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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홍춘욱 Dec 10. 2022

내러티브 경제학

입소문, 버블을 만들다!

스토리텔링(혹은 내러티브)가 어떤 식으로 금융시장의 변동성을 다룬 책, "내러티브 경제학"의 핵심 내용 위주로 소개합니다. 


***


누군가가 손쉽게 부자되었다는 소식을 들은 후.. 평정심을 유지할 수 있는 사람은 많지 않다는 이야기(6쪽).


급속히 확산된 내러티브narrative가, 변화하는 시대정신에 어떤 방식으로든 기여한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이를테면 앨렌은 1929년 주식 시장이 최고점에 이르기 직전에 다음과 같은 이야기가 퍼지는 것을 목격했다.

"저녁 만찬 자리에서 누군가 갑자기 큰 부자가 됐다는 환상적인 이야기를 들었다. 한 젊은 은행가가 가진 돈을 몽땅 털어 나일스베먼트폰드Niles-Bement-Pond사에 투자한 결과 평생 돈 걱정 없이 살 수 있게 되었다는 것이다. 한 미망인은 케니코트 광산에 투자한 덕분에 시골에 커다란 저택을 구입했다고 했다. 마치 시보드 에어라인 seaboard Air Line을 항공사로 착각한 사람들처럼, 무수한 이들이 투기에 빠져 어떤 회사인지도 모르고 전 재산을 쏟아부었고 실제로도 돈을 벌었다. (시보드 에어라인은 철도회사로, '에어라인'이 두 지점 사이의 가장 짧은 경로를 의미하던 19세기에 지어진 이름이다)"

누군가 지어낸 것처럼 들리지만, 이런 이야기도 자주 듣다 보면 무시하기 어렵다. 물론 부자가 되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1920년대에 가장 똑똑하고 지적인 사람들 또한 그 사실을 익히 알고도 남았을 것이다. 그러나 저런 이야기에 대항하는 내러티브, 즉 벼락부자 되는 법이 얼마나 허황되는지를 지적하는 이야기는 그만큼 전염성이 강하지 않았다.


***


제가 언제인가부터 2075년 혹은 그 이상의 미래를 대상으로 하는 장기전망을 무시하게 되었죠. 왜 그런지를 설명하는 대목(14쪽).


분기단위의 미시적 예측은 정확한 편이나, 연 단위의 예측은 전혀 쓸모 없었다. 향후 1년간 미국의 분기별 GDP가 마이너스 성장률을 기록할 것인가에 대해 이들이 예측한 결과는 실제 발생한 마이너스 성장률과는 아무 관계도 없었다. 패덤 컨설팅 Fathom Consulting의 연구에 따르면, 국제통화기금IMF이 연 2회 발표하는세계경제전망 보고서 world Economic Outlook는 1988년 이후 194개국에서 도합 469번의 경기침체(해당 국가의 연간 GDP가 전년대비 감소)가발생할 것으로 예측했으나, 실제로 다음 해에 그런 예측이 들어맞

은 경우는 17번에 불과했다. 이들은 발생하지도 않은 경기침체를 자그마치 47 배나 더 많이 예측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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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합리적인 개인'의 집합으로 경제를 상상하나.. 2차 대전에서 보듯, 인간의 합리성은 쉽게 흔들린다는 이야기(18쪽).


내러티브 경제학자인 존 메이너드 케인스

크리스톨은 여론조사를 무시했을지 모르나, 역사상 가장 유명한경제 예측은 아마 내러티브의 관찰과 인간 행동에 대한 우려에 바탕을 두고 있는 것 같다. 케임브리지대학의 경제학자 존 메이너드케인스John Maynard Keynes는 1919년에 출간한 『평화의 경제적 결과』에서, 독일이 1차 세계대전 이후 체결된 베르사유 조약의 가혹한배상금 조항에 극심한 반감을 품을 것이라고 내다보았다. 종전 당시 이 같은 예측을 한 사람은 케인스뿐만이 아니었다. 예를 들어 평화주의자인 제인 애덤스Jane Adams는 패전 독일에 대한 구제 운동을펼치기도 했다. 그러나 케인스는 현실적인 경제적 증거를 함께 제시했다. 독일은 실로 막대한 배상금을 지불할 능력이 없었고, 독일에 배상금을 강요하는 것이 위험하다는 케인스의 우려는 옳았다.


