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장 접근성이 지난 70년간 비약적으로 개선되었기 때문!
오늘은 최근 흥미롭게 읽은 책 "위어드"에 대한 세 번째 서평입니다. 참고로 위어드란, WEIRD. 즉 서구의(W) 교육수준이 높고(E) 산업화된(I) 부유하고(R) 민주적인 사회(D)의 구성원을 뜻합니다.
이번 시간에는 세계 각지에서 이뤄지는 흥미로운 실험, 바로 독재자 게임을 활용해 사회 마다 가치관이 얼마나 다른지.. 더 나아가 왜 달라지는 지 설명합니다. 위키를 보면, 독재자 게임을 다음과 같이 묘시하고 있습니다.
기본적으로 독재자 게임에는 두 명의 참여자가 등장해 돈을 분배한다. 1번 참여자가 돈을 어떻게 분배할지 제안하면, 2번 참여자는 이를 받아들이거나 거절 할 수 있다. 만약 2번 참여자가 '거절'을 선택하면 두 사람 모두 한 푼도 받지 못한다. 하지만 2번 참여자가 '수용'을 선택하면 1번 참여자의 제안에 따라 돈이 분배된다.
통상적으로 두 명의 참여자에게 100달러를 주고, 한 사람은 돈을 어떻게 나눌 것인지를 제의하고 다른 한 사람은 이 제의를 받아들일 것인지를 판단하는 식으로 이뤄집니다. 예를 들어, 제가 100달러 중에 90달러를 가지고 나머지 10달러 만을 다른 사람에게 준다고 제의했을 때 이를 받아들이느냐의 문제입니다. 만일 받아들이면 저는 90달러, 다른 사람은 10달러를 들고 헤어집니다. 반대로, 그가 저의 제안을 거절한다면 둘 다 한 푼도 못 받고 헤어집니다. 참고로 각 사회마다 돈의 가치가 다른 만큼, 구매력을 평가해 지역마다 제시되는 금액은 달라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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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실험은 세계 어디에서 진행되느냐에 따라, 결과가 완전히 달라진다고 합니다(책 372쪽).
WEIRD 사회에서는 25세 이상 성인의 대부분이 절반(50달러)를 제안한다. 40%(40달러) 이하의 제안은 종종 거절당한다. 평균 제시액은 약 48달러 정도다. 이 인구 집단에서 10달러를 제시하는 것은 나쁜 짓으로 받아들여진다.
저도 이쪽입니다. 돈 못 받으면 어때! 기분 나쁜 행동을 하는 자를 응징하겠다! 이런 생각을 가지고 있죠. 즉 공정성에 대한 편향이 꽤 높습니다. 그러나 전혀 다른 문화권에 있는 사람들의 평균적인 제시액은 26%였다고 합니다(책 373쪽).
아마존에 살고 있는 수렵 민족인 마치겐카족은 대부분 26퍼센트에 달하는 돈을 제시했고, 한 명을 제외한 모든 이들이 이를 수용했다. 나는 최후통첩 게임에서 마치겐카 족이 WEIRD 사람들과 무척 다르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이후 이 책의 저자, 조지프 헨릭은 전세계를 다니면서 최후통첩 게임을 진행했습니다. 5대양 6대주에 걸친 27개 인구 집단을 대상으로 지속적인 테스트를 거친 결과, 아래와 같은 결과를 얻었습니다. <그림 9.2>의 세로 축은 평균적인 제시비율입니다(WEIRD 사회는 48%, 아마존 원주민은 26% 등). 가로 축은 시장과 연결된 정도를 뜻합니다.
저자들은 (1) 해당지역에서 하루치 임금으로 (2) 가정에서 기르거나 사냥한 것이 아닌 시장에서 구입한 음식으로 섭취하는 칼로비 비율을 '시장 통합도'로 보았습니다. 미국 등 선진국 사회는 이 비율이 100%에 가까울 것이며, 문명와 거리를 두고 있는 소규모 부족 집단은 이 비율이 0%에 가깝습니다.
시장 통합도가 높은 공동체에 속한 개인들은 왜 강한 '공정성' 경향을 보일까?
