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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홍춘욱 Jul 30. 2023

이탈리아는 어쩌다 포퓰리즘 국가가 되었나?

feat(부의 빅 히스토리)

조귀동 작가의 책 "이탈리아로 가는 길"은 G7 국가가 어쩌다 포퓰리즘의 나라가 되었는지 보여줍니다. 90년대부터 시작된 정보통신 혁명, 그리고 Euro화 도입을 전후한 정부 부채 급증, 전통적인 좌/우파 정당의 붕괴 등이 복합적인 영향을 미쳤죠. 그런데, 이탈리아의 사태를 보다 더 자세히 이해하려면 그들의 역사적인 근원을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한국의 미래는 이탈리아형 포퓰리즘 국가인가? (brunch.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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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추천사를 쓴 책 "부의 빅 히스토리" 139쪽에는 <그림 4.5>가 소개되어 있는데, 북부와 남부 사람들이 완전히 다른 가치관 및 사회에 대한 신뢰 수준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특히, 저는 (a) 사촌간의 결혼 비율 (b) 신뢰도 부문이 매우 흥미로웠습니다. 


 (a) 사촌간의 결혼 비율과  (b) 신뢰도 사이의 연관이 매우 큰 것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사촌간 결혼 비율이 높을 수록 사회에 대한 신뢰는 떨어졌고, 그 반대 관계도 성립합니다. 이런 현상이 나타난 이유를 경제사 연구자들이 어떻게 해석하는 지 소개할까 합니다(137~138쪽)


(가톨릭) 교회는 친족의 유대를 깨뜨리고자 사촌 간 결혼을 금지했다(최대 14촌까지). 그 결과 교회의 영향력이 센 지역에서는 친족 집단이 작아졌고, 따라서 이런 지역에서는 친족이 아닌 이들과 협력하는 통치 기관이 만들어질 가능성이 컸다. (중략) 

중세 초기에 가톨릭교회의 영향이 한결 약했던 이탈리아 남부에서는 사촌 결혼 비율이 더 높고, 신뢰와 투표율(시민 관여의 잣대), 사법의 효율성이 모두 낮다.


사촌간의 결혼을 엄격하게 금지한 가톨릭 교회의 교리가 왜 사회의 신뢰도 그리고 사법 효율성 등에 영향을 미칠까요? 


그라이프(1994, 2006)는 전체 교역 수준이 소규모일 때는 친족 기반 문화가 교역망 구축에 유리하다고 주장한다. 친족 연결망과 교역을 하면서 속임수를 쓰는 이들을 서로 감시하고 벌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것은 친족 기반 문화의 주요한 이점이다.(중략) 

개인주의적 문화를 보유한 사회는 이런 식으로 속임수를 쓰는 이를 벌하지 못한다. 그러므로 이 사회는 속임수를 쓰는 이를 벌하고 신뢰를 촉진하기 위한 제도를 만들어야 한다. 이러한 제도는 만드는 데 비용이 들고, 교역의 규모가 작을 때는 그만한 가치가 없을 수 있다. 하지만 교역 기회가 점점 많아짐에 따라 제도 마련의 이득도 커지므로, 개인주의적 사회는 제도를 채택한다. 일단 제도가 자리를 잡으면 훨씬 많은 잠재적 거래 상대 집단과 교역할 수 있게 된다.

다른 한편, 친족 기반 사회의 협동은 점차 이들에게 불리하게 작용한다. 사적인 연결망에 의존하는 이 사회는 값비싼 공적 제도를 채택할 동기가 거의 없다. 하지만 그렇게 함으로써 이들은 교역 상대자를 친족 집단 내부 사람들로 제한하고, 외부 세계의 많은 이들과 교역을 포기한다. 



***



이는 제가 일전에 소개했던 책 "위어드"의 주장과 일맥상통합니다. 


"위어드"의 저자 조지프 헨릭은 전세계를 다니면서 최후통첩 게임을 진행했습니다. 최후통첩 게임이란, 참여자 A와 B는 주어진 돈(예를 들어 10만원)을 둘로 나누어 가지는 것인데, 이때 A가 돈을 어떻게 나눌지 제안하면 B는 A의 제안을 수락하거나 혹은 거절하는 식으로 진행됩니다. B가 수락하면 A와 B는 A의 제안대로 돈을 받고, B가 거절하면 A와 B는 둘 다 아무런 돈을 받을 수 없습니다.