***


이탈리아 같은 선진국에서도 파퓰리스트들이 정권을 잡는 데 성공하는 이유(19쪽).


케인스는 독일 국민이 배상금과 전범국 조항을 어떻게 해석할지 정확히 예측했다. 케인스의 통찰력은 내러티브 경제학이 어떤 것인지를 정확히 보여주었다. 독일 국민들이 그들의 경제적 상황과 관련해 베르사유 조약 이야기를 어떻게 해석하는지에 초점을 맞췄기 때문이다. 그것은 또한 미래에 대한 예측이기도 했다. 1919년, 싸구려 멜로드라마와 같은 외교 정책이 진행되고 있던 와중에 케인스는앞으로 다가올 전쟁에 대해 이렇게 경고했다.

"만일 중부 유럽을 고의적으로 빈곤에 빠트리는 것이 목적이라면, 그복수는 가차 없고 신속하게 이뤄질 것이라고 나는 감히 예측한다. 반동세력과 혁명의 좌절스러운 혼란이 부딪쳐 발생할 내란을 장기적으로막을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내란이 발생하기 전까지 지난 독일전쟁에 대한 공포는 수그러들지 않을 것이며, 어느 쪽이 승리를 거두든이는 우리 세대의 문명과 진보를 파멸시킬 것이다!"

케인스의 예측은 옳았다. 그로부터 20년 후, 남아 있던 분노 속에서 시작된 2차 세계대전은 620만 명의 목숨을 앗아갔다. 케인스의 경고는 경제학과 경제적 균형에 대한 판단에 발판을 두었다. 하지만 케인스는 오늘날 우리가 생각하는 순수한 경제학에 대해 말한게 아니다. 그가 말한 '복수'나 '혁명의 좌절스러운 혼란'과 같은 표현은 도덕적 기반으로 채워진 내러티브가 존재하며 인간 행동의 보다 깊은 의미와 맞닿아 있음을 암시한다.


***


비트코인과 아나키즘 이야기(31~32쪽)


모든 정부에 반대한다는 기조를 지닌 아나키즘 운동은 1880년대에 시작해 서서히 상승가도를 걸었다. 그러나 아나키즘이라는 용어 자체는 그보다 수십 년 전인 철학자 피에르 조셉 프루동(pierre-Joseph Proudhon)과 그의 동료들 작품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프루동은 1840년에 아나키즘에 대해 이렇게 설명한 바 있다.


"지배된다는 것은 감시받고, 조사받고, 염탐받고, 지시받고, 법률의조종을 받고, 숫자가 매겨지고, 규제되고, 등록되고, 사상이 주입되고,전도되고, 통제되고, 점검받고, 판단되고, 평가받고, 검열되고, 지휘를받는 것이다. 그럴 권리도 지혜도 인품도 없는 자들에게 말이다."


프루동의 이 발언은 정부 당국에 실망하거나, 개인적 성취가 무산된 것을 정부의 탓으로 돌리는 이들에게 깊은 호소력을 발휘했다. 아나키즘이 전염성을 획득하기까지는 약 40년이라는 시간이걸렸으나, 놀랍게도 이는 오늘날까지 이어질 만큼 어마어마한 지속력을 지니고 있다. 실제로 비트코인닷오알지Bitcoin.org 웹사이트에는아나키스트인 스털린 루한sterlin Lujan의 2016년 선언문이 게시되있다.


