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첫 번째 이야기-3

내가 만난 두 번째 정신과 의사

by 으농

약을 끊고 결혼을 하고 본가에서 멀리 이사를 했다.

도피성 결혼이었던 덕일까.

엄마와 아빠를 안 보고 사니 너무 살만했다.

병원을 안 가도 편안했다.

가끔 불안이 밀려올 때도 있었지만

어둠에 잠식당하지 않았다.


그런데 아이가 생기고 다시 불안과 우울로

견디기 힘든 시간들이 생겼다.

임신한 딸은 안중에도 없는 엄마랑은

만날 때마다 싸웠고 늘 극단적으로 치닫았다.

병원에 다시 가서 약을 먹어야 되나 싶었지만

임신한 몸으로 정신과에 가는 것도,

새로운 지역에서 새로운 병원을 알아보는 것도,

처음 만나는 의사에게 또 처음부터 이야기하는 것도,

모든 게 너무 힘들고 무겁게 느껴졌다.

그저 혼자 흐느껴서 울거나

고래고래 소리 지르며 엄마와 싸우는 것을

임신과 호르몬의 핑계를 대면 외면했다.

그렇게 두 아이를 낳으며 7년의 시간을 흘려보냈다.


그리고 다시 병원을 찾게 되었던 올해 5월.

병원으로 찾아가게 된 결정적인 트리거는 책이었다.

도서관에 가서 빌렸던 책인데

'나를 위한 글쓰기'라는 책이었다.

아마 책을 빌리기 전 주였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어린이날이랑 어버이날이 있어 연휴에 시댁을 갔다.

고속도로가 많이 밀려 휴게소에 들렀는데

휴게소에도 사람이 바글거렸다.

아이 손을 잡고 사람들 틈 사이로 지나가다

어느 아저씨께서 내 운동화 왼쪽 발날 부분에 발이 겹쳐지며 넘어지셨다.

쾅. 사람을 직이라.

아저씨는 나를 매섭게 노려보며 소리를 치셨다.

많이 다치셨을까 봐 너무 놀라고 죄송했지만

한편으로는,

사람들 가득한 그곳에서 나한테 소리 치는 게 무섭고 부끄러웠다.

죄송합니다 죄송합니다 연신 고개를 숙이고

남편은 괜찮으세요? 하며 그분을 부축했다.

그분의 일행분께서는 그 분을 말리시며

고개를 한번 숙이고 지나가셨다.

그렇지만 그 모든 순간이 너무 무서웠다.

그 순간의 기억이 사라지지 않았다.


그날의 기억을 적어내며 감정을 다스려보고자 그때 그 책을 빌렸었다.

그런데 책을 읽고 글을 쓰면서 가슴이 점점 더 죄여왔다.

머릿속에서 이런 말이 계속 떠올랐다.

그깟 글 적어봤자 아무것도 해결되지 않아!

나는 계속 사람들을 불편하게 할 거야!

나 때문에 자꾸 다른 사람이 피해를 볼 거야!

나는 쓸모없는 존재야! 내가 있는 게 더 손해야!

그런 생각이 자꾸만 커져만 갔다.

머리는 터질 거 같고 숨은 금방이라도 멎을 거 같았다.


안 되겠다!

당장 지도에 정신과를 검색했다.

제일 가까운 정신과는 두 달 뒤에 초진 예약이 가능했다.

다른 정신과는 병원 사정으로 초진을 받지 않았다.

마지막으로 전화한 정신과는 지금 오셔도 됩니다라고 했다.

처음 전화했던 집에서 가까운 정신과에 다시 전화를 걸어 초진예약을 잡아두고

마지막 전화한 정신과에 갔다.


거기는 주로 약만 처방받으시는 노인분들이 많이 오시는 듯했다.

예전에 우울증으로 약을 먹었던 적 있다고 말하니

우울증 자가진단 체크리스트를 한 장 주시면 체크해 보라고 하셨다.

그러면서 덧붙이기를 너무 심하게 나오면 큰 병원으로 보낼 수밖에 없다 했다.

그 말에 자가진단을 하는데 자꾸만, 이렇게 체크해도 될까?

나는 지금 당장 약을 안 먹으면 안 될 거 같은데...

혹시 나보고 다른 병원 가라고 하면 어쩌지? 하며 불안해졌다.

그런 마음으로 체크리스트를 했더니 우울증이 아니라고 나와버렸다.

의사는 이렇게 점수가 낮게 나와서 약을 주기가 애매하다는 식으로 말했다.

나는 아무 말 못 하고 한숨을 내쉬며 책장만 바라보고 있었다.

'제일 약하게 일주일치만 드려볼게요.

일단 드셔보시고 다음 주에 와보세요.'


다행히도 그렇게 약을 받아와 일주일치 일주일치 먹다가

열흘 치 열흘 치 그리고 이주일치까지 늘려서 약 두 달을 다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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