했다.
영원히 타오를 것만 같았던 뜨거웠던 사랑도 서서히 사그라지고, 저문 사랑만큼이나 인생에 수많은 빈틈이 있다는 사실을 마주하게 되었을 때, 그때 당신은 어떤 선택을 할 건가요.
입 밖으로 꺼내진 않았지만 나의 인생 사랑 영화를 함께 시청하는 방식으로 나는 늘 품고 있던 사랑에 관한 질문을 그에게 건넸고, 그와 나는 각자의 공간에서 같은 것을 보면서 사랑에 대한 긴 사유의 시간을 가졌다. 핸드폰을 귀에 댄 채.
영화의 마지막 장면, 영화를 관통하는 주제가인 버글스의 ‘Video Killed the Radio Star’ 노래가 흘러나올 때, 그는 나지막이 영화에서 할머니들이 그랬잖아. 새것도 언젠가는 헌것이 된다고,라고 말했고, 나는 그렇죠, 헌것도 새것이었죠. 할머니들처럼, 이라고 답했다.
강렬했던 불타는 사랑의 시간 이후 누구에게나 어김없이 찾아오는 권태의 시간 속에서 우리는 불안에 빠져 어찌할 바 모를 수 있지만 결국 그것이 인생이고, 인생엔 언제나 권태와 같은 빈틈이 생기기 마련이며 그것을 일일이 전부 다 메꾸며 살 순 없다고.
내가 늘 품어왔던 그 생각은, 우리도 마고가 될 수 있으니까요.라는 한 문장으로 그 부피를 줄여 전달되었고, 그는 잠시 골몰하는가 싶더니 정말 참 좋은 영화네, 짤막하게 답했다. 그 답은 왠지 마음에 들었다.
이제 어느덧 두 시가 넘어있었고, 피로함을 느끼는 대신 나는 약한 흥분감과 함께 또 다른 생각에 잠겨있었다. 취향을 공유한다는 건 역시 결코 소소하지 않은 기쁨이구나, 아니 아주 거대한 기쁨이자 사랑의 확장이구나, 하는.
“내일 여행 간다고 하지 않았어? 피곤할 텐데.”
그러고 보니 내일과 모레, 주말을 이용해 M과 S, 그들과 함께 홍천에 갈 예정이었다. 홍천에서 먹을 것들이나 가볼 만한 코스를 이야기하다 그가 가보고 싶다고 한 예쁜 카페 얘기에, 나는 갑자기 불쑥 생각난 듯 자존심을 세워 ‘본능이 이끄는 여자랑 가라’며 새초롬하게 답했는데,
그 대답에 귀엽다며 웃는 것을 보아, 이제 그는 내 화가 모조리 다 풀렸다고 생각한 게 분명했다.
오 년 전 수영장에서 알게 돼 지금까지 가깝게 지내고 있는 M과 S, <33의 3>의 마지막 챕터 ‘수영장 우정’의 모델이 되었던 그녀들과는 적어도 한두 달에 한 번씩은 카페나 맛집 데이트를, 일 년에 한 번씩은 꼭 여행을 가는 절친한 사이였다.
홍천은 좋은 여행지였다. 서울에서 그다지 멀지도 않았고, 은근 맛집과 가볼 만한 곳들도 많았다. 무엇보다 우리는 ‘수영’으로 이어진 사이였다. 겨울이지만 미온수가 나오는 야외 수영장이 있는 숙소를 부담되지 않는 가격에 잡아두었기 때문에, 여행과 물놀이를 아주 사랑하는 사람으로서 이번 여행에 거는 기대감이 상당히 클 수밖에 없었다.
입실하기 전 점심으로는 근방의 유명한 식당에서 막국수와 보쌈을, 점심을 먹은 후에는 인터넷에서 평이 좋았던 건물이 예쁜 카페에 들렀다. 음식이며 카페며 커피며, 남자 친구에게 하듯 나는 가는 곳마다 사진을 찍어 그에게 전송해댔는데, 이들과는 이미 견인이 되던 날 만나 대략적인 이야기를 해놓았던 터라 내 모습을 살짝 신기해하면서 그를 ‘코치님’이라 지칭하며 가볍게 놀리곤 했다.
