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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노트 1 [한강, 작별하지 않는다]

이상하지, 눈은. 어떻게 하늘에서 저런 게 내려오지

by 홍천밴드

시골에서 일어난 일들로 매일 글을 올리려니 쓸 이야기거리가 떨어져 가서 책 읽고 난 후 나의 생각을 기록차원으로 써보려고 한다. (앞으로 영화, 드라마, 가수, 밴드 등의 주제도 쓸 예정)


연휴기간에 한강작가의 '작별하지 않는다' 책을 읽었다. '소년이 온다' 보다는 읽는 것이 조금은 덜 힘들었지만 그래도 읽는 것 자체가 힘들긴 했다. 이 소설도 일반적인 소설 느낌이 아니다. 상황이나 설정은 소설적인 요소가 있지만 그 안에 제주 사건의 내용은 사실에서 기초한 것으로 보인다.


이 소설을 경하와 인선이라는 인물이 나오는데, 경하는 한강 작가 자신이다. 인선은 잘린 손가락을 봉합하려면 계속 고통스럽게 찔러야 한다고 상황은 4.3 사건이 알면 알 수록 힘들고 고통스러워도 계속 들여다보고 계속 아파야 한다는 의미 아닐까. 책에 있는 글자인데 마치 내 눈앞에 누군가의 손가락을 찔린 아픔과 고통이 나에게 그대로 와서 힘들었다.


인선는 경하에게 제주도 집에 있는 새가 죽을 수도 있으니 가서 살펴봐달라는 부탁을 했다. 그래서 제주도에 있는 인선의 공방을 가는데, 그 고생스러운 여정이 읽기 힘들었다. 고생을 하고 도착한 그곳엔 새가 이미 죽어있었다. 경하는 새를 땅에 묻는다.


그러곤 병원에 있어야 할 인선과 이미 땅에 묻은 새가 비현실적으로 그 집에 와있고 살아있다. 이 설정은 인선이 죽어서 혼이 된 건인지 아니면 경하가 죽은 건지 그것도 아니면 그냥 모든 게 꿈이거나 섬망인지 알 수는 없다. 중요한 건 그 둘이 만나서 사건들에 대해 이야기한다. 인선은 정심(인선 어머니)이 학살 이후 실종된 오빠를 찾는 과정을 경하에게 사실 조각들을 발견된 자료를 통해 이야기한다. 오빠를 찾는 것은 단순히 가족을 찾는 것이 아니라, 제주 4·3 사건으로 인해 사라진 수많은 이들을 기억하고자 하는 행동과 연결된다.


사실 나도 제주 사건을 근래에나 알게 됐었다.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이유 없이 죽었다는 게 믿기지 않았다. 얼마나 억울하고 고통스러웠을까. 이 소설의 제목도 작별하지 않는다의 의미는 그 사건을 잊지 않고 계속 기억하고 작별하지 않을 것이라는 뜻이다.


한강 작가의 문체에서 느껴지는 섬세함과 아름다움이 특별하다. 노벨상 위원들은 번역본을 읽었을 텐데 번역본에서도 문체에서 느껴지는 정서가 전달되었던 것일까. 문장에서 느껴지는 담백 하지만 화려한 느낌이 있다. 글자 한 자 한 자를 꾹꾹 눌려 쓴 느낌도 든다. 한강 책은 읽기 힘들지만 문장을 다시 곱씹으면서 여러 번 읽어서 그 문장을 오롯이 느끼고 싶다.


제주 4·3 사건은 1947년 3월 1일부터 1954년 9월 21일까지 제주도에서 발생한 무력 충돌과 민간인 학살 사건을 말한다. 해방 이후 대한민국 정부 수립 과정에서 발생한 이념 갈등, 정부의 강경 진압, 미군정의 개입 등이 복합적으로 얽혀 제주도에서 수많은 민간인이 희생되었다.


사건의 주요 과정

1947년 3·1절 발포 사건 (사건의 발단)

1947년 3월 1일, 제주도에서 열린 3·1절 기념식에서 평화적인 시위가 진행되었음.

경찰이 시위대를 향해 발포하여 6명이 사망하고 여러 명이 부상함.

이에 대한 항의가 거세지자, 경찰과 우익 청년단이 시위대를 탄압하면서 긴장이 고조됨.

1948년 4월 3일 무장봉기 (본격적인 사건 시작)

1948년 5·10 단독 총선을 앞두고, 남한만의 단독정부 수립에 반대하는 남로당 제주도당(공산주의 세력)이 무장봉기를 일으킴.

경찰서와 우익 단체를 공격하며 제주 전역에서 충돌이 발생함.

정부는 이를 반란으로 규정하고, 군·경과 서북청년단(극우 단체)을 동원해 강경 진압에 나섬.

1948~1950년 초강경 토벌 작전 (무차별 학살)

정부는 제주도를 "빨갱이 섬"으로 규정하고 대대적인 토벌 작전을 실시함.

마을을 불태우고 주민을 무차별 학살함.

제주도 인구의 10% 이상(2만~3만 명)이 희생되었으며, 상당수가 비무장 민간인이었음.

마을 주민들이 협조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노인, 여성, 어린아이까지도 학살당함.

살아남은 사람들은 산속이나 바닷가로 도망쳐야 했으며, "빨갱이 가족"으로 낙인찍혀 차별과 감시를 받음.

1954년 사건 종결

한국전쟁(1950~1953)이 끝난 후, 1954년 9월 21일 계엄령이 해제되면서 공식적으로 사건이 마무리됨.

하지만 4·3 사건은 오랫동안 금기시되었고, 피해자들은 "빨갱이"로 낙인찍혀 침묵해야 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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