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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홍춘욱 Dec 31. 2021

어떤 조건에서 민주주의가 발전할까? - "좁은회랑"

국가의 힘과 사회의 힘이 균형을 이룰 때 민주주의가 발전한다

얼마전 소개한 책 "지금 다시 계몽"에서 흥미로운 그림을 하나 보았습니다. 아래의 <그림>은 1800년 이후 최근까지 민주정부와 전제주의 정부의 비율 변화를 보여줍니다. 10이면 가장 민주적인 정부, 반대로 -10이면 가장 전제적인 정부를 뜻합니다. 


언뜻 보기에는 민주적인 정부(6점 이상으로 평가되는 정부)가 점점 더 많아지는 것처럼 보입니다. 1971년 31개국이던 민주주의 국가(6점 이상)는 베를린 장벽 붕괴 당시 52개국으로 늘어났고, 2009년에는 87개국이 되었습니다. 데이터 상 마지막인 2015년 민주주의 국가는 103개국에 이릅니다. 2015년 말 민주주의 국가는 세계 인구의 2/3를 아우르는데, 1950년에는 이 비율이 2/5에도 미치지 못했으며, 1900년에는 1/5, 1850년에는 7%, 1816년에는 1%에 불과했다고 합니다. 참고로 전제제에 거주하는 사람 중 4/5가 중국에 살고 있다고 하네요. 

이 대목에서 한가지 의문이 제기됩니다. 


대체 왜 중국은 예외적인 존재인가? 이 문제에 대해 많은 학자들이 궁금증을 느낍니다. 소득 수준이 높아지며 주변 나라와의 교류가 늘어날수록 민주주의적인 제도에 대한 열망이 높아질 것이라는 외부의 전망은 헛된 것으로 밝혀지고 말았습니다. 


이 의문에 대해 많은 학자들이 답을 찾기 위해 뛰어들었고, 대런 애쓰모글루와 제임스 A. 로빈슨이 쓴 책 "좁은 회랑"은 여러 노력 중에 가장 성공적인 사례라 할 수 있겠습니다. 


이 책을 통해 저자들은 "국가는 두 가지의 중대한 위협에 시달린다"고 지적합니다. 첫 번째 위험은 권력이 너무 약할 때, 사회는 ‘만인의 만인에 대한 투쟁’으로 돌입하고 개인의 생명과 재산이 위협받는 것입니다. 너무 많은 자유가 오히려 자유를 제한하는 역설에 빠지는 셈이죠다. 공권력보다 마약 카르텔이 강력한 일부 남아메리카 국가를 예로 들 수 있습니다. 44쪽의 한 대목을 인용해보겠습니다. 


“가장 뚜렷한 역사적 증거는 고고학자들이 형체가 손상된 유골을 보고 추정한 전쟁통의 죽음과 살인에서 발견된다. 어떤 인류학자들은 아직 남아 있는 무국가 사회에서 이를 직접 관찰했다. 1978년 인류학자 캐럴 엠버는 수렵 채집사회에서 전쟁의 빈도가 매우 높았다는 사실을 체계적으로 밝혀 냈다. 이 사실은 그녀처럼 ‘평화로운 야만인들’을 상상하던 학자들에게 충격이었다. 

엠버는 그녀가 연구한 사회 중 2/3에서 적어도 한 해 걸러 한번은 일어날 정도로 전쟁이 빈번했다는 것을 발견했다. 그들 중 단 10%만 전쟁을 하지 않았다. 스티븐 핑커는 로런스 킬리의 연구를 바탕으로 지난 200년에 걸쳐 인류학자들이 연구한 27개의 무국가 사회에서 증거를 수집했다. 그는 폭력으로 인한 사망자를 10만 명 당 500명 이상으로 추산했는데, 이 사망률은 오늘날 미국의 100배가 넘고 노르웨이의 1천배 이상이다.” 
세로 축은 인구 10만 명 당 한 해 동안 살해 당한 사람의 숫자를 나타낸다.


반면, 국가가 과도한 권력을 가지면 국민의 자유는 제한됩니다. 사실상 독재국가라 할 수 있는 수많은 나라들을 예로 들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이런 나라에서는 부족사회 혹은 무국가 사회에서보다 더 많은 사람들이 목숨을 잃기도 합니다. 책의 54~56쪽을 인용해보겠습니다. 