낮선 사람들이 자유롭게 경쟁적인 거래에 참여하는 이른바 '비개인적 시장'에서는 내가 시장 규범(Market Norms)라고 부르는 것이 필요하다. 시장 규범은 비개인적인 거래에서 자신과 타인을 판단하기 위한 기준을 확립하며, 낯선 사람 및 익명의 타인들과 신뢰, 공정, 협동을 위한 동기의 내면화로 이어진다. 이는 보통 돈과 익명성이라는 두드러진 단서와 함께 경제 게임에서 채택된 사회규범이다. 378~379쪽
말인 좀 어렵긴 한데, "다른 이가 나를 기본적으로 선의로 대할 것"이라는 기대를 깔고 상대를 만난다는 뜻입니다. 즉, 반복적인 거래 및 평판이 이뤄지는 환경이니 상대는 나에게 친절할 것이고 나는 그의 친절에 기꺼이 돈을 지불하는 식으로 이뤄지죠. 배달앱에서의 가게 별점이 상시적으로 이뤄지는 환경이 떠오릅니다.
따라서 시장의 규범은 기본적으로 다른 사람의 행동과 의도에 민감해집니다. 공정에는 공정으로, 신뢰에는 신뢰로, 협동에는 협동으로 대응합니다. 누군가가 이 룰을 어기면, 자신의 이익을 다소 희생하더라도 그를 질책하고 억제하는 사회적 힘을 발휘합니다.
물론 반대로, 가난한 아이들에게 친절을 배분 치킨집 사장님에게는 "돈쭐낸다"는 표현이 어울릴 정도의 호의가 쏟아집니다. 공정성에 대한 집착이 이뤄지는 사회는 많은 이점을 누립니다. 왜냐하면 사람들이 공정성을 달성할 수 있다면, 다소간의 불편도 참아내기 때문입니다. 즉 공정한 거래를 뒷받침할 다양한 규정과 제도를 만드는 데 사회적 자원이 투입되며, 이는 다시 선순환을 일으키죠. 점점 더 믿고 거래가 이뤄지며, 이는 다시 시장을 활성화시키고 사회의 만족감과 안정성을 높이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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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한 발 더 나아가 볼까요?
시장에 대한 접근성이 아예 없는 원주민 말고, 시장과의 근접성에 다양한 스펙트럼이 있는 원주민을 대상으로 실험하면 흥미로운 결과를 얻을 수 있다고 합니다. 아래의 <그림 9.3>에서 세로 축은 조건적인 협동 성향(시장규범의 정도)을 나타내며, 가로 축은 시장까지의 거리를 뜻합니다. 동일한 원주민(오로모족)이지만, 시장과의 거리가 가까운 사람들일수록 조건적 협력의 성향이 높은 것을 발견할 수 있죠.
52개의 오로모 족 마을은 공동으로 경작하는 토지를 따라 흩어져 있었는데, 갑자기 도로가 나며 큰 시장이 생기자.. 그들의 생활 패턴이 달라진 것은 물론 "자신의 집단만 우호적으로 대하는" 경향이 서서히 약화되었음을 시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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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사회가 왜 그렇게 세대간 갈등이 심한지.. 이 연구를 통해 알 수 있죠. 할아버지 혹은 큰 아버지 세대는 시장이 생기기 이전의 오로모족이나 크게 다르지 않았습니다. 멀리 여행하는 사람도 없고, 자신의 집단 이외의 사람들을 적대시했습니다.
그러나 지금 아들 및 손자세대는 대부분 대도시에 나와 살면서, 공정성에 대한 아주 높은 선호를 가지고 있습니다. 당연히 재산권에 대한 인식도 '집안 전체'가 우선이 아닌.. 내가 얼마나 지분을 가지느냐에 대해 관심을 지닙니다. 예전에는 큰아버지 혹은 큰할아버지가 문중의 재산을 독점적으로 관리하고, 그의 결정에 따라 분배가 이뤄졌지만.. 지금은 그랬다가는 큰일 납니다. 특히 큰아버지 및 큰할아버지가 어떤 잘못을 저질러, 집안의 재산을 축냈다면 그 반발은 더욱 커지겠죠.
이런 연유로 각 집안마다 재산싸움이 속출하며, 노인들과 자녀 손자 세대 사이에 심각한 갈등이 빚어집니다. 추석이나 설 같은 명절에 꽉 막힌 친척들 때문에 울화가 치민다는 하소연이 나는 이유가 이런데 있죠. 그러나, 집안 내 불화를 부추길지는 모르지만.. 사회 전체적으로 본다면, 재산권이 명확하게 이뤄지고 공정한 거래에 대한 집착이 이뤄지는 편이 더 나은 성과를 거둘 수 있다는 것도 인정이 필요하지 않을까 생각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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혹시 위어드에 대한 지난 서평을 못 보았다면 아래 링크를 클릭하시기 바랍니다.
위어드 - 인류는 책의 보급 이후 어떤 변화를 겪었나? (brunch.co.kr)
위어드(2) - 결혼제도는 인류 사회를 어떻게 바꿨나? (brunch.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