"비트코인은 평화적 무정부주의와 자유의 촉매제다. 부패한 정부와 금융기관에 저항하기 위한 것이다. 비트코인은 단순히 금융 기술을 개선하기 위해 창조된 것이 아니다. 그러나 혹자들은 이러한 진실을 호도하고 있다. 비트코인은 화폐 무기로서 기능하기 위한 것이며, 암호화폐는 정부의 권위를 쇠퇴시킬 준비가 되어 있다."


***


권력으로부터 자유로운 '탈중앙화된 금융시스템'에 대한 환상(35쪽).


비트코인의 가격은 2011년, “우리가 99퍼센트다!"라고 외치던 월 스트리트 점거 시위와 맞물려 처음으로 상승하기 시작했다. 미국에서 처음으로 월 스트리트 점거 시위를 시작한 사회운동 단체인 애드버스터스Adbusters는 그들의 메시지가 바이럴이 되길 원했고, 점거 시위는 곧이어 많은 국가들로 퍼져나갔다. 비트코인 내러티브에 개인의 임파워먼트 발상이 담겨 있는 것은 우연이 아니다. 비트코인 내러티브에 따르면 비트코인은 익명으로 운영되며 정부의 통제와 관리, 권력으로부터 자유롭기 때문이다.

비트코인과 다른 암호화폐의 유행에 박차를 가한 또 다른 근본적인 내러티브는 컴퓨터가 인간의 삶을 점점 더 많이 통제한다는 생각이다. 21세기의 사람들은 아마존의 '알렉사Alexa', 애플의 ‘시리 siri', 알리바바의 '티몰지니 Tmall Genie'처럼 인간의 언어를 이해하고 인간과 비슷한 목소리로 질문에 적절히 답변할 수 있는 자동화 비서를 사용할 수 있게 되었다. (중략) 비트코인은 적어도 겉으로는 첨단기술에 숙달할 수 있을 거라는 상상 가능한 희망을 준다.


5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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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이건 대통령을 현혹한 래퍼곡선 내러티브(90~91쪽).


래퍼곡선 내러티브는 처음 래퍼가 이 이론을 주창한 1974년에는 바이럴이 되지 않았다. 래퍼곡선이 유행하게 된 것은 주드 와니스키 Jude Wanniski의 1978년 저서 『세계가 움직이는 원리 The Way the World Works』에 수록된 일화 덕분이었다. <월스트리트 저널>의 논설위원이었던 와니스키는 래퍼가 1974년에 워싱턴 DC에 있는 레스토랑에서 당시 백악관의 유력 인사였던 딕 체니 Dick Cheney’와 도널드럼스펠드Donald Rumsfeld 와 함께 스테이크를 먹은 이야기를 생생하게 묘사한다. 그 이야기는 이렇다. 래퍼는 즉석에서 식당 냅킨에 그림을 그려 자신의 이론을 설명한다. 수년 후 와니스키가 죽은 뒤, 그의 부인이 남편의 유품에서 래퍼곡선이 그려진 냅킨을 발견하고, 현재 그 냅킨은 국립 미국사 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다. 박물관 웹사이트에서 박물관 큐레이터인 피터 리브홀드Peter Liebhold는 이 냅킨에 대해 이렇게 설명하고 있다.


"박물관 큐레이터라면 누구나 외관상 흥미로울 뿐만 아니라 미국 역사에서 가장 중요한 순간을 상징하는 근사하고 이름 있는 유물을 찾아다니기 마련이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그런 유물이 실제로 존재하는 경우는 매우 드물고, 가끔은 최고로 칭송받던 이야기들마저 거짓으로 드러나기도 한다. 하지만 때때로, 진짜 금광을 발굴할 때가 있다. 나는 정말 운이 좋게도 미국 비즈니스 역사에 관한 아주 놀라운 이야기를 정치적 변화와 경제적 혁명, 그리고 사회적 영향을 의미하는 이야기를 발견할 수 있다. 이건 진짜배기였다."


문제는, 래퍼 본인이 그 냅킨 이야기를 부인했다는 것이다. 그의 글을 읽어보자.