5대양 6대주에 걸친 27개 인구 집단을 대상으로 지속적인 테스트를 거친 결과, 아래와 같은 결과를 얻었습니다. <그림 9.2>의 세로 축은 평균적인 제시비율입니다(WEIRD 사회는 48%, 아마존 원주민은 26% 등). 가로 축은 시장과 연결된 정도를 뜻합니다. 참고로 위어드(WEIRD)란 서구의(W) 교육수준이 높고(E) 산업화된(I) 부유하고(R) 민주적인 사회(D)의 구성원을 뜻합니다. 


저자들은 (1) 해당지역에서 하루치 임금으로 (2) 가정에서 기르거나 사냥한 것이 아닌 시장에서 구입한 음식으로 섭취하는 칼로비 비율을 '시장 통합도'로 보았습니다. 미국 등 선진국 사회는 이 비율이 100%에 가까울 것이며, 문명와 거리를 두고 있는 소규모 부족 집단은 이 비율이 0%에 가깝습니다.


시장 통합도가 높은 공동체에 속한 개인들은 왜 강한 '공정성' 경향을 보일까?

낮선 사람들이 자유롭게 경쟁적인 거래에 참여하는 이른바 '비개인적 시장'에서는 내가 시장 규범(Market Norms)라고 부르는 것이 필요하다. 시장 규범은 비개인적인 거래에서 자신과 타인을 판단하기 위한 기준을 확립하며, 낯선 사람 및 익명의 타인들과 신뢰, 공정, 협동을 위한 동기의 내면화로 이어진다. 이는 보통 돈과 익명성이라는 두드러진 단서와 함께 경제 게임에서 채택된 사회규범이다. 378~379쪽


말인 좀 어렵긴 한데, "다른 이가 나를 기본적으로 선의로 대할 것"이라는 기대를 깔고 상대를 만난다는 뜻입니다. 즉, 반복적인 거래 및 평판이 이뤄지는 환경이니 상대는 나에게 친절할 것이고 나는 그의 친절에 기꺼이 돈을 지불하는 식으로 이뤄지죠. 배달앱에서의 가게 별점이 상시적으로 이뤄지는 환경이 떠오릅니다.  


공정에는 공정으로, 신뢰에는 신뢰로, 협동에는 협동으로 대응합니다. 누군가가 이 룰을 어기면, 자신의 이익을 다소 희생하더라도 그를 질책하고 억제하는 사회적 힘을 발휘합니다. 



***


이탈리아는 강력한 지역색을 가지고 있으며, 북부와 남부는 서로를 혐오하고 증오합니다. 부유하고 개인주의적인 북부 사람들은 남부 사람들이 '자기 집안 사람만' 챙기는 경향이 있다고 비판하며, 그들이 사회의 규율을 제대로 따르지 않는다고 주장하죠.


반대로 남부 이탈리아 사람들은 북부 깍정이를 좋아하지 않습니다. 물론 남부 사람들은 '재분배 정책' 시행의 과실을 누리기는 하지만.. 세금 많이 낸다고 투덜 대는 북부 사람들을 혐오합니다. 


이 결과 이탈리아는 지역에 따라 지지 정당이 전혀 다릅니다. South(남부) 지역 사람들은 투표 기권율(검정선)이 압도적으로 높으며, 주류 정당에 대한 지지율(갈색선)도 매우 낮습니다. 즉 사회 전체에 대한 신뢰가 매우 낮죠. 


문제는 사회가 이런 식으로 찢어지고, 지지정당이 수시로 바뀌고, 연정에 의지한 취약한 정부 수립은 경제 전체의 장기적인 성장에 부정적 영향을 미칠 수 밖에 없습니다. 특히 사회 전체의 룰을 만드는 것은 대단히 힘들어지죠. 그 결과는 끊임없는 재정위기와 정치 불안정, 그리고 저성장의 결합이 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우리가 이탈리아 꼴이 나지 않으면 이와 같은 지역정치, 그리고 무당파의 증가, 정치 파트너에 대한 전면적 부정 등이 사라져야 합니다만.. 이게 참 쉽지 않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 슬프네요. 


https://mpra.ub.uni-muenchen.de/96416/1/MPRA_paper_96416.pd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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