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몬드> 서평
저는 눈물이 많아요. 한 번은 친구들이랑 영화를 보는데, 정말로 감동적인 장면에 눈이랑 코가 찡해져서 눈물을 짰던 기억이 있었어요. 그런데 친구들은 그 장면을 보면서도 멀뚱멀뚱. '이게 뭐가 감동이냐?'라는 표정으로 무덤덤하게 그 장면을 보고 있는 겁니다. 친구들이 내색하지 않은 건지 아니면 제가 감정이 풍부한 건지. 진실은 모르겠지만 저는 눈물이 많은 남자란 걸 확실히 알 수 있었습니다. 이런 경우가 한두 번이 아니었거든요, 사실.
그런데 또 모든 감정의 스펙트럼이 다양하느냐? 그건 아니에요. 화는 안 납니다. 분명 화를 참는 건 아닌데... 그냥 화가 잘 안 나요. 부처와 같은 마음가짐이 이런 걸까요? 아마 잘 우는 것만큼 화도 잘 냈으면 이리저리 왔다 갔다 하는 사람으로 보이기 딱 좋았겠죠.
저는 이게 단점인 줄 알았어요. 눈물이 많다는 것, 좋게 말하면 풍부한 감정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 말이죠. 슬프거나 감동적인 상황뿐만 아니라 억울한 상황이나 뭔가에 부딪혀야 하는 상황에 쳐했을 때 일단 눈물이 나올랑말랑 하는 겁니다. 눈가가 촉촉해지면 안 되는 상황에 몸은 말을 안 듣는다는 거죠. 지금은 이런 방어적 눈물을 어느 정도 컨트롤할 수 있어서 다행이지만요.
그런데 지금은 눈물이 많은 게 비극이란 생각을 버렸습니다. 대신에 불행일 수도 있고 다행일 수도 있다는 마인드로 바뀌게 됐죠. 바로 이 책을 읽고 나서 바뀌었습니다.
저는 소설을 잘 읽지 않아요. 비문학 책에서 얻을 수 있는 인사이트가 훨씬 많다는 편견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에요. 소설을 읽으면서 시간을 보낼 바에는 경제/경영 책이나 마케팅 책 한 권을 더 읽겠다는 게 저의 마인드였죠. 이런 편견을 와장창 깨부순 소설을 제가 우연히 읽게 되는데, 이 글에서 소개할 책인 <아몬드>입니다.
<아몬드>는 보통의 사람들보다 작은 '아몬드'를 가지고 있는 주인공의 성장기를 다룬 책이에요. 여기서 '아몬드'는 머릿속의 편도체를 의미합니다. 저자는 편도체를 아몬드로 비유하는데, 크기도 생긴 것도 딱 아몬드 같이 생겼기 때문이에요. 주인공은 선천적으로 아몬드가 작아서 아무런 감정을 느끼지 못하는 불능증을 가지고 태어납니다. 감정을 느끼지 못하니까 많은 부분에서 일상생활이 불가능했는데요, 이 불가능이 가능으로 만들어지기까지의 성장 스토리를 담고 있는 책입니다.
즉, 감정을 느끼지 못하는 '괴물'(이라고 책에서 묘사됩니다.)에서 '정상인'(이라고 역시나 책에서 말합니다.)으로 바뀌는 이야기인데요. 저는 이 책을 읽으면서 과연 '정상인이란 무엇일까'를 거듭해서 생각했습니다. 남들과 비슷하게 살아가는 게 정상인으로 사는 걸까요? 아니면 남들과 똑같이 행동을 맞추고, 똑같은 감정을 내비치며 공감하고, 맞춰주며 살아가는 게 정상인일까요?
답이 보이는 것 같으면서도 답이 없는 이 질문의 답을 구하려면, 우선 인간의 특징 하나를 알아야 해요. 우리 호모 사피엔스는 사회적 능력을 최대한 발휘해서 공공의 적을 만드는 종특을 가지고 있습니다. 집단의 결속을 위해 자신이 속한 집단에서 누군가를 따돌리고 혐오를 만들어 내기도 하죠. 겉으로 보면 누가 봐도 정상인 사람을, 괴물로 만드는 최고의 능력을 우리는 가지고 있습니다. 이런 능력을 소위 말해서 '뒷담화'라고 하죠. 감정을 이용해서 특정 사람을 안 좋게 바라보는 어떠한 '틀'을 만들어내는데 우리는 능숙합니다. 다만, 많은 사람들이 <카네기 인간관계론>의 가르침을 따라서 공격 능력을 십분 활용하지 않을 뿐이죠.
