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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홍춘욱 Dec 30. 2021

"노동에 대해 말하지 않은 것들" - 긱 노동 이야기

전통적인 노동조합 운동이 왜 설길을 잃어가는가?


얼마전 서평을 올렸던 "전라디언의 굴레"에 이른바 '광주형 일자리'에 대한 서술이 나옵니다. 


광주에서 생산되는 캐스퍼가 경차급 SUV라는 게 문제다. 국내 경차 시장은 빠른 속도로 쪼그라들고 있다. 기아차 모닝/레이와 한국GM 스파크의 합산 판매량은 2019년 11만 3천대에서 2020년 9만 5천대로 줄었다. 국내에서 경차가 갖아 많이 팔렸던 2012년의 21만 8천에 비하면 절반 수준이다. (중략)
사업 전망이 불투명한 게 뻔한데도 광주시가 캐스퍼 생산을 받아들인 것은 현실적으로 현대차 그룹이 배정할 수 있는 차종이 없기 때문이다. 전기차는 현대차의 미래가 달린 신기술인데다, 생산물량의 추가배정을 요구하는 울산 공장 몫이다. (중략)
경차급 SUV는 현대/기아차 노조의 이해관계가 걸려 있지 않다. 현재 기아차의 모닝/레이를 충남 서산에 있는 위탁생산업체 동희오토가 만들고 있기 때문이다. 광주형 일자리와 경쟁하는 건 동희오토, 동희오토에 파견근로 형태로 일하는 노동자와 서산시다. (184~185쪽)


기존의 현대 정규직 근로자보다 낮은 임금을 수용하는 대신 제조업의 불모지인 광주에 일자리를 만들어보자는 '광주형 일자리'의 현실이 잘 드러납니다. 그런데, 오늘 소개하는 책 "노동에 대해 말하지 않는 것들"에 다음과 같은 대목이 나옵니다. 


그러나 연봉이 현대차의 반값이라는 광주형 일자리의 생산직 신입사원 채용 경쟁률은 2021년 1월 67.8대 1, 3월에는 31.4대 1에 이르렀다. '좋은 일자리가 씨가 마른' 상황에서 (현대차 노조의) 정년 연장 요구는 논쟁의 소지가 있다. (256쪽)


이게 한국 노동시장의 현실이죠. 철밥통을 챙겨든 정규직 노동조합은 "이대로 영원히"를 외치면서 정년 연장을 요구하고, 그들이 받는 임금의 절반에도 미치는 임금을 주는 일자리를 둘러싸고 2030들은 치열한 경쟁을 펼칩니다. 이뿐만 아니라 기아차 노조원들은 "장기근속자의 자녀를 우선 채용"한다는 노사 단체 협약의 조항을 사수하기 위해 노력 중이죠. 


https://www.asiatime.co.kr/1065578087030152 


이른바 'K불평등'을 이보다 더 강하게 보여주는 사례는 없을 것 같습니다. 대체 우리의 '민주노조'는 어디로 가고 특혜를 요구하는 이기적인 집단이 남았을까요?

노조의 태도 변화를 유발한 직접적인 원인은 기술 혁신의 파도에 있습니다. 아래 <그림>은 "노동에 대해 말하지 않는 것들"의 110쪽에 나온 것으로, 내연기관 자동차에서 전기차로 전환될 때 어떤 일들이 펼쳐질지 보여줍니다. 전기차는 내연기관 자동차와 달리 엔진/변속기가 필요 없습니다. 따라서 필요한 부품 수도 내연기관에 비해 대폭 줄어들죠. 전기차 생산이 본격화되어 전기차 전용 라인이 설치되며, 이전보다 훨씬 조립에 필요한 인력이 줄어들 것입니다.  



"노동에 대해 말하지 않는 것들"의 110~111쪽에 다음과 같은 대목이 나옵니다. 


이런 변화를 둘러싸고 첨예한 전선이 펼쳐지는 곳이 바로 현대차다. 2017년부터 2025년까지 현대차의 베이비 붐 세대 1만 7,500명이 줄줄이 정년 퇴직한다. 이 중 1만 4천 명이 생산직이다. 꽤 대규모 인원인데, 신규 채용 없이도 공장이 돌아갈까?
회사측은 '문제 없다'고 본다. 기존 현대차 정규직의 노동강도가 그리 높지 않기 때문이다. 현대차 울산 공장의 경우 편성효율이 55% 수준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는 해외공장의 90%대에 비해 훨씬 낮다. 남은 직원을 정년퇴직자 때문에 비는 공정에 전환 배치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커버할 수 있다는 논리다.


적나라합니다. 

저도 현대차의 분석에 동의합니다. 해외 현지 공장을 방문했을때, 생각보다 인력이 적고 또 교육 수준이 상대적으로 낮은 것을 보고 크게 놀란 바 있었거든요. "대부분 고졸 혹은 그 이하 학력자이며, 근속년수도 평균 2~3년 정도에 불과한데 생산 효율은 울산공장보다 높다"는 게 현지 공장 관계자의 전언이었습니다.

이런 과잉 고용 문제를 정년퇴직 덕분에 털 수 있게 되었는데, 노조원 자녀들에게 우선 취업을 보장한다는 규정을 유지하고 싶을리가 없죠.  특히 전기차로 인해 필요한 노동력이 줄어드는 데 말입니다. 물론 노동조합의 입장은 다를 것입니다. 조합원의 소득을 높이고, 고용안정을 확보하는 게 최우선일테니까 말입니다. 


그런데, 우리 2030의 미래는 어떻게 될까요? 

파괴적인 혁신이 진행되는 가운데 생산성이 향상되며, 필요로한 일자리는 줄어듭니다. 특히 현대차 같은 기업들은 강력한 노동조합이 존재하는 한국대신, 해외의 공장을 짓는 방향으로 선회했죠. 그런데.. 우리는 '저출산' 때문에 나라 망한다는 이야기를 종종 듣습니다. 지금 2030들에게 제대로 된 일자리를 공급해주는 데 실패해, 수 백만의 공시족들이 지금도 노량진에서 청춘을 보내는 것을 애써 무시하면서 말입니다. 지금 2030이 결혼하지 않고 또 아이를 낳지 않는 원인을 전혀 쳐다 보지 않죠. 


요즘 한국 저자들이 연이어 좋은 책을 발간해, 기쁩니다. 물론 한국의 현실은 대단히 비관적입니다만, 이렇게 상처를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책들이 나옴으로써 어떤 대안이라도 제시될 수 있지 않을까 기대해 봅니다. 


즐거운 독서, 행복한 인생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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