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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홍춘욱 May 01. 2023

세계화의 종말과 새로운 시작 - 조선붐은 어떻게 꺼졌나

세계 최대의 컨테이너 해운 선사, 머스크라인의 베팅이 위기를 촉발하다! 


제가 모 은행 딜링룸에서 일하던 시절, 이른바 남동 해안 벨트는 조선소로 뒤덮혔습니다. 목포에서 울산까지 수심이 깊은 만 곳곳에 골리앗 크레인이 숲을 이뤘죠. 강력한 조선 붐의 뒤에는 아래 <그림>에 나타난 것처럼, 전세계 해상운임의 폭발적인 상승이 있었죠. 


2008년 해상운임이 역사상 최고 수준까지 치솟았던 이유는 세계 최대의 컨테이너 해운선사, 머스크라인의 베팅이 있었다고 합니다. 최근 읽은 책 "세계화의 종말과 새로운 시작" 덕분에 그간 몰랐던 세상의 비밀을 알게 된 것 같아 기쁩니다. 


Baltic Exchange Dry Index - 2023 Data - 1985-2022 Historical - 2024 Forecast - Price (tradingeconomics.com)


***


"세계화의 종말과 새로운 시작"의 228~229쪽을 보면 2003년 머스크라인의 대규모 투자 원인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덴마크의 해운회사 머스크라인은 2003년 280척의 컨테이너선을 소유하고 30개의 항구에서 터미널을 운영하며, 심지어 선적 컨테이너를 제작하는 두 개의 공장도 소유하고 있었다. 머스크라인의 선단은 거의 최대 능력치로 운영됐으며 이익도 좋았다.

머스크라인의 경영자들은 해운업계가 전체적으로 순조롭게 성장할 것으로 전망했다. 그러나 2003년 초반 몇 달 사이에, 머스크라인이 이러한 성장 대열에 참가하지 못할 수도 있다는 우려가 제기됐다. 새로운 선박이 없다면 머스크라인은 경쟁사의 확장을 지켜보는 수밖에 없었다. 만약 그런 일이 벌어진다면 경쟁사에 비해 컨테이너당 비용이 높아져 수익은 낮아지고 결국 시장 점유율이 하락할 것이었다. 하지만 새로운 선박을 확보할 수 있다면, 40피트짜리 컨테이너를 매주 태평양 횡단 노선에 8천 개, 수에즈운하 통과 노선에 7천 개 추가적으로 운송하여 2008년까지 전체 수송 횟수를 25퍼센트 이상 증가시킬 수 있을 것으로 추정했다. (중략)

2003년 6월 18일, 머스크라인의 경영진은 새로운 선박 건조를 위한 제안서를 작성할 목적으로 비밀 위원회를 구성했다. 열다섯 명의 위원들은 “당신은 특히 업무 중 적재량 경쟁에서 앞서는 것이 우리 회사에 이익이 된다는 것을 고려해야 하며, 여기에는 가급적이면 특허를 받을 수 있는 혁신적인 기능을 포함시켜야 한다"라는 기밀 메모 지시를 받았다.


머스크라인이 이런 낙관론에 빠져든 이유는 바로 중국의 성장 때문이었습니다. 세계의 공장으로 부상한 중국과 유럽 사이의 물동량이 폭발적으로 늘어나면서 해상운임이 상승할 것이라고 예상했던 것입니다. 이들이 건조하기로 결정한 새로운 배는 '유로맥스' 규격으로 알려져 있습니다(책 231쪽).


위원회는 새로운 선박(Euromax)의 길이는 약 402미터로 미식 축구장 4개보다 길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갑판에는 나란히 18~22개의 컨테이너가 적재돼야 했는데, 이는 당시 가장 큰 선박의 두 배에 이르는 규모였다. 컨테이너들은 각 선창에 9단 또는 10단 높이로 적재돼야 했다. (중략)

위원회는 이러한 선박은 여러 가지 한계가 있을 것이라는 점을 알고 있었다. 구상된 선박은 너무 커서 작은 배와 비교했을 때 화물을 하역하고 적재하기가 더 복잡했다. (중략) 뉴욕, 함부르크, 나고야와 같은 주요 항구도 이 배가 정박하기에는 수심이 얕았다. 이 선박은 단지 아시아-유럽 루프에서만 적절하기 때문에 유연성이 없었다. 파나마운하를 통과할 수 없었으며, 태평양을 가로지르는 머스크의 항로에 투입하기에는 너무 컸다. 이 배의 수리 작업을 수행할 수 있는 수용력이 충분한 드라이도크를 보유한 조선소도 세계적으로 몇 군데 되지 않았다.