나는 엄마가 남긴 말들을 복기하며 힌트를 얻고자 했다. 가장 많이 했던 말이 떠올랐다. '정상적'으로 살 것.
<아몬드> (p.70)
아마 주인공의 엄마는 혐오의 대상이 되지 말라는 뜻으로 '정상적'으로 살라고 말한 게 아닌가 싶어요. 그래서 남들이 하는 말과 행동에 따라 어떻게 대응해야 하는지 주인공에게 지침을 내려주죠. 그런데 이게 과연 '정상인'으로 살아가는 길일까요? 남들에 비위에 맞춰서 자기 생각과 감정을 진정성으로 표현하지 못하는 게 과연 정상인일까요? 물론 주인공이 불능증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감안하면 저 행동이 잘못된 것은 아닙니다. 또 현실은 시궁창이라 똑같이 YES를 외치는 능력이 특정 집단에선 필요하죠. 하지만 작가님이 말하려고 했던 것은, 우리도 이렇게 남들에 맞춰서 살다 보면 결국 나다움을 잃은 '정상인'이 된다는 슬픈 이야기가 아니었나 싶어요.
남들이 어떤 말이나 행동을 한다고 해서 꼭 정해진 대응을 할 필요가 없잖아요. 사람은 모두 다르니까. 저자가 이야기하는 정상인이 되라는 말의 속뜻은 주인공과 우리에게 각각 다른 의미로 전달되는 것 같아요.
개인적으로 흥미를 가진 작품에 스포일러를 당하는 걸 굉장히 싫어해요. 진짜. 그래서 소설을 소개할 때도 책의 내용과 줄거리를 언급하는 것보단 그냥 책을 읽으면서 들은 생각들을 공유하려고 해요. 아래는 <아몬드>를 읽으면서 들었던 웃픈 생각들입니다.
이 책에서 주인공의 엄마는 한국 교육의 자랑인 주입식 교육에 들어갑니다. 특정 감정에 따른 반응을 하나하나 주입하듯이 가르쳐 주죠. 그 결과 주인공의 나이가 두 자릿수가 될 때 어느 정도 무리에서 튀지 않는 생활을 하게 됩니다. 그런데 갈수록 듣기는 잘 듣는데 말하기가 안 되는, Take는 잘하는데 Give를 못하는 문제가 발생하게 됩니다. 남에게 무엇을 주는 것은 그 사람의 특정한 감정을 기대하고 일어날 수 있는 행동인데, 주인공이 선천적으로 감정을 느끼지 못하니깐 주는 게 안 되는 겁니다. 주인공이 불능증을 앓고 있긴 해도, 주입식 교육의 페널티가 드러나는 것 같아 너무 슬펐습니다.
주인공의 엄마는 뇌과학 관련 책을 많이 읽어온 덕분에 의사들의 거짓말을 구별하게 됩니다. 다시 한번 독서의 중요성을 되새기고 갑니다.
자신이 살고 싶은 인생을 자식에게 투영시키는 부모님들. <아몬드>에서도 똑같은 이야기가 나옵니다. 할멈이 엄마에게 작가로 살아가라고 권유했다는 이야기가 나오죠. 어느 정도 선을 지켜서 '권유'하는 것은 괜찮습니다. 그 직업에 종사하는 사람이 어떤 멋진 삶을 살고 있는지 이야기하는 정도로요. 근데 '그냥 해라(Just Do it)식' 강요는 아이들에게 엄청난 스트레스를 주는 것 같아요. 저도 덕분에 스트레스 많이 받았던 기억이 있네요.
