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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홍주현 Feb 18. 2022

누가 더 사랑하나

계산적 사랑의 잘못된 계산법


무불보 상담 신청자 중에 젊은 커플이 상담 후 소감하는 걸 본 적 있다. 여자가 남자에게 사귀자는 프로포즈를 해서 커플이 된 경우인데, 사귀면서도 주위에서 여자에게 네가 남자를 더 좋아하는 것 같단 얘길 많이 하고 여자가 느끼기에도 그런 것 같은 게 여자의 불만이었다. 상담 후 소감을 말하면서 여자가 남자에게 그런 소리 안 듣게 자기에게 좀 더 잘 해 달라 하고, 남자도 그러겠다고 했다.


'누가 더 사랑하나'하는 문제는 매체뿐만 아니라 내 주위에서도 종종 접하는 이야기다. 이런 걸 궁금해하며 문제로 삼는 배경에는 더 사랑하는 사람이 뭔가 아쉬운 사람이라거나 손해라거나 또는 자존심 상하는 일이라고 여기는 심리가 있다. 단적으로 얘기하면, 사랑을 계산하는 것이다.


나는 계산적인 태도로 사랑하는 걸 나쁘게 보지 않는다. 인간으로서 있을 수 있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다만 동의하기 어려운 부분은, 더 많이 사랑하는 걸 덜 사랑하는 마음보다 손해라거나 자존심 상하는 일이라거나 또는 아쉬운 게 있어서 어쩔 수 없이 갖는 행동으로 여기는 시각/생각이다. 


계산적인 사랑에 대한 이런 시각은 사랑을 할 때 얻는 기쁨과 만족 등의 이득이 무엇인지 모르기 때문에 생긴다. 사랑을 할(줄) 때 얻는 가장 큰 이득은 '자유'다. 인간은 사랑을 줄 때 평소 자기자신을 구속하는 가장 강력하고 압도적인 것의 손아귀에서 벗어난다. 자기 모든 것을 내어줄 수 있는 마음을 품으면 품을 수록 그 앞을 가로막고 있던 거대한 두려움이 사라진다. 그에게는 거칠 것이 없다. 그때 그 가슴은 이루 말할 수 없는 자유로운 해방감으로 활짝 열린다.


사랑을 계산하는 게 문제는 아니지만, 아직도 그와 나 가운데 상대를 '누가 더 사랑하나'란 의문을 갖는 건 더 사랑하는 게 손해고, 내가 덜 사랑해서 상대에게서 더 사랑 받는 게 이득이라는 단순한 셈법 때문에 생긴다는 점에서 문제다. 더 사랑하는 게 손해가 아니라 이익이라는 사실을, 덜 사랑하는 게 이익이 아니라 손해라는 사실을, 모르고 완전히 거꾸로 착각하고 있는 것이다.


아마도 아직 '사랑'을 해 보지 못한 탓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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