그러나 유로맥스는 머스크라인이 절실히 필요로하는 추가적인 선복량을 제공해, 세계시장 점유율을 높이고 가장 수익성 높은 해운업체로서의 위상을 되찾게 할 것이었다.


야망에 찬 설립 계획이었고, 이는 다른 경쟁자들에게 조바심을 느끼게 만들었죠. 머스크라인의 보조적인 역할을 수행할 생각이 없었던 다른 해운사들은 그들도 대형 선박을 발주해야 한다는 압박에 시달렸습니다. 해운선사의 이 같은 연쇄적인 행동은 운임의 상승은 물론, 거대한 선박 건설 붐이 불었습니다(236쪽).


최초의 유로맥스 급 컨테이너 선 엠마호가 진수된 이후, 한 달 동안에만 5개의 아시아 조선소가 확장 계획을 발표했다.엠마호가 진수된 지 16개월 후인 2007년 말까지, 선주사들은 1만개 이상의 컨테이너를 적재할 수 있는 컨테이너선 118척을 주문했다. 이런 규모의 선박은 2년 전에는 유로맥스를 제외하면 단 한 척도 없었다. 규모의 장점은 모든 사람을 사로잡았고, 조선소를 계속 운영하려는 정부가 저금리와 관대한 보조금을 제공한 덕분에 매우 매력적인 가격으로 선박을 건조할 수 있었다.

새롭게 등장한 대형 선박에 맞춰 육상 기반시설과 항구는 새로운 요구사항에 맞춰져야 했으며, 더 대형화된 크레인, 추가적인 터미널 게이트, 더 많은 고속도로와 더불어 대양에서 부두로 진입하기 위한 더 넓고 깊은 수로를 갖추어야 했다.하지만 어떤 해운사도 새로운 선박을 주문할 때 이러한 비용을 고려하지 않았다. 해운사 입장에서 보자면 새 배를 도입하지 않을 이유가없었다. 세계의 상선 선단은 거의 하룻밤 사이에 재편성됐다. 2010년에는, 2006년 컨테이너 물동량의 1.5배를 훨씬 저렴한 비용으로 운송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됐다.

코펜하겐의 머스크라인 경영진은 그들이 촉발한 선박 군비 경쟁에 대해 다시 생각하기 시작했다. 해운사가 확실하게 선 약속을할 때에만 선박을 건조하던 유명한 함부르크 선박회사도 용선 계약없이 한국 조선소에 1만 3000TEU급 선박을 발주했고, 엠마 머스크호보다 훨씬 더 큰 선박을 계획하고 있음을 발표했다. 당시 머스크라인의 공동 CEO였던 크누트 스텝키에르Knud Stubkjaer 는 2007년 4월 동료에게 "이것은 매우 나쁜 소식입니다. 시장에 이런 투기적인 과잉용량이 투입되면 업계 전반에 매우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게 된다는 것을 알려야 합니다"라고 썼다.


결국 파국의 순간이 왔습니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는 해상 운용의 감소로 연결되었고, 한국의 한진해운을 비롯한 세계 유수의 해운선사가 연쇄적으로 파산했습니다. 이결과, 해상운임은 2008년 고점의 1/10 이하 수준으로 떨어지고 말았죠. 


물론 최근 다시 해운산업이 살아나고 있으며, 한국의 조선소들도 정말 오랜 만에 흑자로 돌아섰습니다. 그러나, 해운업 및 조선산업이 어떤 동학으로 움직이지는 이해하지 못한다면, 2008년 에 겪었던 파국을 다시 겪을 수 있음을 생각할 필요가 있을 것입니다.


'대규모 수주로 흑자시대 열었다' 뱃고동 울리는 조선株 | 서울경제 (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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