“1959년 11월 1일 광샨현의 공산당 서기 장푸홍은 집단구타를 당했다. (중략) 그에게 달려들어 주먹질과 발길질을 했다. 그는 피투성이가 되도록 맞았다. (중략) 공격은 그날 이후로도 계속되어 11월 15일에는 신체 기능에 대한 통제력을 잃었고 더는 먹거나 마실 수도 없었다. 그러나 그날도 그는 폭행을 당했고, 결국 11월 19일 사망했다. 이 비참한 이야기는 양지셩이 그의 책 “묘비”를 통해 들려준 것이다. (중략) 양지셩의 아버지는 1950년대 후반 중국에 닥친 대기근 때 죽었는데 당시 중국에서 굶어 죽은 이들은 4천 5백만 명에 이른다. 양지셩은 이렇게 전한다.

굶주림은 질긴 고통이었다. 사람들은 들풀을 모두 먹어 치웠고, 나무껍질까지 벗겨 먹었으며 새똥과 쥐, 솜으로도 배를 채웠다. (중략) 굶어 죽은 사람의 시신, 심지어 자기 가족 중 죽은 이들의 몸은 절망적인 사람의 먹을거리가 되었다.

이 시기 중국인들의 삶은 악몽과 같았다. 그러나 이들의 고통은 ‘국가의 부재’ 때문이 아니었다. 민중이 겪은 고초는 국가가 계획하고 집행한 것이었다. 장푸홍은 그가 속한 공산당 동지들에게 맞아 죽었고, 그를 제일 먼저 폭행한 이는 그 현의 당서기였다. 장푸홍의 범죄 협의는 ‘우경’ 및 ‘타락 분자’였다. 심각한 기근에 대한 대책이 필요하다고 주장한 것이 화근이 되었다. 중국에서는 기근을 언급하기만 해도 ‘대풍작’을 부인하는 자라는 꼬리가 붙었고, 때려 죽인다는 말의 다른 표현인 ‘투쟁’의 대상이 되곤 했다.” 


이와 같은 끔찍한 살례를 보면, 무정부 국가도 문제이지만 전제주의적인 국가도 국민들을 너무나 힘들게 만든다는 것을 느끼게 됩니다. 


그럼 어떻게 해야 민주 국가가 될 수 있을까요? 이에 대해 대런 애쓰모글루와 제임스 A. 로빈슨 교수는 민주주의 국가로 나아가려면 국가와 사회가 둘 다 강해야 한다고 지적합니다. 폭력을 억제하고, 법을 집행하며, 사람들이 스스로 선택한 것을 추구할 역량을 갖고 살아가는 데 꼭 필요한 공공서비스를 제공하려면 강력한 국가가 필요합니다. 그러나 강력한 국가를 통제하고 제약하려면 강력하고 결집된 사회가 필요하죠. 책의 133쪽 부분을 인용해보겠습니다. 


<도표 1>에서 원점에 가까운 지점에서 출발하는 강력한 국가나 사회가 존재하지 않는 전근대 사회를 생각해보자. 그래프 왼편 바닥 부근에서 퍼져 나가는 화살표들은 시간의 흐름에 따라 국가, 사회 그리고 그들의 관계가 어떤 경로로 발전하는지 보여주는 서로 갈라진 궤적을 보여준다. 

레바논 같은 사회에서는 국가와 엘리트 층이 정치적인 위계에 반대하는 사회적 규범에 비해 너무나 허약하므로 이 경로로 가면 결국 리바이어던이 부재하는 상황에 이르게 된다. (중략) 분쟁을 해결하고 규율하는 제도적인 수단이 없는 상황에서 규범은 온갖 기능을 떠맡지만, 그 과정에서 자체적으로 사회적 불평등과 개인에 대한 다양한 형태의 숨막히는 제약을 만들어 낸다. 

다른 한편으로는 국가와 엘리트의 권력이 더 큰 지점에서 출발해 독재적인 리바이어던이 출현하는 경우, 즉 중국이다. (중략) 독재적인 권력은 족쇄를 차지 않기 위해 사회를 무력화하려 노력하면서 이런 경향은 더욱 강화된다. 


한국은 이런 면에서 운이 참으로 좋았던 셈입니다. 시민사회가 성장하면서 '독재적 정부'를 견재하고 또 균형을 어떻게든 만들어 냈으니 말입니다. 물론, 이 균형은 항구적인 것이라 생각하지 않습니다. 한국의 균형은 언제든지 위협받을 수 있는, 아직은 취약한 부분이 많기 때문입니다. 


다음 시간에는 중국이 끊임없이 반부패 운동을 벌이고, 앤트그룹 같은 거대 민간기업의 힘을 빼려는 이유에 대해 살펴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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