참 슬픈 게, 책에서 '소시민'으로 묘사되는 인물이 있거든요. 4년제 대학 졸업하고, 중소기업 14년 영업직으로 일하다가 경제 위기로 구조조정 직격탄을 맞고, 치킨을 튀기게 됩니다. 평범한 문과생의 테크트리죠. 분명 행복이란 없을 것 같은 삶이 평범한 소시민으로 정의된 게 씁쓸합니다... 그리고 제가 자연스럽게 '이런 삶이 평범한 소시민이 삶이지'라고 인정했다는 것도요. '?? 왜 이게 평범한 소시민이냐'라고 왜 의문을 던지지 않았을까요.
저는 이 책을 <사피엔스>와 함께 동시에 읽었습니다. (사실 <사피엔스> 읽다가 재미없어서 <아몬드>를 읽었다고 하는 게 맞지만요.) 그런데 <아몬드>를 읽다가 눈이 번쩍한 대목이 있는데, 주인공을 디오게네스로 비유했던 대목이에요. 디오게네스 이야기가 정확히 <사피엔스> 168페이지에 나옵니다. 유발 하라리가 냉소주의의 대표적 인물이 디오게네스라고 이야기한 페이지죠. 와 이걸 어떻게 기억했담. 창의성은 의식뿐 아니라 무의식적으로도 발휘된다는 게 사실이었네요.
전 세계에 계신 소설 작가님들께 사죄의 의미로 절 한 번 박겠습니다.
접니다. 이 책을 읽을 때 그랬어요. 앉은 순간 200페이지를 한 순간에 바로 읽어버렸습니다. 책이 재밌다 보니까 와우 레이드 뛸 때처럼 초인적인 집중력이 나오더라구요. 물론 이는 허리에 굉장한 부담이 되니, 30분에 1번씩은 의자에서 일어나 주변을 총총총 걸어줍시다. 아이고 허리야.
이게 다 소설을 멀리해서 그런가 봐요. 글을 좀 맛깔나게 쓰려고 하면 할수록 자연스럽지 않아요. 마치 홍대 치킨집에서 치맥만 즐기던 사람이 강남의 한 호텔에서 풀코스 요리를 고급스럽게 즐기려고 하는 느낌? 봐요. 지금도 맛깔나지 않잖아요. 정보글 형식처럼 군더더기 없이 쓰는 게 흔들리지 않는 편안함을 느끼는 사람도 있나 봐요. 소설을 읽으면 좀 고쳐질련지.
사실 <아몬드>는 남들이 하도 많이 읽길래 '제가 직접 한 번 읽어보겠습니다'하면서 읽은 책이거든요. 다 읽어보니 내용이 정말 감동적이어서 마케팅으로 뜬 책은 아닌 것 같은데도 이렇게 티 나지 않게 유명하게 만드는 것이 마케팅인가? 잘 모르겠지만 아무튼 박수. 책의 본질인 내용이 뛰어나면 된 거잖아요.
역시나 <아몬드>를 읽으면서도 감정을 주체하지 못한 부분이 많았습니다. 눈물을 참지 못하는 20대 남성 A, 그런데 이 이야기가 결코 불행은 아닙니다. '슬픈 이야기를 들으면 눈물이 나오고 감동 스토리를 들어도 눈물이 나온다. 그런데 그게 남들보다 좀 더 할 뿐이다.'라고 생각하면 이걸 어떻게 불행으로 판단할 수 있을까요?
풍부한 감정을 가진 게 비극인지 희극인지는 이 글을 읽고 있는 독자님들도, 글을 쓰고 있는 저도, 아니면 다른 누군가도, 영원히 말할 수 없는 일이에요. 정의할 수도 없고 정의한 것은 다 결과론적 해석에 불과합니다. 그저 상황에 따라 갈릴뿐, 풍부한 감정이라는 과일은 맵고 짜고 달듯이 여러 맛을 지닌 채 그저 쑥쑥 자라날 뿐입니다. <아몬드>에서 가장 크게 얻어간 게 있다면 바로 이 사실을 알아간 거예요.
마지막으로 놀란 부분, 이 책 청소년을 대상으로 한 소설이었네요. 몰랐는데. 근데 뭐 사실 띵작에 성인/청소년 구분이 어딨겠어요. 인간관계와 감정 표현을 배워나가는 한 불능증 소년의 감동 스토리를 보고 싶으신 분들께 추천드릴만 한 책이었습니다.
책
참고 -
<아몬드> - 손원형 저