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두 아프지 않길
옆자리가 텅 비어있다.
사무실 내 옆자리에는 반짝반짝한 눈의 아름다운 긴 머리를 휘날리던 선생님이 있었다. 3년간 같이 출근하며 인사하고 점심 먹고 산책하고 소소한 일상을 나누고 친구같이 지냈는데 지난 추석 이후 선생님께 갑작스럽게 찾아온 병으로 인해 오랫동안 볼 수 없게 되었다.
선생님의 안부를 묻다가 어머니께서 병실에 같이 계시며 간병하신다는 이야기를 듣고 문득 11년 전 그날이 떠올랐다.
인공호흡기 튜브를 달고 있는 눈이 똘망했던 홍시
지금까지는 임신했던 나의 모습과 홍시의 병원생활이 담긴 사진을 다시 볼 엄두가 나지 않았는데 오늘은 갑자기 보고 싶은 용기가 생겼다. 마침 남편과 연동한 구글포토에 들어가 홍시를 처음 만난 2015년 그때로 커서를 이동했다.
임신한 모습으로 그린플러그드 페스티벌에서 노래를 즐기며 햄버거를 먹는 모습, 졸업식 의상을 갖춰 입고 동료와 찍은 사진, 유도분만 입원 전 마지막으로 먹었던 집 앞의 돈가스 집
그 이후 한 페이지 정도는 온통 영상통화로 만난 병원 속 홍시의 모습들이었다. 인공호흡기의 긴 튜브가 달려있는 푸르스름한 피부의 홍시(경련으로 인한 뇌손상을 예방하기 위해 저체온치료를 받았었다.) 홍시는 배냇짓을 잘했는데 신생아중환자실에서도 어김없이 튜브밑으로 혓바닥을 쏙 내밀고 눈을 초승달 모양이 되어 웃고 있는 귀여운 모습, 튜브로 물을 주니 쩝쩝거리며 오물거리는 모습, 그 이후에는 주렁주렁 달려있는 튜브를 다 떼고 노란 모자를 쓰고 오통통한 얼굴과 몸매를 뽐내며 면회를 가면 배고프다며 제일 크게 울고 있는 모습까지. 1달가량의 병원생활을 11년을 기다려 볼 수 있게 되다니 어느새 내려야 할 버스정류장에 도착해 발을 내딛는 순간 이전과는 다른 공기가 다가왔다.
홍시가 태어나지 않았다면, 출산 때 뇌손상이 없었다면, 나를 힘들게 하는 일이 생길 때마다 그런 마음들이 슬며시 고개를 내밀며 떠올랐다. 홍시에게도 어려운 고비가 닥칠 때면 ‘나 때문이야. 내가 잘 못해서야‘라는 생각이 항상 머물렀다. 우리가 걸어가는 길 중에 밝게 빛나는 부분은 보이지 않고 어두운 그림자만 따라 쫓아가는 듯했다.
이제는 과거의 길게 드리워진 어두운 끈들을 놓고 오늘을 살아가려 한다. 아침에 일어날 때 항상 따뜻하게 ‘엄마’ 하고 부르며 안아준 홍시. 어푸어푸 물을 좋아해 수영장에서도 선생님과 놀이와 배움 속에 신경전 중인 홍시. 집에 가서는 좋아하는 아보카도 계란밥을 먹을 거라며 단단히 벼르고 있는 홍시. 나를 든든하게 지켜주는 남편, 가족들.
홍시야 태어나줘서 고마워.
엄마에게 와줘서 고마워.
엄마도 홍시 때문에 새로운 세상을 보고 배우고 느껴.
사랑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