"와니스키가 쓴 내 일화에 관한 유일한 의문은, 그 레스토랑에서는 천으로 된 냅킨만 사용하며 우리 어머니는 내게 좋은 물건을 망가뜨리면 안 된다고 가르쳤다는 것이다. 하지만 뭐, 어쨌든 나에 관한 이야기니까 진짜 그랬던 척 해야겠다!"


래퍼는 정직했지만, 그의 솔직한 말로도 이런 좋은 이야기가 퍼지는 것을 멈출 수는 없었다.


https://www.joongang.co.kr/article/21523486#home


시각적 보조 매체의 힘

그렇다면 래퍼의 냅킨 이야기는 어떻게 바이럴이 된 걸까? 부분적으로는 좋은 스토리텔링 덕으로 보인다. 와니스키의 이야기가 폭발적인 반응을 일으킨 뒤에 래퍼는 4년 전에 있었던 일이라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고 말했다. 그러나 와니스키는 좋은 이야깃거리를 알아보는 안목을 지닌 유능한 저널리스트였다. 와니스키가 제시한 핵심 아이디어는 확실히 효과적이었다.


***


긴박감과 깨달음이 주는 충동(93~94쪽).


래퍼곡선의 냅킨 이야기가 바이럴이 된 이유는, 이 래퍼곡선이너무나도 중요하고 충격적이라 경제학 교수가 고급 레스토랑에서정부 관리들에게 어서 빨리 사실을 깨우쳐주고 싶었다는 데에 있다. 결국 이 내러티브가 전하는 긴박감과 깨달음 때문이다.


더불어 이야기에 담긴 풍부한 시각적 이미지는 경제학과 관련된단순한 일화가 장기 기억으로 진화할 수 있게 도와주었다. 냅킨이라는 시각적 세부 사항은 사람들이 내러티브를 잊는 속도를 늦췄고, 망각률을 감소시켜 더 큰 인구 집단까지 유행병처럼 번져나갈수 있게 했다. 바이럴 이야기를 만들고 싶은 사람이라면 여기서 배워야 할 중요한 교훈이 하나 있다. 청중에게 이야기를 각인시키고싶다면 인상적인 시각적 이미지를 제시하라. 고대 로마의 키케로의원도 시인 시모니데스를 인용하면서 그런 전략을 강조했다.


"시모니데스는, 혹은 이 예술을 발명한 사람이 누구든 간에, 현명하게도 이러한 것들이 감각에 의해 우리의 마음속에 가장 강력하게 고정되고, 전달되고, 각인된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또한 그는 그중에서도가장 예리한 것은 바로 시각이라고 했다. 그리하여 귀로 듣거나 머리로이해한 것에 상상력을 더하여 마음의 눈으로 그린다면, 가장 쉽고 오래간직할 수 있음을 알고 있었다."


실제로 심리학이나 마케팅 저널에 따르면, 일부 환경에서는 기이한 심상적 이미지가 기억의 보조물로 작동한다! 이를테면 기억력 훈련가인 해리 로레인 Harry Lorayne은 기억력을 향상시키고 싶다면 구체적이고 독특한 시각적 심상 이미지를 활용해야 한다고 오랫동안 주장해 왔다. 그는 열쇠를 어디다 놨는지 자꾸만 잊어버리는 사람들에게 이렇게 충고했다.


"열쇠를 화분에 놓은 다음, 제일 중요한 열쇠와 그것을 놓아둔 장소의 이미지를 머릿속에 떠올린다. 그런 다음 그것을 황당하거나 우스꽝스러운 이미지로 변형한다. 예를 들면 화분에서 커다란 열쇠가 자라는 광경을 눈앞에 '그리는' 것이다!"


뇌신경학에서 입증했듯이, 장기기억을 형성할 때는 시각 정보를 처리하는 부위를 비롯해 뇌의 여러 부위가 한꺼번에 활성화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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