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래기국, 말린 무청으로 끓인 한 그릇의 위로

말린 무청의 구수한 변신

by 홍천밴드

무를 수확하고 난 뒤 남은 무청을 버리지 않고 삶아 말리면, 그것이 바로 ‘시래기’가 된다. 아주 어렸을 때는 시래기 발음이 쓰레기와 비슷해 왜 음식을 쓰레기로 불리나 싶었다. 말린 무청은 그저 마른 잎사귀 같지만, 바람과 햇살, 시간의 손길이 지나면서 한층 더 깊은 맛을 품는다. 그래서 시래기는 단순한 나물 이상의 의미를 가진다. 겨울을 버티는 음식이자, 기다림의 음식이다.


며칠 전, 말려 두었던 시래기를 꺼냈다. 찬물에 불리고 푹 삶은 시래기를 들기름에 마늘과 함께 볶기 시작하니, 고소한 향이 부엌 가득 퍼졌다. 된장을 한 스푼 풀어 넣었다. 시래기를 넣고 천천히 끓이니 국물은 점점 진해지고, 시래기는 부드러워졌다. 뚝배기에서 김이 피어오르는 그 순간, 이미 맛은 완성되어 있었다. 갓 지은 밥 한 그릇과 함께라면 반찬이 없어도 든든하다. 요란한 재료도, 화려한 조리법도 없지만, 오래 기다려야만 얻을 수 있는 깊은 맛이 있다.


무청이 마르고 다시 물을 머금는 과정이 어쩐지 우리 삶과 닮았다. 잠시 메마른 듯 보여도, 다시 기회를 만나면 생명을 틔운다. 시래기국 한 그릇을 앞에 두고 있으면, 그 묵직한 맛 속에 겨울을 견디는 힘이 담겨 있는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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