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떻게' 경험했느냐
경험의 내용을 중요하게 여기면, 그 경험을 하는 사람은 그 경험에서 피동적 객체, 즉 경험을 당하는 사람에 가깝다. 좋은 일, 원하던 경험을 할 때는 자기가 주인공인 것 같아도 그것은 가짜다. 좋지 않은 일, 원하지 않던 경험을 할 때는 자기 자신을 주인공이 아닌 '피해자' 또는 억울하게 당한 사람이라고 둔갑해서 인식하기 때문이다. 이 화살이 남이 아닌 자기 자신으로 향하면, 죄책감 수치심 같은 것을 느끼면서 자기 자신을 벌한다.
반면, 경험의 내용이 무엇이든 그 경험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그 경험을 어떻게 활용할지를 중요하게 여기면, 그 경험의 주체, 즉 주인은 경험하는 사람이 된다. 원하지 않던 경험을 하게 되더라도, 원하던 경험을 할 때와 똑같이, 자기 자신이 그 경험을 불러일으킨 주인공이라고 인식한다. 그래야 그 경험을 활용할 수 있는 위치에 설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렇게 경험을 활용하기 위해 고군분투하면서 그 경험을 실제로 장악하게 된다.
무엇을 경험하는지, 경험의 내용에 포커스를 맞추면, 성공 승리 행복같은 쾌락에 가까운 만족을 가져다 주는 경험만 가치 있게 여기게 된다. 반면, 경험이 무엇이든 '어떻게' 경험하는지를 중요하게 여기면 경험의 내용 자체가 중요하지 않다. 아니, 오히려 실패 패배 고통에 가까운 거부하고 싶고 피하고 싶고 힘겨운 경험의 가치를 소중하게 여기게 된다. 성공 승리 행복에서 사람은 그 상황을 그저 즐기면 될 뿐 무언가 해야 할 역할이 없지만, 실패 패배 힘겨운 일에서 인간은 그 경험을 탐구하고 재해석함으로써 자기 자신을 발잔시키고 삶을 풍성하게 만들 수 있기 때문이다.
배경이 좋아서, 태어날 때부터 받은 재능이 워낙 출중해서 한 번도 실패나 패배, 자기 극복 같은 힘든 과정 없이 성공하고 그래서 행복하기만 한 사람에게는 스토리가 없다. 스토리는 넘어지고, 다시 일어서는 그 고통스러운 과정에서 생긴다. 그리고 그 때 삶이 풍성해진다. 더욱이 그 때 생기는 느낌은 성공 승리 행복 같은 순간적 만족이 가져다 주는 쾌락에 비할 수 없이 깊다. 깊은 곳에서 차오르는 자존감과 자신감이다. 잠깐 느끼고 곧 다시 현타를 맞으면서 불안감으로 변하는 만족과 질적 차원이 다르다.
삶이 다르게 보인다. 실패, 패배, 고통스러운 일 같은 경험에서 자기 과오, 자기 자신을 발견하면 자연히 개선하게 돼서 성장한다. 그 때 '나'는 이전의 '나'가 아니기 때문이다. 부정적 경험 안에는 자기를 극복하게 만들 수 있는 요인이 보물처럼 들어있다. 그 경험을 재해석하는 과정을 거치면서 자기 삶에서 얼룩이라고 여겼던 실패, 패배 경험의 가치를 다시 발견하면서 자기 삶을 사랑하게 된다.
중요한 건 누가, 무엇을'이 아니라 왜, 어떻게'다. 개인이든, 사회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