생각보다 숙소는 더 좋았다. 거실도, 방도 크고 컨디션도 훌륭했다. 제비뽑기를 통해 내가 화장실이 딸린 독방을 쓰는 것으로 결정되는 행운도 얻을 수 있었다. 수영장 뷰였던 까닭에 꽤 넓고 예쁜 수영장을 미리 확인할 수 있었는데, 수영장을 확인하자마자 이 맛에 여행 오지!라는 생각이었다. 노폐물이 제거되듯, 며칠 동안 안 좋았던 기분이 싹 풀리는 느낌이었다.
아이들처럼 우리는 수영장에서 무려 두 시간 이상의 시간을 보냈고, 그날은 수영보다도 사진 찍기에 진심이었다. 가장 열중한 것은 역시 나였는데, 찍은 사진을 다시 보는 데에만 수십 분이라는 상당한 시간이 소요될 정도였으나 오 년이라는 세월을 함께한 찐 인연들은 나의 지치지 않는 열정에 전혀 놀란 기색을 보이지 않았다.
나이가 다르고, 하는 일이 달랐어도 수영이라는 공통의 관심사는 우리를 한 데 묶었다. 매일 같이 보는 사이였다. 기혼 아이 엄마가 된 친구들보다 서른넷의 서연주에 대해선 이들이 더 빠삭하게 꿰고 있을 정도로, 누가 뭐래도 이제 그들과 나는 정말 친한 친구, ‘찐친’ 사이였다.
찐 친구들과의 여행에 야간 딥토킹 시간이 빠질 수 있을쏘냐. 끊이지 않는 연락에, 실시간 사진 전송에, 누가 봐도 나는 싱글이 아닌 것처럼 보일 테였다. 미혼들답게 아무리 서른이 훌쩍 넘은 나이였어도 우리 사이의 대화 중 연애 이야기는 결코 빼놓을 수 없는 핵심 주제였다.
안주와 술을 사이에 두고, 그에 대한 이런저런 이야기들을 늘어놓으면서 나는 한껏 신이 났다. 이러이러한 일들이 있었고, 이런 부분이 멋있었고, 이런 부분이 좋았고. 그들은 내 이야기를 흥미롭게 들으면서 아주 적극적인 리액션을 취해주었으므로, 나는 점점 더 흥분했다. 네가 정말 좋아하는 것처럼 보인다, 어떻게 인스타로 우연히 만나서 그렇게 되니, 진짜 잘 만났다.
그런데 왜 아직 안 사귀어?
M의 해맑은, 갑작스러운, 송곳 같은 질문에 쉬지 않고 떠들던 입이 잠시 멈췄다.
“진짜 맞아. 왜? 코치님이 사귀자고 안 해?”
이어 S의 순진무구한 질문이 이어졌다.
음,
있잖아. 소개해줄게.
그를 만나고 두 번째 촉이 발동하고 있었다. 베개를 적실 정도로 눈물을 흘렸던 게 엊그제인데, 우습게도 그때가 벌써 희미했다. 왠지 모르게 불안감은 어느새 사그라져있었다. 종일 그와 나눈 대화는 그때도 물론 이어지고 있었다. 때마침 그는 내게 여행지에서 언제 돌아오는지를 확인했고, 만날 시간이 되는지를 물었는데, 음, 글쎄요. 아마 별일은 없을 걸요,라고 튕기듯 대답해놓곤 M과 S를 보며 웃었다. 자, 한잔 하자!
오늘 밤은 독방의 큰 침대에 누워 충분히 만끽할 터였다. 기대랄까, 설렘이랄까, 기분 좋은 예감이랄까, 하는 것들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